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예슬 Oct 15. 2020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독립

프롤로그. 나의 취향과 습관과 조금은 재미난 이야기

지저분'했던' 내 방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했다. 


계획된 독립은 아니었다. 늘 독립을 꿈꿨으나, 경제력 없던 내겐 불가능한 꿈이었다. 결혼, 또는 먼 곳으로의 취직. 둘 중 하나가 일어나야만 가능한 꿈이었다. 내가 언젠가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싶던 어느 날 후자가 불현듯 일어났다.


스무 살 때부터 만 5년 동안 간절히 바랐던 독립의 꿈은 출근 시작 11일만에 이뤄졌다. 갑자기 한 취직처럼, 갑자기 한 독립이었다. ‘생존을 위한’ 독립이었다.


07:30 기상

08:30 회사로 출발

10:00 출근

23:00 퇴근

01:00 집 도착 / 잔업 처리 및 스마트폰으로 딴 짓

03:00 취침


본가에서 회사까지는 1시간 반이 걸렸다. 배차 간격이 넓은 밤에 퇴근할 때면 2시간이 넘게 걸려 집에 오기도 했다. 회사에선 매일 12-13시간씩 일했고, 서툰 업무에 긴장하다 집에 오면 극도로 피곤했다. 조금만 노닥거리다 침대에 누우면 5시간도 채 잘 수 없었다. 나는 내 일을 정말 잘 해내고 싶은데, 이렇게 살다간 죽겠다 싶었다. 결국 난 출근 6일차에 회사 근처 오피스텔을 구했고, 출근 11일차인 바로 그 다음 주 목요일에 입주했다. 얼떨결에 찾아온 독립이었다.


집과 가족을 떠나 살아본 것이 처음은 아니다.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갔었고, 미국에선 인턴으로 일했다. 하지만 혼자, 그것도 경제적으로 독립한 채 사는 것은 처음이다. 엄마는 갑작스레 맞이한 외동딸의 독립에 적잖이 당황하고 서운해했지만, 독립이 주는 약간의 설렘,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일욕심 때문에 나는 엄마의 감정을 세심히 살필 수 없었다. 경제적 독립을 명목으로 나는 엄마와 아빠의 울타리에서 더 멀리멀리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내 ‘독립 생활’은 내 로망 속 그것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인테리어로 꾸며둔 방에서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 삶' 따윈 없었다.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 돌아오는 생활 속에서 내 오피스텔은 급히 매트리스 하나와 암막 커튼만 구비해둔 개인 숙직실에 불과했다. 아침은 요거트에 그래놀라만 후딱 먹고 나갔고, 점심과 저녁은 모두 밖에서 먹고 들어왔다.


그렇게 5개월이 흘러 입사 후 나의 첫 프로젝트가 끝났고, 나는 두 달의 (유급)휴가를 받았다. 돈도 조금 생기고 복귀할 일터도 있는 두 달 휴가는, 돈도 없고 다음 학기의 내가 뭘 해야할지 몰랐던 대학생의 두 달 방학과는 달랐다.


처음으로 내가 그리던 독립생활을 시험해볼 시간이었고, 상당히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나 자신을 내가 진득하게 마주하고 버텨내야 할 시간이었다. 때론 내가 나여서 즐거웠고, 때론 나마저도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어디든 가서 뭐든 할 수 있는 내일이 기대되기도 했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시간인데도 아무것도 안 한 나를 증오하기도 했다.


생산적이기도, 권태롭기도 했던 매일의 순간 속에서 나의 취향과 습관과 조금은 재미난 이야기도 피어났다. 기록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될까 하는 조바심에서 이제 나는 나의 서툰 독립 생활을 기록해두려 한다. 매일 삐걱거리지만, 나의 취향과 습관과 조금은 재미난 이야기가 생겨나는 내 생활에 대해서. 안슬기로운 몇 가지 리빙 포인트에 대해서.


아... 그런데 휴가가 끝나고 다시 출근할 날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