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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이 Nov 15. 2022

지켜주기 위한 위선

홍콩과 장국영

홍콩 풍경 / 그림_은우

사후 100년이 흐른 예술가는 그가 남긴 작품과 연구 자료를 토대로 그를 접하지만, 예술가와 동시대를 보낸 사람들은 각기 다른 순간에 그를 조우해 저마다 특별한 레이어를 쌓게 됩니다. 제가 배우 장국영에 관심을 가졌을 때 이미 그는 이 세상을 떠난 뒤였는데, 은우님에게 장국영은 홍콩영화의 붐이었던 시절 전성기를 누린 대스타로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죠. 


불량소년의 비밀음료

이름만 듣고 마셔봤다가 실망하는 주스가 있어요. 바로 코코넛 주스와 사탕수수주스입니다. 처음엔 그저 달콤할 거라 상상하는데, 막상 먹어보면 밍밍하거나 예상한 맛이 아니라서 실망하는 듯해요. 헐리우드로드에 있는 '쿵리(Kung lee)'에 가면 시원하고 달콤한 사탕수수주스를 맛볼 수 있습니다. 장국영이 나온 영화 <시티보이즈>의 촬영지가 홍콩에선 거의 다 없어졌으나 이곳만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요. 장국영 팬분들도 의외로 여기가 <시티보이즈>에 나왔는지 잘 모르더라구요. 이 영화에서 장국영이 불량학생으로 나오는데, 불량학생이 마시는 음료가 사탕수수주스라니 조금 귀엽지 않나요? 불량학생이라면 자고로 입술과 혀가 파래지는 푸른 손바닥 사탕을 두 개 정돈 먹어줘야.

몽콕이랑 센트럴 위주로 다니면 홍콩은 그저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때 리펄스베이에 갑니다. 이곳엔 홍콩 연예인들의 별장이 많은데, 실제 리펄스베이에 장국영의 자택도 있었습니다. 장국영은 이사를 자주 다녔고 집에 대한 집착이 크지 않았어요. 홍콩 곳곳에 장국영의 집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마지막 집은 몽콕에 있었다고 합니다. 


변화를 만드는 건 결국 많은 벌새의 날갯짓

홍콩 배우들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할 때 독음으로 하는데요.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중국인의 이름은 표준 중국어 발음으로 해야 합니다. 성룡은 청룽, 주윤발은 저우룬파 이렇게요. 하지만 성룡은 그냥 성룡이나 영어이름인 재키 챈으로 표기를 원하고 주윤발 역시 원어 표기를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장국영은 생전에 따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천안문 사태 이후에 중국에 대한 반감이 더해졌고 중국 인권 탄압을 크게 비판한 적이 있어서 다른 배우들과 마찬가지 아닐까 유추해봅니다.  

 

장국영은 한번도 자신의 성적 취향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어요. 다만 언론들이 이런 걸 악용했죠. 장국영을 보면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장국영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과열된 취재 열기가 많이 문제 됐거든요. 장국영은 평소에 인권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시아 최초로 동성 결혼을 법제화한 게 대만인데요, 홍콩에서 동성혼을 법제화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작은 움직임이 큰 물결을 만들고 있지 않나 싶어요. 

장국영 / 그림_은우

그때는 있고 지금은 없는 것, 씨네코아와 장국영 

대학생 때 종로 '시네코아'라는 극장에서 왕가위 콜렉션으로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봤어요. 장국영을 인상 깊게 본 첫 영화가 <아비정전> 입니다.  아, 참고로 나머지 두 편은 <화양연화>와 <2046> 인데 중간에 본 <화양연화>는 꿈에서 본 것 같아요. 장국영이 양어머니와 다툴 때 양모는 아비를 무시하긴 해도, 장국영이 혼혈이란 것을 말하지 않아요. 당시 혼혈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그걸 아비가 알게되면 자존감이 떨어질 것을 알기에 지켜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워하고 싸우더라도 최소한 지켜줘야 하는 걸 아는 거죠. 사람들은 위선을 나쁘게 생각하는데 어떤 이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게 있다면 위선으로라도 존중해줘야 하지 않을까. 

 

<해피투게더>는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로 나오자마자 바로 상영금지가 됐다가 무삭제판은 10년 뒤에 공개 됩니다. 사실 그냥 평범한 사랑 이야기잖아요. 그때 당시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이었는지 보여주죠. 지금은 뭐 크게 달라졌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LGBTQ 영화가 개봉은 할 수 있으니까. <해피투게더>의 원제가 춘광사설이에요. 구름 사이에 보이는 봄 햇살. 다투고 헤어지고 슬퍼해도 그 사이에 둘이 함께한 추억들이 있다는 것 아닐지.  <종횡사해> 란 영화를 말하고 싶어요. 장국영이 나오는 영화는 유독 슬픈 게 많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본인이 죽거나 홀로 남거나 하는 건데, 장국영의 영화 중 몇 안되는 해피엔딩의 영화가 바로 이겁니다. 장국영의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아해요. 


지난 해(2017) 말에 있었던 한 아이돌 가수의 죽음이 떠올랐어요. 장국영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홍콩에서 6명의 팬이 투신했는데, 그 아이돌 죽음에 관련한 보도에서 죽은 경위나 방식을 구체적으로 명기하지 않고 모든 기사 하단엔 우울증이 있으면 상담센터 찾아가라는 멘트를 덧붙이는 등 공식 보도 지침이 생겼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엔 서로 조회수 올리느라 다투듯이 죽음 관련 기사를 뽑아냈거든요. 평소 친분은 없었어도 저 역시 한동안 우울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지침이 생겨서 조금 다행이에요. 


주변에 힘들어하는 지인이 있으면, 내 아픔이 먼저라고 내세우지 않고 타인의 아픔을 깎아내리지 않고 상대방의 아픔을 지겹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모양의 슬픔을 안고 있는 것 뿐이니까요."힘내" "기운내"라는 말도 외려 힘들어 하는 사람을 타자화 시키는 것 같아요. 굳이 해결책을 주려고 꼭 무슨 역할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얘기하면 들어주고 도울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스팟모음

- 쿵리 사탕수수주스(kung lee; 60 Hollywood RD. Central)

- 리펄스베이(Repulse Bay)


영화모음

<시티보이즈> 1994

<아비정전> 1990

<해피 투게더> 1998

<종횡사해> 1991



더 많은 스팟과 내용은 링크 확인(해당 오디오클립으로 연동되는 QR코드 지면 삽입)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5/clips/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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