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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Nov 19. 2023

신화의 해체

2006-07-23에 쓴 글

20세기의 결정적인 아이콘이 된 사진이 있습니다. 그 사진이 보여준 시각 메시지가 한 세기를 표현할 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사진이 실제 촬영된 과정과 그 결과 나온 사진의 의미가 맥락적으로 연결되기 힘든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결과로써의 사진이 과해석 되거나 오해석 되었다고 보고 사진의 진위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 결정적인 구도를 포착한 사진이기에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 진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면서 사진의 리얼리티를 수정하는 것이 더욱 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필름만이 유일한 현장 기록의 수단이던 시절에도 사진의 진실성은 여전히 문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피사체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사진가의 의지가 반영되기 때문이겠죠. 아래의 사진은 신화가 된 사진이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사진이기도 합니다.


Joe Rosenthal, Raising the flag on Iwo Jima (February, 1945)


태평양 전쟁의 가장 유명한 기록인 이 사진으로 조 로젠탈은 퓰리처 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적인 구도와 미학으로 인해 조작되었다는 의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군인의 증언은 이 사진의 상징성을 훼손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미 해병대가 이오지마에 상륙한 지 4일째 되던 날, 해병 2대대의 사령관인 챈들러 존슨 대령은 미군이 최초로 상륙한 일본 영토인 이오지마섬의 정상에 미국기를 게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해병대가 기를 쓰고 깃발을 올리자 멀리서 선상에서 이 장면을 바라보던 해군성 장관 (the Secretary of the Navy) 은 그 깃발을 자신이 기념품으로 가져가려고, 깃발을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열받은 존슨 대령은 '이 지저분한 섬에 살고 있는 그 어떤 새끼들도 볼 수 있도록' 더 큰 깃발로 첫 번째 깃발을 대체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오지마 섬의 정상인  Suribachi  섬을 향하던 로젠탈은 자신이 첫 번째 국기 게양을 놓쳤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오지마의 첫 번째 국기 게양 사진은 종군 기자였던 10시 37분  Lou Lowery에 의해 이미 촬영되었고 로제탈은 깃발 옆에 선 군인들의 포즈 정도만 촬영하려 했습니다.

로우리의 첫 번째 깃발 사진


다행히 몇 분 후에 첫 번째 기를 내리고 두 번째 기를 올리는 순간이 생겼고, 로젠탈은 이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그가 1/400의 셧터 스피드로 포착은 사진은 그의 평생의 걸작이 되었습니다만, 전술한 바와 같이 너무나 결정적인 순간이었기에 조작되었다는 의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실상은 조작되진 않았지만 사람들의 생각처럼 최초의 깃발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조작된 사진으로 의심받는 걸작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Robert Capa의 스페인 내전에서 사살당하는 공화국 측 민병대의 모습 또한 구설수의 한가운데 서있다고 합니다. 너무나 결정적인 순간이기에 이 역시 조작여부를 계속 의심받고 있고, 최근까지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진의 진위와 병사의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지뢰를 밟고 유명을 달리한 카파는, 이 사진에 아무런 설명을 붙이지 않아 여전히 많은 사람의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Death of a Loyalist Soldier 1939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도입되어 사진의 조작이 너무나 쉬워진 요즘, 사실을 반영한다는 사진의 효용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사진의 진위 여부를 더욱 의심해야 되는 21세기에는 이제 이런 보도 사진으로 신화를 쌓는 일조차 불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방송에서 보도되는 화면은 항상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모든 사건과 사고의 현장에 카메라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위한 그림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구나 디지털 기술이 미디어 생산의 모든 분야에 개입하게 된 지금, 미디어가 생산하는 콘텐츠의 진위 여부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디지털 기술의 콘텐츠를 수정, 조작하는 것에만 영향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나 생각을 생산해 내는 요즘,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해 수용자의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가운데 팩트를 체크하고, 펙트 이면에 있는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언론사와 언론인의 기능은 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드라마 PD의 삶은 항상 허구의 사실과 그림을 만들어내기에 카메라를 앞에 두고 양심에 거리낄 일은 없습니다. 이 점은 저널리스트에 비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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