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에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유명했던 홍진호 선수에 대한 짤막한 뉴스를 보았다. 포커 플레이어로 직업을 바꿨는데, 의외로 대활약하고 있어 벌써 두 번이나 유명한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두 대회의 우승 상금이 12억 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홍진호는 2위의 상징 같은 선수였다. 너무나도 많은 2위를 했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말의 산 증인이었다. 실제 기록을 보면 선수 생활 동안 2위만 22번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2022년에 들어서는 새로운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어 두 번이나 우승을 했다. 2위만 22번 한 사람이 2022년에 보란 듯이 1위로 활약한 기사를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거의 수비학 수준이다. 의도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2등이 되는 것은,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는 가장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다. 실제로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따는 선수가, 동메달을 따는 선수보다 감정적으로 힘들다고 한다. 동메달을 딴 선수는 메달권에 들어간 것에 대한 안도감이 더 큰 반면에, 은메달을 딴 선수는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이 더 큰 것이다. 어찌 되었건 2등도 상당히 잘한 것인데 말이다.
아무튼 나는 홍진호 선수의 팬은 아니었지만, 그의 1위 소식을 듣는 게 좋았다. 누구든 간에 인간승리의 스토리는 깊은 감명을 준다.
사실 그에게 2등의 아픔을 수없이 안겼던 임요환 선수 또한 일찌감치 포커 선수로 커리어를 바꾼 바 있다. 이번 홍진호 선수의 활약 기사가 뜨며 다시금 소환되었는데, 홍진호의 누적 상금이 임요환을 넘어섰다는 사실까지 기사로 나온 것을 보았다. 더 웃긴 것은 기자가 임요환에 대해 잘 몰랐는지, 임요'한'이라고 오타를 낸 것이다. 두 번이나 언급되는데 틀린 것을 보면 확인 사살이다. 이것도 설욕이라면 설욕일지도.
홍진호와 관해서라면 내 여동생과 관련된 기억도 있다. 나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은 나보다는 더 성실하고 공부도 매우 잘했다. 고등학교에서 전교 등수를 노리는, 학교 선생님들이 모두 이름을 아는 그런 학생 중 하나였다. 그런데 가끔씩 상당히 엉뚱한 일탈을 하곤 했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홍진호의 팬이 되어 팬카페에 가입하고 활동했다.
나도 스타크래프트를 재밌게 했지만, 프로게이머에 반한 여고생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나에게 이해를 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런 여고생들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중 한 명이 내 동생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에, 동생은 함께 게임을 하던 세 명의 여고생을 끌고 경남 진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다. 홍진호 선수의 코엑스 경기를 직관하러 온 것이었다.
대학생이던 나는 여고생들끼리만 서울로 놀러 온 게 걱정되기도 해서, 코엑스로 가서 밥을 한 끼 사주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오므라이스 그런 걸 사줬던 것 같다. 동생의 친구들은 (동생만큼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아니었지만) 공손하고 예의 바른 아이들이었다. 네 명이서 한 번씩 피시방에 가서 2:2로 게임을 한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오는 코엑스에서, 서울의 화려함에 취해 한껏 들떠 있는 표정들이었다.
아무튼 그런 애틋한 추억이 생각나서, 홍진호 선수의 1위 기사를 복사해 동생에게 카톡으로 보내 주었다. 니가 그렇게 응원하던 홍진호 오빠가 이렇게 승리했는데 기쁘지 않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동생(현 36세, 워킹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팬으로 활동한 것도 까먹었고, 원래 자기는 손절이 빠르다고. 아마도 홍진호는 코엑스를 구경할 핑곗거리였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역시 2등은 쉽게 기억되지 않는다.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