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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젠 Jan 01. 2021

유럽에는 논알콜 칵테일만 파는 바가 있다? 부산 아티크




부산에 도착한 날, 모티에서 10시까지 마시고 혹시 차가 끊길까 서둘러나와 숙소가 있는 해운대로 향했다. 무거운 짐을 이고지고 이동한 탓에 온몸이 욱씬거렸다. 고작 5kg 조금 넘는 배낭에 이토록 몸이 아프다니, 10kg도 넘는 배낭을 메고 설산을 넘었던 그 시절이 아마득하게만 느껴진다. 핫샤워를 마치고 몸이 개운해지니 비로소 허기가 진다. 동네를 둘러볼 겸 밖으로 나간다. 회와 먹으려고 피트 위스키 쿨일라를 챙겨왔기에 굴이나 회나 뭔가 신선한 해산물을 포장해오고 싶었지만 밤 늦은 탓에 마땅치가 않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어딜 가야할지 몰라 서성이다 미리 봐둔 바, 아티크로 향했다.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입구가 찾기 어렵고 맥주집 간판 아래 통로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있었으나 맥주 집의 영업이 끝나 컴컴해 근처에서 조금 헤맸다.



좁고 가파른 계단. 모티에는 좁고 가파른 계단을 아래로, 아티크에서는 좁고 가파른 계단을 위로 올라간다. 살면서 이렇게 가파른 계단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위로 아래로 하루에 두 번 마주한 것이 재밌다. 



모티가 지하 골동품 창고라면 아티크는 고풍스러운 다락방이다. 벽난로와 샹드리에 소파 등이 고풍스러우면서도 편안하게 장식되어 있다. 마치 유럽에 사는 이웃의 부자 미망인 할머니의 다락방이랄까? 잘꾸며졌지만 온기가 있고 고급스럽지만 뭐 친근하다는 그런 뜻이다. 바를 잘 다니지는 않지만 몰트바의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는 딱 질색이다. 자고로 바는 편안하고 맛있게 술을 마셔야 하는데 너무 고급스러우면 주눅이 들기 때문일거다. 또 그렇게 대놓고 '고급스러워요'를 표방한 곳 치고 저렴한데 없다는 것도 그 이유다. 그런 면에서 아티크는 그 균형감이 좋았다. 



바 안에는 2명의 바텐더가 바 안에, 1명의 외국인 손님이 바 밖을 채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바에 자주 안다녀서 그런지 늘 바를 입장할 때는 머쓱함이 있다. 머쓱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메뉴를 보고 첫 잔으로 아티크의 시그니처 칵테일, 아티크 롱티를 시켰다. 외국인 손님과 바텐더들은 영어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초상권은 소중하니까 얼굴이 나오지 않게 칵테일을 만드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데 문득 바텐더분이 웃으며 말을 한다.


"저희는 초상권이 없어요. 마음껏 찍어 올리세요."


"정말요?"


어디를 가든 초상권을 침해할까 전전긍긍했었는데 상관이 없다니 마구잡이로 찍어본다.




아티크 롱티는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를 좀 변형한 칵테일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재료가 들어가고 민트류의 시원한 맛이 더해졌는데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는데 괜찮았다. 칵린이는 칵테일을 많이 안먹어봐서인지, 칵테일맛을 잘 몰라서인지 핵존맛이라고 엄청나게 감탄해본 칵테일을 사실 만나본 적이 없다. 칵테일의 가격은 15,000~18,000원 정도로 비싸지 않다.



원래는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몸을 일으킬 생각이었는데 외국인 손님과 바텐더들과의 대화가 재미있어 귀를 쫑끗 세우고 듣다가 나갈 타이밍을 놓쳤다. 짧게 말하자면 독일 포함 유럽 호텔 바에서는 최근 알콜 드링크를 전혀 팔지 않고 논알콜 드링크를 파는 데가 많이 생겼다는 얘기였는데 의아한 마음에 불쑥 물어보았다.


"대체, 왜 논알콜 드링크만을 판매하는 거야? 어떤 이유에서야?"


"뭐 말하자면 채식이나 오르가닉을 표방하는 것과 같은거 랄까? 트렌드야."


"그러니까, 채식주의자들이 콩고기를 먹듯이 칵테일과 유사한 맛의 논알콜 칵테일을 만든다는 거야?"


"응,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리고 그 칵테일에 쓰이는 진이나 럼은 논알콜이지만 실제로 더 복잡한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알콜만 없을 뿐 비슷한 맛을 내기 때문에 오히려 가격은 더 비싸."


나를 포함한 한국인 세 명은 일제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우리 모두 그 바에는 가고 싶지 않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 했다.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것 아닌가??? 술 맛과 비슷한 취하지 않는 비싼 술을 나는 절대 마실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는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건 술쟁이들의 입장이고, 술을 못마시지만 술 맛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유효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더라..)



올드패션드를 한 잔 들이키면서 이 흥미로운 대화를 조잘조잘 나누었다. 아티크의 올드패션드의 기주는 와일드 터키 라이여서 약간 매운 맛이 두드러졌는데 그것 또한 매력이 있었다. 데메라라 비정제 설탕을 사용해 미리 만들어 놓은 시럽을 더하고 비터를 더해 완성! 단맛이 강한 편이었으나 매운 라이 위스키의 맛과 비터의 맛과 조화로워서 그다지 튀지 않았다. 시럽이 단 편이라 일부러 더 달지 않게 파인애플과 체리는 입가심으로 마지막에 먹으라고 따로 내어준다. 



중간중간 팝콘을 리필을 끊임없이 해줘서 허기진 배를 팝콘으로 다 채웠다. 위스키를 한 잔 할까 봤는데 피트 위스키 중 내가 안먹어본 라인업은 없어 굳이 고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부산이고 서울에서만큼 사람들이 위스키를 많이 찾지 않기에 종류가 많이 없다며 다른 바를 흔쾌히 추천해 주기도 했다. 서면에 가면 술꾼, 술고래라는 뜻의 프랑스어를 이름으로 갖고있는 바 뷔베르를 가보라고. 좀 더 위스키 라인업이 많을거라 하여 적어는 두었지만 결국 가지는 못했다. 독일 손님이 바텐더분들도 모르는 칵테일을 요청해서 레시피를 찾아 만드는 재밌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즐겁게 마시고 덕분에 즐겁게 대화했다고 손님과 바텐더분들께 인사를 하고는 홀연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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