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라마 제작에서 AI는 당연한 것인가?
이 글은 지난 2024년 방송학회 학술대회의 <Ai와 방송 산업의 변화> 세미나에서 토론한 내용을 중심으로 쓴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도입되었고 모바일 테크놀로지로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의 삶에 또 다른 비약적 변화를 일으킬 기술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AI, 인공지능입니다. 당연히 AI는 미디어 산업에도 전파되어 각 분야의 활동에 도입되고 있으며, 새로운 혁신의 가능성을 두드려보고 있는 단계입니다.
배우의 스킨 톤과 피부를 보정하는 마스킹이라는 뷰티 CG기법이 있습니다. 인간의 표정이라는 것이 아주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집니다. 뷰티 CG는 상당히 손이 많이 가고 비용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CG라서 컴퓨터가 다 알아서 할 거 같지만, 1초에 24장에서 30장에 달하는 프레임 단위로 작업자가 점검하고 다듬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입니다. 3년 전쯤 이 마스킹 작업을 AI의 Deep Learning 방식으로 해낼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배우와 과거 연기 영상을 AI에게 학습시키면, 현재의 모습을 넣고 학습한 대로 과거의 전성기를 재현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결과물을 보니 당장 방송에 쓰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이 보였습니다. 확보할 수 있는 과거의 영상이 많을수록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AI는 귀납적 추론의 결과인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의 문자, 영상 텍스트를 학습하고, 거기에서 나타나는 잠재적 패턴이 있다면 그것을 토대로 해, 인간이 제시한 새로운 임무에 대응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전통적인 CG기법으로 인간의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들고, 비용도 드는 마스킹 기법은 노동력과 비용을 절감하는 AI의 결과물로 대체될 것입니다.
미디어 학자들은 기술이 콘텐츠를 규정할 수 있다는 기술결정론을 주장합니다. 한 편 기술이 등장하게 된 사회문화적인 관계를 강조한 기술의 사회적 관계를 중요하다고 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이론이 다 타당하다고 보는 쪽입니다. 특정한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신기술이 나타나고, 그 신기술은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콘텐츠에 영향을 주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카메라, NLE 편집, 컴퓨터 그래픽의 도입 등 새로운 기술은 과거의 아날로그 방식의 프로덕션 문화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과거의 문화를 극복하는 것뿐 아니라, 디지털 시대이기에 가능한 새로운 콘텐츠가 나타났다고 봅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인해 가능해진 판타지물을 생각해 보시면 수긍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디지털 기술은 누구나 소유할 수 있지만, 소유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클럽재(Club Good)와 같습니다. 돈 낸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는 배제성은 있지만, 물건이 충분해 누구나 다 구입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OTT 서비스와 같은 것이죠. 아이러니한 것은 미디어 업계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신기술이 도입되면 그 기술을 소유하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쉽게 휩싸이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카메라가 새로 나타나면 곧 모든 제작진이 그 카메라를 쓰고 싶어 하고, 곧 모두가 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면에서 AI가 미디어 업계에 확산되리라고 믿는 것은 당연한 추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문화적인 요구로 AI 가 도입되었지만, 곧 AI는 미디어 업계에서 클럽재가 되어 결국 프로덕션의 모든 단계와 사후 처리에까지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AI가 인간의 노동력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 이것은 '자동화'의 측면입니다. 미디어 업계에서 자동화의 측면에서 AI의 도입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드라마를 분류하기 위해 인간의 손으로 태그를 붙여가며 드라마의 배우를 분류하고, 장르를 지정했지만, 이제 AI가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를 분류해 내고, 장르를 골라서 배치합니다. 한 배우가 무명 시절에 작은 역할로 어떤 드라마에 나왔다면, 담당 연출자도 그것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는 안면 인식기술로 인해 그 배우의 과거 출연분을 발견해 내고, 그 배우의 팬에게 과거 작품을 추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드라마 제작의 후반 작업, 즉 편집, 자막. CG, 색보정과 같은 일련의 작업은 AI로 인한 '자동화'의 기법이 곧 확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극을 하나 촬영한 후에 AI에게 "<왕자의 게임>과 같은 룩으로 색보정해 줘"라고 하면 뚝딱 그런 색상으로 보정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동화의 측면에서 AI의 도입은 이제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창의성의 부분입니다. AI는 프로듀서나 작가를 대체해서 드라마의 기획이나 대본 집필등 창의적인 부분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2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