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왜 넷플릭스에 팔려고만 해? 플랫폼에 던지는 세 가지 질문.
지난 편에서 살펴본 K-드라마의 위기 상황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 드라마 산업의 위기를 말하는 드라마 제작 주체에게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왜 넷플릭스에만 의존하는가? 지역별 OTT는 대안이 될 수 없는가?", 둘째, "드라마의 고비용 구조 때문에 글로벌 OTT에 의존한다면, 저비용 드라마를 만들어 위기를 타개할 수는 없는가?", 셋째, "어떤 조건이면 다시 한국 드라마 생태계가 부활하는가?"가 그 질문이었다. 이번 편에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이 질문들에 구체적으로 답해보고자 한다.
고비용 구조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사는 어떻게 살아남고 있을까? 답은 하나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드라마가 흑자를 내려면 글로벌 OTT, 특히 넷플릭스에 선판매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넷플릭스가 제작비의 70%를 투자해 주면 20억-30억 원의 흑자를 낼 수 있다.
회당 제작비 10억 원 기준으로 넷플릭스 유통 수익 7억 원, 광고 수익 2억 원, 협찬 등 사업 수익 1억 원에 부가 수입을 추가하면 흑자가 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넷플릭스에 팔지 못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북중미의 Viki, 홍콩의 Viu, 일본의 U-Next와 같은 지역 OTT 유통사로부터는 제작비의 30% 정도만 투자받을 수 있다. 같은 10억 원 제작비 기준으로 지역 OTT 유통 수익 3억 원, 광고 수익 2억 원, 협찬 수익 1억 원, 부가 수입 1억 원을 합쳐도 총 7억 원에 불과하다. 회당 3억 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12부작 기준으로 보면 넷플릭스에 판매할 때 20억-30억 원의 흑자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 36억 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 심각해서 대부분 40억-50억 원 수준의 적자가 불가피하다.
지역별 군소 OTT의 지불능력과 구매력이 이렇게 약화된 이유는 무엇보다 시장 규모의 압도적 격차가 문제다. 글로벌 OTT의 시장 지배는 이미 전 지구적 현상으로 고착화되었다. 지역 OTT들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을 다 합쳐도 단일 글로벌 OTT 수익의 50% 미만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KCA, 2024). 세계 각 지역에서도 글로벌 OTT들이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어 지역 OTT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또한 지역 OTT의 수익성과 영향력 감소로 지불 능력에 한계가 있어 독점 콘텐츠 확보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글로벌 OTT와 저작권 양도를 전제로 한 선판매가 K-드라마 산업의 유일한 안전판이 되었다. 이들이 유일하게 남은 대형 투자자이고, 이에 반해 방송사는 드라마 편성을 축소해 수익 구조를 방어하고 있다. 드라마 제작자는 투자 유치가 어려워 생존의 한계 상황에 내몰려 가고 있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24a).
"회당 6억-8억 원 규모의 저비용 드라마 편성을 늘리자"는 주장이 업계에서 종종 제기된다. 성공 조건으로는 A급 배우 캐스팅을 지양해 출연료를 최적화하고, 신인 배우를 발굴해 주연으로 기용함으로써 신선함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언뜻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글로벌 OTT 및 지역 군소 OTT의 콘텐츠 매입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스타 파워가 없는 드라마는 해외 판매 자체가 어렵다. 또한 현실적인 제작비 회수 구조를 설계하기도 어렵다. 광고 수익만으로는 제작비 회수가 어려운 상황에서 저비용이라고 해도 여전히 위험 부담이 크다.
때문에 저비용 드라마에 대한 방송사와 제작사의 시각도 다르다. 방송사는 위험 부담을 이유로 부정적이다. "캐스팅이 좋지 않으면, 글로벌 OTT뿐 아니라 지역 OTT의 콘텐츠 매입 가능성도 매우 제한적이다. 더 현실적인 제작비 회수 구조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방송사의 일관된 반응이다. 반면 제작사는 생존 전략으로서 저비용 드라마에 좀 더 긍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수익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속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 고비용 드라마 제작에 A급 인력이 쏠리면서 저예산 드라마 제작이 어려워지고, 신진 인력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톱스타들의 드라마 회당 출연료는 2억-3억 원을 상회하는 실정이다. 투자의 리스크가 커진 만큼, 방송사와 드라마 제작사는 도전적인 기획이나 시도에 소극적이며, 편성을 보장하는 A급 배우 캐스팅을 위한 유사 기획에 몰입하면서 콘텐츠의 다양성이 위축되고 있다. 한국 드라마 산업에 기회의 창이 점점 닫혀가고 있다(유진희, 2023; 한국콘텐츠진흥원a, 2024).
업계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드라마 편성 확대를 위한 핵심 전제 조건들이 있다.
첫째는 한국 광고 시장의 회복과 수출 및 내수 경기 안정화다. 방송 광고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현재 기존 방송사의 주 수익원이었던 광고 수익은 점차 줄어들고 있어서 경제 전반의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는 중국 시장 재개방과 신흥 해외 시장 확대다. 업계에서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이 바로 중국 시장의 재개방이다.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의 과금이 가능할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미중 간 경쟁이 심화되는 지금이 기회라는 분석이다. 만약 중국에서 정상적으로 과금할 수 있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중국의 14억 인구와 거대한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이는 넷플릭스 의존도를 크게 줄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하지만 이는 한국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복잡한 국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있어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다.
셋째는 실효성 있는 정책 도입 및 지원 체계 구축이다. 시장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이므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현재의 악순환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드라마 제작 주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정책과 규제가 작동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종합해 보면, 현재 K-드라마 산업이 직면한 문제는 개별 기업이나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지역 OTT들의 구조적 한계, 저비용 드라마의 수익성 문제, 그리고 생태계 부활을 위한 조건들을 살펴보면, 시장의 힘만으로는 현재의 악순환 구조를 깨뜨리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왜 넷플릭스에만 팔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최종 답은 이것이다. 다른 선택지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OTT 의존 구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이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이런 의존 구조의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콘텐츠의 획일화와 창의성 상실이다. 글로벌 플랫폼의 취향에 맞춰야 하고, A급 배우 캐스팅에 의존해야 하니 비슷비슷한 작품들만 양산되고 있다. 과거 한국 드라마의 강점이었던 다양성과 실험 정신이 사라져 가고 있다.
현재의 패자의 쳇바퀴 구조를 선순환 구조로 바꾸려면 악순환의 고리 중 어느 한 곳을 과감히 끊어내는 결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개별 주체들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보다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다음 편에서는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도 찾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생존의 길을 제시해 보겠다. 업계가 요구하는 정책 방안들과 함께 K-드라마 생태계 복원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