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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머리 제이슨 Sep 26. 2022

한문 선생님의 유일한 가르침

다니던 고등학교는 아주 오래된 사립 고등학교였다. 그래서 선생님들 또한 한 자리에서 수십 년씩 가르친 분들이 많았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수업이 재밌을 리가 없었다. 선생님들의 잘못이 아니다. 나라도 한 자리에서(특히 주변에 비닐하우스가 가득해 11월까지 거름 냄새가 나는 남자 고등학교에서) 수십 년 동안 한문 같은 거나 가르친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 같다. 


머리를 빡빡 깎은 경상도의 남자 고등학생들은, 지옥 같은 3년의 고교 생활에 재미를 부여하기 위해 선생님들에게 각종 별명을 붙여 주었다. 적어도 그때 학생들의 작명 센스만큼은 괜찮았다. 20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으니. 당장 떠오르는 건 날개(날마다 개지랄), 슈퍼맨(안경을 벗으면 믿을 수 없는 힘으로 학생들을 팼다), 잠수함(키가 160cm 정도였음), 나이키(옆머리로 감춘 대머리의 음영이 나이키 로고처럼 보였음), 원맨쇼(본인 말고는 아무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산적(산적 같이 생겼음), 로보캅(로보캅 같이 생겼음), 개몽둥이(별도의 설명은 생략) 등등...


일말의 특징이라도 있다면, 사악한 학생들은 집요한 관찰력과 소름 돋는 창의력으로 멋진 별명을 지어 주었다. 어떻게 보면 선생님들은 본명보다 별명이 주는 아이덴티티로 학생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었다. 유서 깊은 고등학교라면 으레 있는 추억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동안 별명이 전혀 붙지 않는 선생님 한 분이 있었다. 본명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남용? 조남용? 둘 중 하나다. 희한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선생님이었다. 과목은 한문 또는 윤리. 과목 자체도 특징이 없고, 성격이 거칠지도 않고, 외모에 특징이 있지도 않았다. 얼굴은 기억나지만 그림으로 그릴 수는 없는... 그런 분이었다. 하지만 나이 40을 먹고 나서 갑자기 이 선생님이 떠오른 계기가 있었다. 


얼마 전부터 시간강사로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2학기부터는 두 군데로 나가게 되었다. 학교로 출근하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 수업을 들어 봤자, 학생들이 인생을 바꿀 만한 지식을 얻는 건 아니다. 그들의 기대치도 낮고, 나의 능력치도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남길만한 게 있을까? 그냥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운전을 하던 차였다. 


민식이법 때문에 추가된 30km 단속 카메라를 지나치며 속도를 늦출 때였다. 갑자기 고등학교 때 한문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께 배운 것 중에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그분의 대사 그대로가 기억에 남아 있다. 


"너거들이 인생을 살면서 뭔가 성공을 하고 싶으면, 명심해야 하는 게 있다. 똥 눌 때는 똥 누는 데 집중해야 하고, 공부할 때는 공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공부하면서 똥 싸는 생각이나 딴생각에 빠지지 말고, 똥 싸면서 공부한다고 책 들고 가는 뻘짓도 하지 마라. 똥 눌 때는 딴짓하지 말고 똥만 누고 나와라."


때는 1998년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이세이 미야케 터틀넥에 뉴발 조깅화를 신고 세상에 아이폰을 소개하기 9년 전에. 한문 선생님은 전 지구인들이 전화기를 들고 똥 싸러 가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 지금쯤이면 노쇠한 몸을 누이고 통탄에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 설마 돌아가신 건 아니려나. 


스마트폰 없이는 거의 일상이 불가능하면서도, 때때로 스마트폰에 대해 견딜 수 없는 혐오를 느낄 때가 있다. 거의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좀 더 똑똑하지만 정보에 중독된 노예가 되고 있다. 거기에 치질의 위험도 점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한 번에 하나만 하는 것. 


지금 시점에는 거의 아무도 이룰 수 없는 미지의 가치가 되어 가고 있다. 왜냐면 스마트폰은 모든 것을 동시에 하는 세상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모든 타인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나 혼자 속 편하게, 또는 뒤쳐지는 느낌까지 감수하며 한 번에 하나만 할 수 있을까? 소파에 누워 TV를 보며 인스타 피드나 뉴스를 읽다가, 갑자기 아랫배에 신호가 와서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두고 혈혈단신 화장실로 들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지 헤아릴 수 있을까.


얼마 전에 재밌는 미국 개그를 들은 적이 있었다. Dave 뭐시기 하는 사람의 트위터였다. 


I saw a guy at Starbucks today.

No iPhone.

No tablet.

No laptop.

He just sat there.

Drinking coffee.

Like a Psychopath.


오늘 스타벅스에서 한 남자를 보았지.

아이폰도 없고, 

태블릿도 없고, 

노트북도 없이.

그는 그저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커피 전문점에 앉아서, 다른 것은 하지 않고 커피만 마시는 모습이 사이코패스처럼 보일 만큼. 세상은 한 번에 하나만 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한 번에 하나만 하는 대인배가 되어 보고 싶다. 강단과 기개를 갖춘, 세상의 기묘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선생님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하지만 24년이 걸려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 이 글은 커피숍에서 녹차 마들렌과 디카페인 커피를 곁들인 채로, 주식 시세 창을 확인하며 쓰게 되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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