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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예진 Apr 20. 2020

적자 행진하는 VR테마파크

실감콘텐츠 국가적으로 육성한다지만…현실은 VR방 폐업 위기

# 10개 남짓한 가상현실(이하  VR)기기가 놓인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VR존. 평일 중 손님이 가장 많다는 오후 시간에 찾은 이 공간은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유니폼을 입은 아르바이트 학생 세 명 목소리와 음악 소리만 들렸다. 4시간 동안 주변 카페에서 지켜본 결과 기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온라인에서 이들을 소개하는 ‘줄을 길게 서는’ ‘요즘 핫플레이스’라는 수식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실내 공간 전체가 한산하긴 했지만, VR존을 제외한 주변 리빙 매장과 카페 등에는 마스크를 끼고 돌아다니는 소비자가 많았다. 손님 없는 공간은 VR존 뿐이었다.  


4시간째 이용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은 서울의 한 VR테마파크 모습. 라예진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실감형 콘텐츠 육성에 힘쓰겠다는 정부 기조와는 달리, 실질적으로 VR기기를 활용해 사업을 하고 있는 사업장은 텅 비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VR게임사업체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전국 VR방을 운영하는 사업장 86.2%가 임차형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월세, 인력비 내고 나면 적자  

사업장 보증금은 3000만원 이상 7000만원 미만인 경우가 35.7%로 가장 많았고, 월세 사업장의 경우 26.8%가 600만원 이상을 매달 납부하는 것으로 나왔다. 연매출 평균은 1억8690만원이었다. 5000만원 이하인 곳은 18.5%, 5000만원이상 1억미만인 곳은 31.5%로 VR방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 40% 가까운 곳이 사업장 월세를 내고 남은 이익을 계산해보면 매달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VR방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들의 부정적 시선은 늘었다. 콘진원이 진행한 같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55.4%가 VR 전망에 대해 ‘악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24.6%만이 ‘나아질 것’이라도 답했다.


국가가 국고로 지원해 문을 열은 VR방도 같은 처지다. 콘진원은 ‘2017 지역주도형 VR콘텐츠 체험존 조성 지원(추경) 사업’을 진행해 VR 콘텐트 체험존 5곳을 구축하고자 했다. 기업 지원을 신청받고 내부 평가를 거쳐, 선정 기업에 최대 5억6000만원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곳은 단 두 곳. 한 곳은 선정되자 마자 ‘수익성 문제와 자금력 부족’으로 사업 운영을 포기했고 나머지 두 곳은 정상 운영하다, 의무 운영기간인 2년을 채우자 바로 문을 닫았다.  


VR방은 왜 망하는 걸까. VR 기획자였던 도서 『스타트업이 만드는 사용자 경험』 저자인 박윤종 작가는 ‘한번 즐기고 마는 콘텐트라는 한계’를 꼬집었다. 박 작가는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콘텐트가 지속해서 새롭게 업그레이드돼야 하는데 아직 VR콘텐트가 그만큼 다양하지 않다. 일회성 이용으로 그치기 쉬운 이유다. 또 VR방이 완전히 새로운 공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3D게임에서 진화한 형태이기 때문에 PC방과 차별화 두기가 어렵다“고 조언했다.


기존에 운영하는PC방과 일반 오락실 등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이용 가격이 비싼 것도 한 이유다. VR기기 초기 설치 비용이 크기 때문에 사업장에서는 이용가격을 높일 수 밖에 없다. 보통 사용자는 1회 이용에 8000원에서 1만원, 자유이용권 3~5만원가량을 내야 한다. 4인 가족이 즐기려면 최소 3만6000원, 많게는 20만원이 필요한 가격대다.


VR용 기기인 HDM(Head Mounted Display) 을 머리에 쓰고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소비자에게 냉랭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대학생 신유진(23)씨는 “안경처럼 쉽게 벗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무거운 헬멧 같은 걸 착용해야 해서 거부감이 든다. 머리 스타일은 망가지고 메이크업도 지워지기 때문”이라며 “또 오락실이나 PC방에 갈 때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놀 수 있지만 VR룸에서는 함께 있지만, 각자가 다른 세상에서 노는 것 같아서 딱히 큰 재미를 못 느꼈다”고 말했다.    


사업장 입장에서는 운영 인력비용도 만만치 않다. VR을 놓을 수 있는 공간과 기기만 있으면 주인 한 명이서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콘진원에서 발표한 VR방 고용형태를 보면 평균 한 곳당 6.4명이 종사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VR방을 운영하는 익명의 한 사장은 “VR방을 창업할 때 인력이 거의 필요 없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오는 손님들마다 한 명씩 붙어서 기기를 착용시켜주고 준비된 후 기기를 작동시키는 등의 인력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VR콘텐트 게임물 취급

VR은 그저 재미를 위한 ‘오락’ ‘게임’이라는 인식도 VR방의 활용 방안 확대를 막는다. 사실 VR 콘텐트는 교육 등의 분야로도 볼 수 있지만 정부의 콘텐트 규제로 대부분 VR 콘텐트를 게임물로 분류하고 있다. 한 사례로 VR영화 ‘화이트 래빗’을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예술성을 인정받아 칸 영화제에 초청받아 상영했지만, PC에서 구동된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게임물로 분류됐다. 게임물로 분류된 이 영화는 영상물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 영화관 상영이 금지됐다. 즉 ‘화이트 래빗’을 보기 위해서 국내 관람객은 영화관이 아닌 PC방을 가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펼쳐졌다.        


VR 영화 ‘화이트 래빗’은 게임물로 분류되어 우리나라에서는 극장 상영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승민 율촌 변호사는 “VR콘텐트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까지 대부분 인터렉티브(양방향성) 콘텐트인 VR은 게임물로 분류되고 있다. 가상 공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을 보고 설명을 듣는 ‘다빈치 월드 VR’은 이용자가 덜컹거리는 기구를 타고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게임으로 분류됐지만, 사실상 직접 경험해보면 미술을 공부할 수 있는 교육 콘텐트”라며 “이처럼 VR콘텐트를 대부분 게임물로 분류하면 다른 방향의 VR 콘텐트 개발을 저해하고 VR방은 게임방, 오락방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쉽다”고 조언했다.


디지털콘텐트산업 육성에 1900억원 투입

VR 기술은 정부가 올해 발표한 ‘2020년도 디지털콘텐츠산업 육성 추진계획’의 핵심 산업이다. 책정된 예산도 크다. 과학기술통신부는 2020년 디지털콘텐트산업 육성에 19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고 이중 3분의 1가량인 659억원은 ‘VR·AR콘텐트 산업육성’에 사용한다. VR·AR콘텐트 제작 지원에 336억원, 산업 인프라 조성에 323억이 분배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VR·AR 관련 예산을 대폭 올렸다. 실감콘텐트산업 육성을 위한 예산이 2019년 261억원에서 2020년 974억원으로 증가했다. 콘텐츠진흥원도 2019년 261억원에서 올해 1000억원 남짓으로 예산을 확대했다. 하지만 이처럼 예산이 증가한 만큼 실제 VR산업 관련 운영자와 이용자가 기술 실용성에 대해서도 피부로 체감할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현재처럼 VR콘텐트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VR방이 계속해서 외면 받는다면, 애써 개발한 VR콘텐트는 꽉 막힌 유통 길목에 맞닥뜨릴 수 밖에 없다.


이종탁 한국폴리텍대 대전캠퍼스 VR미디어콘텐츠 학과장은 “국내 VR산업은 현재 과도기다. 2~3년 정도 지나야 뚜렷한 성과가 나올 것”이라며 “현재는 게임과 교육 부분에만 집중돼 있는데 국방, 의료, 힐링 등 여러 방면에서 활용될 수 있는 특수 콘텐츠 개발에 힘써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rayejin@joongang.co.kr



텅텅 빈 VR테마파크를 보며,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VR테마파크를 좋아하는 1인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80%.

취재 후,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던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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