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정년 퇴임을 한 지 오래되었다. 개인정보에 대한 민감도가 지금보다 훨씬 예민하지 않았을 때 Sue의 엄마를 찾는 것은 늘 아빠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몰래 그녀의 엄마를 찾는 일은 불가능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나는 아동권리보장원이라는 곳에서 입양인들을 위해 부모님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Sue, 너의 엄마를 찾을 방법을 찾아냈어. 이 사이트에 접속해서 서류를 제출하고 신청을 해봐.”
Sue에게서 신청을 완료했다는 메일을 받은 날, 나는 아동권리보장원에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 어머님을 찾아 달라고 신청을 한 Sue bailey 한국 이름 유성숙의 한국 가족입니다. 어머니를 찾는 데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여쭤보고 싶어서 따로 연락드렸어요. 올 6월에 유성숙 님이 한국에 들어와요. 20년 만의 방문이라 그 전에 어머님을 찾고 그때 꼭 어머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찾는 분이 생존해 있다면 평균적으로 2달 정도면 찾을 수 있다고 안내받았다. 2월에 신청하고 우리는 5월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어느새 Sue가 한국에 방문할 6월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동권리보장원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아직도 인가요 하고 담당자에게 자주 연락했지만. 할 때마다 저희도 기다리고 있어요, 죄송해요. 라는 답변뿐이었다. 어머니를 찾는 과정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동권리보장원에서는 Sue의 어머니가 20년 전 살았던 수원시에 32년에 태어난 김영자라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공문을 보낸다고 했다. 거기서 그녀의 흔적을 찾지 못하면 전국 250개가 넘는 지자체에 같은 내용의 공문을 보낸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넣고 엔터 한 번 치면 그녀의 소재지가 파악될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그렇게 빗겨나갔다. 아동권리보장원 담당자는 모든 지자체에 그녀를 찾는다는 공문을 보내고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6월이 됐고, Sue가 한국에 방문했다. 온 가족과 4주간의 행복한 한국 여행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주영, 나 때문에 고생만 했네. 생모를 찾을 방법이 없나 봐. 죽어서 그렇겠지? 나는 생모를 못 찾아도 괜찮아. 그러니 내 걱정을 하지 마.”
Sue가 떠나고 딱 일주일이 지났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아동권리보장원이었다 .
“안녕하세요. 유성숙 님 가족 유주영 씨 되시죠? 유성숙 님 아직 미국 안 들어가셨죠? 어머니 찾았어요! 살아 계세요.”
“정말요? 지난주에 미국에 들어갔는데요. 일주일만 먼저 연락이 왔었으면 만나고 갔을 텐데. 정말 너무 안타깝네요.”
“아 진짜요? 저 너무 신나서 공식적인 letter가 유성숙 님에게 가기도 전에 먼저 전화했는데요. 정말 너무 안타깝네요.
”혹시 어머님은 어디 살고 계신가요? 건강하신가요?“
”어디 살고 계신 지 등은 개인정보라서 말씀드리기가 좀 어려워요. 대신에 어머님께 따님이 계시더라고요. 그 분께서 가족분과 연락하고 싶어 하세요. 어머님은 아마 요양원에 계신 것 같아요. 따님과 연락을 한 번 취해보시겠어요? ”
Sue의 이부동생 미옥의 연락처를 받았다. 20년 전 모녀 상봉이 이루어졌던 호텔에서 우리가 만났다는 것을 나는 기억해 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주영이라고 하고요, 유성숙 씨 육촌 동생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주영 씨. 저는 이미옥이라고 합니다.”
“저 동생님, 혹시 저 기억하시겠어요? 저 20년 전에 성숙언니랑 어머님이랑 호텔에서 만났을때요. 통역하던 대학생이 저예요. ”
“어머, 주영 씨 당연히 기억하죠. 그게 주영 씨였군요. 20년 만에 이렇게 연락을 할 수 있게 되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에요. 언니는 미국에 갔다고요?”
“네. 지난주에 들어갔어요. 2월에 어머님을 찾아달라고 의뢰한 것이라서 6월, 7월이면 당연히 찾을 수 있을 줄 알고 한국에 들어왔었어요.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다 기다리며 한 달이나 한국에서 지내다 갔어요. 지난주에 귀국했는데 어제 어머님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지 뭐예요. ”
“그래도 서로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곧 만날 수 있겠죠. 엄마가 안 돌아가시고 살아계시니 언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네요.”
“어머님께서는 건강하세요?
”엄마는 지금 요양원에 계세요. 치매가 좀 있으시고요. 그래도 요즘은 컨디션이 좋으신 편이에요.“
”가족분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겠네요. 혹시 어머님이 언니를 기억하실까요?”
“기억하실 거예요. 당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어떻게 잊었겠어요. 분명 기억하실 거예요.”
미옥은 어머니가 Sue를 기억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치매를 앓고 계시기는 하지만, 가족들은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상태이니 Sue도 꼭 기억해 주시기를 빌 뿐이었다.
엄마를 찾았다는 소식은 Sue에게 좀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엄마를 찾아 달라고 했지만 아흔이 된 엄마가 살아계실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저 어머니가 묻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되면, 그 곳에 가서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하는 자신을 상상했다고 했다. 거기에 치매를 앓고 있다니. 돌아가신 상태라면 엄마 왜 날 버렸어! 하고 원망으로 어머니와의 인연을 끝낼 수도 있을 텐데 어머니와 온전한 의사소통이 가능할지 아닐지 몰라 앞으로의 만남에 대해 더 망설여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일 당장이라도 비행기표를 끊고 한국으로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Sue가 엄마를 만나러 오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식을 전한 지 반년 정도 지났을 겨울의 어느 날, Sue에게서 연락이 왔다.
“주영, 나 내년 3월에 한국에 가려고 해.”
“드디어 오는 거야? 마음의 준비가 다 됐어? 언제든 환영이야.”
“혼자 가려고 했는데 캘빈과 카이라도 함께 가겠대. 지금 회사 일정을 조율하고 있어. 나는 3주 정도 애들은 1주일 정도 머물 것 같아.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꼭 다시 뵙고 싶대. 혹시 우리와 함께 어머니를 만나러 가 줄 수 있어?”
“당연하지. 언제 오겠다고 하려나 계속 기다렸어. 네가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 모두 내가 옆에 있을 거야. 그러니 언제든 걱정하지 말고 한국에 와.”
꼭 20년 만이었다. 육십을 훌쩍 넘겨 어느새 흰머리가 희끗해진 할머니가 된 Sue는 엄마를 마지막으로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그녀가 평생 물어볼 기회조차 가질 수 없던 질문 하나를 어머니에게 내뱉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 왜 나를 버렸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