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매년 4월 1일, 가벼운 장난이나 그럴듯한 거짓말, 트릭으로 재미있게 남을 속이면서 즐기는 날. 사람들은 이날만큼은 현실과 장난을 뒤섞어 웃음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2021년 그날, 내게 건넨 의사의 말은 제발 농담이라고, 거짓이라고 말해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하고 싶을 만큼 잔인했다. 어떤 장난으로도 덮을 수 없는 어두운 진실의 날이었다.
살아오면서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사랑해 마지않을 내 아이를 살기 힘든 이 세상에 꺼내 놓기에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되도 않는 이유 때문이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산부인과 담당의의 당황스러운 질문에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혹시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어요? 미안해서 어쩌죠, 아직 미혼인데 말이에요.”
무슨 얘기를 하려고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내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자궁을 살리는 시도를 해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어차피 방사선 치료를 하게 되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돼요. 아직 너무 젊어서 나도 어떻게 해 줘야 할지 잘 모르겠네. 그래도 재발이나 전이에 대한 불안도 모두 제거할 수 있도록 자궁뿐만 아니라 난소도 절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나의 미래에 대한 모든 선택권을 빼앗겼던 그날은 2021년 만우절이었다. 생전 처음 가본 대학병원에서 나는 만우절 농담이라 해도 웃어넘길 수 없는, 눈물조차 나지 않는 암 진단을 받게 됐다.
3월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산부인과에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1년 넘게 비정기적인 출혈이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검사를 미룬 지 오래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점점 피로가 몰려왔고, 출혈은 조금씩 심해지고 있었다. 별일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는 정부와 함께 코로나 백신 유통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 또한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하루 한두 시간 쪽잠을 겨우 자며 일하는 정도의 지독히 바쁜 와중이었다.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밀려온 불안감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어렵게 시간을 내 찾은 동네 산부인과에서의 첫 진단은 자궁경부 이형성증. 자궁경부 이형성증은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으로, 자궁경부의 세포와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변형된 상태를 말한다. HPV백신 마케팅을 수년간 해왔던 내게 꽤 익숙한 단어였다. 자궁경부암의 전 단계로,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고 추적 관찰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자궁경부 이형성증 진단에도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다만 확실하게 안심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원장님의 권유에 설마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응하기로 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고 했는데, 검사를 진행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나니님, 저 ○○산부인과 원장이에요. 원래 검사 결과는 내원하셔서 설명 들으셔야 하는데, 조금 급해서 제가 먼저 전화했어요.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주세요. 조직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요. 아마도 자궁경부암 초기인 것 같은데, 우선 대학병원 예약을 잡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기저기 전화해보시고 빨리 예약부터 잡으시고 설명 들으러 내원하시겠어요?”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내가 암이라고? 설마 내가 암이겠어?’
그럴 리가 없었다. 출혈 말고는 특별히 아픈 곳이 없었다. 2년에 한 번씩 회사에서 해주는 건강검진은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받아야 했다. 어떤 건강검진에서도 나에게 특별히 이상이 있다고 정밀검사를 받아 보라고 한 적도 없었다. 드라마에서 봤던 암 환자들은 모두 통증에 괴로워하고 있는데, 의술이 많이 발전했다더니 이런 오진도 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은 해야 했다.
4월의 첫날, 나는 별일 없을 것이라 확신하며 혼자 집 근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예약실에서는 외래 진료가 꽉 차 예약을 바로 잡아 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조직검사에서 자궁경부암이 의심된다고 하던데요, 라는 나의 말에 암 전문의 외래 진료가 바로 일주일 후로 잡혀버렸다. 병원에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나에게 연인은 정말 괜찮겠냐며 재차 물었다. 하지만 별것도 아닐 일에 바쁜 그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보호자 없이 혼자 병원에 가야 외래 진료가 별일 아닌 일로 끝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거의 다다라 암센터 앞에 내려달라 말하는 나를 힐끗 보더니 택시기사가 말했다.
“누구 면회 가시나 봐요?”
그럴 만했다. 누가 봐도 암 센터에 들를 만한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을 테다. 네, 하고 짧게 답하며 택시에서 내려 암센터로 들어가며 나는 그렇게 영영 면회객이길 바랐다.
처음 가본 대학병원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분주했다. 동네 병원에서 가져온 자료를 등록하고 신규환자 등록을 마쳤다. 이름과 환자등록번호 크게 적혀 있는 환자 카드를 받고 나니 묘한 긴장감과 떨림이 느껴졌다. 하필 외래 진료는 또 왜 암센터에서 진행되는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진료실 앞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예약된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내 이름은 오랫동안 불리지 않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여기저기 많은 환자가 대기 중이었다. 대부분 아파 보였고, 모두가 지쳐있었다. 나와는 전혀 상관도 없을 이곳에 왜 내가 앉아 있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고, 점점 긴장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혼자 오지 말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 즈음, 이름이 불렸다.
드라마에서 종종 보던 차갑고 냉정한 의사가 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50대 후반 쯤 됐으려나, 지나가다 보면 동네 아저씨 같이 보일 천진한 인상의 의사는 의외로 다정한 목소리를 나를 맞이 했다.
“나니님, 잠시 기다려봐요. 자료 좀 확인할게요.”
내가 가져간 조직검사 자료를 한참 들여다보던 교수님은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궁경부암 1기 정도로 예상돼요. 당장 수술해야 하고, 수술 결과에 따라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병행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 수술 일정을 잡을게요.”
당연히 오진도 아니었고, 불행히도 추적 관찰로 끝나는 상황도 아니었다. 아주 초기의 암인 경우 수술로 치료가 종료된다고 설명했지만, 1기라고 하면서 왜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 이야기를 함께 꺼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수술 후 몸을 회복하고 일상생활을 하기까지 2달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는 의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수술을 좀 천천히 할 수 있나요? 지금 너무 바빠서 도저히 수술할 시간을 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너무 당황스럽고요.”
아직도 처지를 실감하지 못한 나의 어이없는 제안에 교수님은 단호히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말했다.
“절대 안돼요. 내가 마침 다음 주에 수술이 하나 취소돼서 시간이 있어. 무조건 수술은 당장 다음 주에 해야 해요. 내 말 들어요.”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은 어쩌며 휴가를 쓸 수나 있으려나 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그가 말했다.
“나니님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내가 꼭 살려 줄 거야.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요.”
예상하지 못했던 암 진단에도 고작 일 걱정이나 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척하고 있던 나는, 예상 밖의 따뜻한 교수님의 그 한마디에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일주일 후로 수술일이 잡혔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원무과에 가서 산정 특례 등록도 마쳤다. 산정 특례가 뭐예요? 하고 묻는 내게 원무과 직원은 고액의 비용과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중증질환에 대해 환자가 부담하는 진료비를 경감 해주는 제도라며, 병원비는 본인부담금의 5% 정도만 내면 된다고 설명해줬다. 실손보험 하나 없는 대책 없는 환자인데 그나마 병원비 걱정은 안 해도 되네 하고 생각이 들었다.
산정 특례 등록을 마치고 나니 나는 공식 암 환자가 됐다. 저녁이 되어서야 만난 남자친구는 진작 나를 병원에 데려가야 했다며 자책했다. 언제나 이성적이기만 해서 공감하는 방법 같은 것은 모르는 남자다. 8년을 넘게 만났지만, 그가 우는 것을 본 기억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내가 받은 스트레스가 암의 원인이었을 것이라며, 그 스트레스의 대부분이 자기로부터 시작됐다며 흐느껴 울었다. 아니다. 모든 것은 내 잘못이었다. 사실 회사 검진 때마다 생리가 겹쳐 자궁경부암 검사를 못 한 지 4년이었다. ‘이번 한 번은 넘어가지’ 하며 4년을 미뤘던 내 잘못이었다.
만우절의 거짓말 같은 이 이야기를 도대체 어떻게 엄마에게 알려야 할까? 암 진단보다 두려웠던 것은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