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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젠 Dec 30. 2020

고양이가 있고 위스키가 있는, 부산의 바<motti>

부산 모티바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게 1년도 훌쩍 넘은 것 같다. 높고 높은 산꼭대기에 숨겨져 보석같은 위스키 보틀을 저렴하게 판다는 부산 위스키 여행의 성지이다. 미리 예약을 해야한다고 해서 부산행 비행기를 타기 전 문자를 보내두었다. 


"띵동."


색감이 바랜 붉은 대문의 벨을 조심스레 눌렀다. 반응이 바로 오지는 않지만 초조해하지는 않는다. 2~3분 남짓이 흐르고 사장님이 손수 문을 열어주신다. 


"고양이가 할퀴어서요. 조심하셔야 되요."


인사를 마친 다음 사장님이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고양이에 대한 주의였다. 1층은 오래된 바틀이 진열되어 있고 화장실이 있고 이런 저런 골동품이 쌓여있다. 바는 지하로 내려가야만 한다.


"계단이 가파르니 조심하세요."



좁고 가파른 계단의 양 옆에 끝자락이 너덜거리는 영화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서인지 아주 오래된 영화관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가면 비밀스러운 바의 모습이 드러난다. 크지 않은 공간에 ㄱ자 바와 테이블 두개가 놓여있고 책장에는 책이 가득 있으며 눈길 가는 모든 곳에 낡은 골동품이 있다. 손님 없이 텅 비어 있는 바에는 한 자리와, 2시간 뒤 예약 손님의 두 자리가 세팅이 되어 있었다.  



피트충인 나는 처음부터 피트 위스키로 시작하려 했지만 목이 말라서인지 시원한 칵테일 한 잔이 간절했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허기만 채우고 온 곳이었에 긴 이동에 좀 지쳐있었던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칵테일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예외적으로 진토닉은 만들어주신다는 포스팅이 생각나 진토닉을 요청드렸다. 큰 얼음에 몽키 47에 토마스 헨리 토닉워터를 섞어 만들어 주셨는데 딱 기분 좋게 맛있게 먹었다.  



탄산수와 물, 과자 등을 미리 세팅해주신다. 탄산수는 한 잔 술을 다 마시고 난 뒤에는 입을 헹구는 용도라고.



자연스레 책이 읽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짐을 지하철 보관함에 두고온 탓에 책도 없고, 태블릿도 가져오지 않아 핸드폰으로라도 ebook이라도 펼쳐볼까 했지만 핸드폰 용량 문제로 실패했다. 그래서 노래를 듣고, 들려오는 옆 테이블에 이야기도 엿듣고, 사장님과 한 두마디도 주고 받고, 고양이도 관찰하며 느긋하게 분위기를 즐겼다.


"걱정하지 말고, 설레여라!"


내 인생의 다음이 궁금하지 않던, 설레는 것이 불가능해보였던 시절을 통과한 요즘의 나는 많이 설레며 살고 있다. 걱정은 이따금 하지만 설렐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애석하게도 피트 위스키 라인업이 많지 않았다. 그 중에서 처음보고 독한 녀석으로 골라봤다. 57.3도의 블랙 애더의 블랙 스테이크. 술을 따라주시고 물도 몇 방울 넣어서 서브해주신다. 캬라멜과 아몬드 밀크초콜릿 화사한 과일의 맛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쉐리 와인과 쿰쿰 자두의 맛과 맵고 알콜의 찌르르함도 뒤따른다. 화사한데 목넘김이 따갑고 처음엔 피트가 강했는데 에어링하니 많이 사라졌다. 위사 공구 블랙 애더가 그랬듯 확실히 거칠고 강한 느낌을 감추지는 못한다. 정말 오랜시간 천천히 마셨다.


안녕 꼬랑아~~


모티바의 꼬랑이는 꽤나 호기심 많게 바 안을 휘젓고 다닌다. 내 신발끈을 풀을 듯 신발을 할퀴기도 했다.



사실 두 번째 잔도 피트를 먹고 싶었는데 대부분 먹어본 것이기도 했고 사장님이 카발란을 추천해주셔서 한잔 마셨다. 카발란은 늘 먹을 때마다 맛이 달라서 약간 망설여졌으나 이 보틀은 맛있다는 사장님 말에 믿고 시켜보았다. 57.1도 카발란 솔리스트 포트 캐스트이다. 본드 냄새가 살포시 나고 달고 끈적한 포트 와인의 맛과 느낌이 위스키와 어우러져 있다. 쌉싸름하면서 약재맛, 향신료와 후추맛 등이 뒤 따른다. 


두 시간 넘게 있다 버스가 곧 끊길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를 사서 방에서 혼자 먹을 예정이라니 여기까지 와서 방에서 회를 먹는 건 아니지 않냐며 추천해주신 예도랑에 전화를 걸었으나 이미 영업이 끝난 상태였다. 검색해보니 분명 반할 게 분명한 곳이라 진짜 가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걸로. 사장님이 알려주신 아저씨 대구탕에서는 그 다다음날 해장을 하기도 했다. 사장님과 딱히 대화를 많이 한 것도 뭔가 술이 유난스럽게 마음에 든 것도(피트충은 강피트를 마셔야 행복해지기에,,) 아니었지만 공간 구석 구석 깃든 정성스러운 손길이 느껴져 분위기만으로도 따스해지고 여유로워지는 그런 곳이었다. 벼르고 별렀던 모티바로 부산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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