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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예진 Feb 11. 2022

세번째 공연 연극 <그때도 오늘>

그때도 오늘도 우리는 번뇌하고 평화를 노래했다

오늘 리뷰할 연극은, 현재 대학로에서 가장 핫한 연극 중 하나인 ‘그때도 오늘’이다. 충무로 인기 배우인 이희준 님과 이시언 님이 열연을 펼쳐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연기파로 알려진 두 배우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연극이라 기대감이 배가 됐다.


연극의 인기를 반영하듯이, 코로나 확진자가 3만명이 넘는 상황에서도 극장 앞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배우들의 대형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연극 시장의 활기를 느꼈다. 극장은 거의 만석이었다. 나도 오랜만에 보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 창작극에 기대감이 커졌다.

연극은 크게 4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시대와 장소가 모두 제각각이다. 1920년대 경성의 한 주재소부터, 1940년대 제주 중산간과 1980년대 부산의 유치장, 그리고 2020년대 가까운 미래의 최전방까지, 이야기가 한국 근현대사의 시간 속에서 한반도 전체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 모든 이야기를 단 2명의 남자 배우가 배역을 바꿔가며 이끌어간다. 나는 이희준 배우와 박은석 배우의 연기를 보았는데, 독립 운동가부터 현대 어린 병사들까지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라의 독립을 걱정하는 진지한 독립 운동가가 어리바리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병사로 변신한다. 배우들의 경이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보는 것만으로도 연극은 충분히 카타르시스를 준다. 배우의 변화하는 인격 속에서 같이 울고 웃다 보니 연극이 주고자 한 메시지가 어느덧 가슴에 와닿아 있었다.  

연극의 핵심 키워드는 ‘갈등’이다. 4편의 이야기는 각각 한국인이 겪은 갈등 상황을 보여준다. 먼저 1920년대 두 독립 운동가의 서로 다른 독립 방향이 제시된다. 용진은 만주 독립군이 되어 무력 투쟁 속에서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고 하지만, 윤재는 총칼을 드는 대신 조선어학회에 들어가 민족의 얼을 유지하는 게 진정한 독립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1940년대 제주도 배경에서는 모두 예상하겠지만 제주 4.3 사건의 배경이 된 남로당 대 우파, 군인 대 민간인, 그리고 부르주아 대 비자본가 간의 갈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1980년대에서는 산업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갈등이, 2020년대에서는 아직도 살아 있는 남북 간의 긴장이 펼쳐진다.


10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참 주제를 다양하게 바꿔가면서 우리끼리 갈등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깨달음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느 정도의 갈등은 필연이겠지만, 어떤 갈등은 제주도의 민간인을 대량 학살할 정도로 광기에 서려 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5년 만에 다시 돌아온 대선 정국에 진영 간의 대결이 첨예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갈등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갈등이 선명하게 묘사되는 만큼 연극은 우리에게 평화와 화해의 손짓을 꾸준히 내밀고 있다. 몇몇의 메타포가 내 마음속에 강하게 남았다. 먼저 일본인 애인. 윤재에게는 일본인 애인이 있었는데, 둘이 사귀된 계기가 도서관에서 그 일본인 여자가 윤재의 손을 붙잡고 현재의 조선의 상황을 “미안하다”고 고백해서이다.


전쟁의 타자일 수 없는 ‘여성’이, 먼저 조선인 남성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또한 “사투리가 꼭 음악 같다”라는 연극 속 핵심 대사. 연극 속에는 평양 사투리부터 제주도 방언까지 정말 다양한 사투리가 등장한다. 제주도 방언은 자막이 등장할 정도로 외국어처럼 들리기도 하다.


하지만 연극은 사투리가 꼭 만국 공통 언어인 음악 같다고 말한다. 완고하게 굳은 사투리 억양처럼 완전히 다른 입장으로 들리는 말들도 결국은 같은 한국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두 어린 병사는 결국 서로의 사투리에 동화된다. 마치 모국어라는 음악을 같이 노래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연극 내내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 마치 모든 인간사를 바라보는 신의 시선처럼, 때로는 그들을 걱정스럽게, 때로는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누구나 공평하게 비추는 달빛이 우직하게 무대를 비췄다.  

한국의 100년의 역사를 이렇게 한 큐에 잘 엮은 연극이 있었나 싶다. 무엇보다 배우의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익살스러운 연기에, 무거운 현대사가 한바탕 웃음으로 편안하게 다가왔다.


누군가가 인간사를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한 말이긴 하지만, 희극이라는 말을 용서와 사랑이라는 말로 이해하고 싶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 용기와 힘을 불어넣는 신의 응원이 들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연극은 격동의 한국사를 온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찬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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