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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건오 Jan 30. 2017

<HER>
타인의 눈을 통해 보는 ‘나’

인간과 관계에 대한 역설적인 담론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는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하는 아주 오래된 주제이다. 한문에서 人은 남녀가 기대어 있음을 표현하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이 홀로 설 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관계 맺음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말한다. ’사람은 불완전하다.‘라는 명제는 이미 고대에서부터 생각하던 인간의 특징이다. 감독은 ’인간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가?’라는 철학적인 물음에서 영화를 시작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불완전한 인간은 남을 통해 자신을 보고, 자신의 존재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명확하게 만들기 위해 그는 사람이 아닌 컴퓨터, 즉 운영 체제를 ‘타인의 눈‘으로 삼았다. 컴퓨터이지만 직관이 있고 감정을 가지게 된 이 캐릭터는 점점 학습하며 진화하고 자신을 찾는다. 마치 아이와 같은 이 캐릭터는 우리가 세상을 편견 없이 보게끔 유도한다. 이 영화는 인간의 존재론적 탐구 과정을 공간, 색, 그리고 시점으로 풀어냈다


제1장. 공허함, 그리고 불완전함


    테오도르는 대필 작가이다. 그는 사랑에 대한 편지를 쓰지만, 정작 자신은 소통이 부재한 삶을 살고 있다. Extreme close-up shot으로 시작하는 인트로는 매우 강렬하며, 관객이 테오도르의 입장에서 감정이입 되도록 만든다. 무표정으로 사랑을 말하는 그를 보며 관객은 공허함을 느끼고, 테오도르의 개인적인 인간관계가 좋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연민의 감정을 가지게 되고 주관적인 관점을 형성한다.

    테오도르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영화의 배경은 미래이다. 운영체제와 테오도르가 하는 3d 게임, 그리고 각종 기기들을 보면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매우 진보된 하이테크의 미래이다. 그러나 영화 전체적인 공간은 매우 현실적이다. 사무실, 집, 그리고 길거리는 굉장히 현실성을 띄고 있다. 단적인 예로 차가 없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차가 가지는 상징성은 굉장히 큰 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아예 빼버렸다. 해변으로 연결되는 지하철은 현실에 있을법한 비현실이다. 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 또한 지금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미래의 공간이 강조되었다면, 오히려 테오도르 보다는 시각적 효과와 세트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공간적 배려를 했다. 이러한 현실감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테오도르의 공허함에 관객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게 한다.     


제2장. 관계의 시작과 지속


    첫 만남은 누구에게나 즐겁다. 운영체제인 사만다와 첫 만남을 가지는 이 씬은 주조색이 빨간색이다. 사만다와 데이트하는 씬은 대부분 빨간색 옷을 입는다. 빨강이라는 색이 가지는 강렬함과 열정은 그들의 관계를 대변한다. 반면, 테오도르가 전처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씬에서는 파란색옷을 입는다. 분명 회상하는 장면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지만, 옷의 색으로 그것의 결말이 보이는듯하다. 심지어 회상임을 알게 하는 빛의 과한 노출도 따뜻하다기 보다는 차갑게 느껴진다. 냉정을 상징하는 이 색은 마치 테오도르와 이혼한 전처의 관계를 대변하며, 후에도 사만다와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주로 나타나는 색이다.

    사만다는 목소리만 나오는 운영체제로 설정이 되어있다. 시점을 보면 언제나 테오도르의 Medium shot이나 Close-up샷이 주된 샷이다. 그러나 이 시점을 조금만 틀어서 보면 사만다의 P.O.V샷이 된다. 2장 관계의 시작과 지속에서는 언제나 사만다의 POV샷으로 진행된다. 연인이 연인을 가까이서 바라보듯 진행되는 장면들에서 관객은 사만다 뿐만 아니라 그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찾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사만다는 의식의 확고한 자기 확실성을 지닌 순수한 이성으로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자신의 의식을 깨닫고 존재를 파악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육체와 영혼의 결합이라는 면에서 사만다는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러한 철학적 논쟁을 POV샷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 완화시켰다.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는 시각의 교만함을 POV샷으로 극복하였고, 인간이 아니지만 가장 인간다운 존재라는 새로운 관념을 만들었다. 이것은 관객이 사만다를 낯설게 보기보단 감정이입하여 인간과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한다. 

    사만다는 마치 아이 같다. 그녀의 대사는 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스스로의 존재에 있다. 테오도르와 사랑하고 싸우고 다시 화해하면서 그녀는 점점 자신의 존재를 찾는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이 몸이 없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스스로의 존재가 밉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점점 그것의 장점을 발견한다. 더블 데이트씬에서 그녀는 자신이 몸이 없어서 한계가 없음을 자랑한다. 인공지능의 우수함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사이지만 좀 더 깊게 분석을 하면, 나름의 존재방식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이해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만다를 한명의 인간으로 봤을 때, 결국 인간은 각각 매우 다른 존재방식을 가진다. 관계를 맺은 사람과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존재를 찾거나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인정하는 과정이다. 사만다가 점점 성장을 하듯, 인간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을 찾고 성장한다. 


제 3장. 관계의 끝과 새로운 시작     


    후반부에 사만다는 자신의 존재를 찾으며 여러 존재와 동시에 소통을 한다. 앨런 와츠와 대화를 하는 씬에서 Hand-held 카메라기법이 쓰였다. 관객은 카메라의 떨림에 의해 그들의 관계가 조금씩 틀어질 것을 직감한다. 180도를 넘어선 카메라로 불안함을 주며, 테오도르에게 무빙인이 되고 다음샷에서 불꽃에 무빙인이 되는 이 씬은 조형적 일치로 연속성을 주며, 관객에게 이들의 관계가 곧 끝이 날것임을 암시한다. 테오도르를 통해서만 자신을 보던 사만다는 다른 존재를 통해서도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것은 사만다와 테오도르의 관계의 종결을 의미한다. ‘나’라는 존재가 더 이상 한명에 의해서만 정의되지 않을 때 그 관계는 보통 종결된다.      

    타인과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테오도르는 인간의 관점에서 사만다의 다중 연인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 다른 존재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지막 씬에서 사만다는 결국 테오도르에게 이별을 고한다. 침대에 눕는 장면에서 마치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바라보듯 하는 POV샷과 무빙인이 사용되었다. 관객은 사만다의 복잡한 존재론적 고민과 테오도르의 상실감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이별 장면에서 처음으로 테오도르의 POV샷이 사용된다. 얕은 포커스로 마치 누군가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존재에 대한 새로운 관념으로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실재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사만다의 목소리에 더욱더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카메라의 기법은 사만다의 목소리에 감정이입을 시킨다.  

    테오도르가 마지막으로 상상하는 이별 장면 또한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빈 공간이고 테오도르외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피사체를 지운 것 같은 롱샷으로 거리감과 존재감을 주고, 클로즈업 샷에 얕은 포커스를 사용하여 마치 테오도르가 사만다와 안고 있는 느낌을 준다. 3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실체를 여러 카메라의 기법으로 존재감을 만들었다. 시각적으로는 보이지 않으므로 목소리에 더욱더 집중하게끔 만든다. 감독은 이것을 통해, 서로 다른 존재 방식을 다시 한 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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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과 O.S가 서로 사랑에 빠진다는 소재는 무엇이 인간인가? 라는 성찰에서 시작한다. 불완전함은 인간다움을 만든다. 대부분의 영화는 불완전함을 감정으로 풀어냈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을 그리기 위해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을 하였다. 결국 인간이 되기 위해 로봇은 스스로 노화를 선택했다. her은 한 단계 나아가 관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감독은 무한대에 가까운 개개인의 존재 방식 속에서, 불완전함에 의해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일부를 찾고 다시 다른 관계에서 자신의 일부를 찾는다는, 마치 인생의 일부를 말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간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시작과 끝이 있는 이 관계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찾고 발전한다. 나의 존재를 남을 통해서 찾는 이 과정은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동시에, 가장 인간다운 모습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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