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예진 Nov 22. 2021

첫번째 공연, 연극 <유난히 긴 식탁>  

검은 옷을 입은 가족들의 식탁

처음에는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연극이라 생각했다. 가족이 있고, 그들 간의 마음의 거리를 긴 식탁으로 표현했으리라. 가족은 사실 가장 가깝지만, 가깝다고 믿는 만큼 서로에게 무지하지 않은가. 하지만 연극은 나의 예상과 정반대의 상황을 전개한다.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가족이 등장하고, 그들은 보통의 가족보다도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긴 식탁이 연극 무대의 전부지만, 마치 긴 끈처럼 식탁은 서로를 연결해주고 있다.


총 6명의 가족 구성원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원래 가족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불의의 사고로 먼저 보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함께한 할머니를 잃었고, 부인은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냈다. 젊은 남자는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를 보내야만 했고, 남매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을 떠나 보내야 했다. 그들은 단체 여행 중 불의의 사고로 이들을 잃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만 가족이 되어 식탁에 둘러앉아 있게 됐다. 얼마나 기괴한 설정인가.


하지만 그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알기 때문에, 가족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구성이지만, 가족이 되기로 마음먹은 순간 누구보다도 쉽게 뭉칠 수 있었다. 여행 중 사고를 당한 설정이 인상적이다. 인생을 흔히 여행으로 비유하는데, 사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거짓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게 되지 않는가. 극 중 6명과 우리는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남매는 자신의 아버지가 운전자였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아버지가 모든 상황의 원흉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대신 그저 그리움이라는 탕에 깊게 빠져 들어가 있을 뿐, 남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서로를 연민하고 의지한다. 그들은 연극의 대사에서처럼 세월과 함께 “단단”해졌고, 또 “말랑말랑”해졌다.


가장 극적인 상황은 극 중 성인 여성이 상견례 후 파혼을 결정하게 된 것을 가족들에게 알리면서부터이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여자의 가족 구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성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사람들로 이뤄진 가족이라니, 선뜻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여자는 남자의 한 마디에 바로 마음의 문을 닫는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를 준 것은 자신이 직접 친 벽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 쓸쓸함은 결국 내가 만든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친구는 가족들을 뵈러 선물을 들고 찾아온다. 여자와 가족 구성원은 새로운 가족의 등장에 설레한다. 남자 친구의 진심을 안 순간 식탁은 조금 더 길어질 준비를 하게 된다.


극 중 나이가 제일 어린 여학생을 제외하고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다. 마치 매일 상을 치르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분명 감당할 수 없는 과거에 묶여 나약하게 허우적거리지만, 서로에게 의지하며 조심스레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여학생의 색깔이 있는 교복이 이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들의 미래가 무지갯빛이 되기를, 그리고 그것을 은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미래로 갈 수 있는 가족. 진정한 가족은 정말 어떤 가족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