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드라마 알쓸신잡 3
드라마 제작은 누가 할까?
2000년도 이전에는 드라마를 기획, 제작, 방송하는 모든 과정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인력이 관여하는 예가 많았다. 드라마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도 지상파 방송사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드라마는 당연히 그 방송사 채널을 통해 방송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외주제작사에서 드라마를 기획하고 제작한다. 드라마를 기획하는 인력이 외주제작사에 소속돼 있고, 그 결과물을 지상파 방송사에서 구매해서 방송하는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 물론 제작의 실질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방송사의 시설과 인력이 깊은 관여를 하고 있었으나, 외형적으로는 외주제작사가 제작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드라마 제작의 주도권이 2000년도 이전에는 지상파 방송사에 있었는데, 2000년대 이후에는 외주제작사로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라마 제작의 주도권은 드라마의 기획을 누가 했느냐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드라마의 기획은 누가 할까?
대부분은 프리랜서인 작가가 주축이 되어 기획이 이루어진다. 열에 둘셋 정도 작가와 연출자가 함께 기획한다. 열에 하나 정도 드라마 PD가 기획을 하고, 이 기획에 따라 작가를 섭외한다. 2000년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때 큰 차이점은 드라마 제작의 주도권, 드라마의 기획이 지상파 방송사에서 외주제작사로 넘어간 것이다. 특히 히트작을 내서 편성이 보장된 A급 작가가 방송사 소속의 계약작가에서 외주 제작사 소속인 계약작가로 이동했다. 이로 인해 제작의 주도권이 외주제작사로 넘어간 것이다(노동렬, 2015; 장용호 · 노동렬, 2008).
그런데 모든 방송사에서 탐내는 A급 작가를 어떤 드라마 제작사가 보유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거에는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게 시혜를 준 것처럼 드라마를 편성했다면, 이제는 A급 작가를 보유한 제작사가 방송사를 선택해 드라마를 편성하는 권력의 역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이용석 · 김정현, 2017). 드라마 기획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작가를 누가 보유하느냐에 따라 편성을 결정지을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2011년까지는 지상파방송사는 여전히 A급 작가의 드라마를 방송할 수 있었다. A급 작가를 KBS, MBC, SBS 등 특정 방송사로 묶어두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편성을 무기로 외주제작사를 통제해 A급 작가의 작품을 편성한 것이다(이효진, 2019). 외주제작사로서는 지상파방송사 외에는 제작비를 조달할 투자처나 방송할 플랫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양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 2012년부터이다. 종합편성채널의 개국하고 tvN과 JTBC가 드라마 편성을 확대하자 드라마 시장에서 A급 작가의 드라마가 tvN과 JTBC로의 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채널이 많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지자, 작가, 배우, 스태프 등 드라마 제작 핵심 인력의 인건비가 올라갔다. 제작 비용이 올라감에 따라서 드라마 제작이 반드시 수익을 창출한다는 확실한 공식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작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다. 이와 함께 2012년 이후에는 A급 작가에 이어 지상파 출신의 A급 연출자의 이동도 동시에 가속화되었다(정준희, 2014).
성공 경험을 축적한 A급 작가를 확보해서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방송사, 외주제작사 등 드라마 제작 주체의 전략이 A급 작가의 수급 부족으로 인해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따라서 A급 작가가 아닌 신인 작가나 일반 작가로 제작해야 할 드라마의 편수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이에 A급 작가에게 의존하지 않으면서 드라마의 편성을 확보하고 스타를 캐스팅하며,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단계, 즉 드라마의 사전 기획과 집필 단계는 더욱 중요해졌다.
노동렬 (2015). 방송 드라마제작산업의 인센티브 딜레마 구조. <방송과 커뮤니케이션>, 16권 1호, 35-79.
이용석·김정현 (2017). 텔레비전 드라마의 외주계약 형태 분석. <한국방송학보>, 31권 4호, 85-129.
이효진 (2019) 온라인. 드라마: 미디어 3.0 권력이동의 시작. (Meritz Research. 2019. 3. 27.) URL: http://home.imeritz.com/include/resource/research/WorkFlow/20190315104653616K_02.pdf
장용호·노동렬 (2008). 드라마 산업의 수직적 해체와 생산요소 시장의 부상 과정. <방송문화연구>, 20권 1호, 153-185.
정준희 (2014). 신규 복합 미디어 기업의 부상과 제작자 엑서더스: 종합편성채널 승인 이후 방송제작 부문의 창의성 재배치 동학. <한국언론정보학보>, 66권 2호, 2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