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의 방법이 아닌 방향에 대한 성찰
교사 수업 전문성의 의미
많은 교사들이 좋은 수업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서 교사의 수업 전문성을 생각해왔다. 윤근영(2007;81)에 따르면 교사의 수업 전문성이란 수업의 계획, 전개, 평가 및 관리 등에 대한 전반적인 수업 활동을 안정적이고 역동적으로 전개하고 다양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기 위해서 갖추어야할 지식, 기술, 태도에 관한 모든 능력이라고 하였다. 수업 전문성은 교사가 직업인이 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자질 또는 요건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교직도 직업인 한 그것에 상응하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유한구, 2001;69). 일반적인 수업 전문성의 의미는 수업도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의사나 변호사와 같이 모종의 목적을 효과적,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특정한 지식이나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활동의 성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업의 실제는 전문 지식과 기술의 적용 대상으로 간주하며, 학생을 수업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파악하고 수업 전문성은 수업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데 필요한 전문 지식과 기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밝히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유한구, 2001)이다.
수업 전문성의 의미에 담긴 문제점
이러한 관점에서 수업을 보는 문제점은 자칫 학교 수업이 단순히 지식의 전달, 즉 주지주의 교육의 형태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주지주의 교육은 수업에서 교사와 학생 간의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일방적이고 상하 관계가 명확하다. 그 이유는 주지주의 교육에서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기만 하는 주체, 학생은 지식을 받기만 하는 객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계적이고 경직된 관계에서는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기계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암기하는 행위만 반복하게 되며 서로 간의 인격성이 제거되고 상호작용이 드물기 때문에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기 어렵게 되고 결국은 계약적인 관계만이 남게 된다.
플라톤이 지적한 교육의 문제
나는 이러한 주지주의 교육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그리스 시대의 플라톤 철학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네틀십(Nettleship, 1925/김안중 외譯, 2010;24)에 따르면 플라톤은 진리를 추구하는 방식에 있어서 장황한 연설이나 설교를 통해서 학생들의 머릿속에 말만 잔뜩 집어넣는 소피스트들의 방식을 비판하였다고 한다. 지식을 여과, 전달하는 일을 주로 수행하는 소피스트들은 가능한 효율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었으며 이러한 역할에 집중한 나머지 진리에 대한 무관심, 언쟁에서의 승리 등 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상실한 것이었다. 이처럼 소피스트와 같이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상대방에게 완전한 진리를 전달할 수 없으며 심지어 지식을 전달하는 당사자도 진리를 알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육에서 일방적인 관계는 교육 당사자인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반성의 기회가 주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파울로 프레이리가 지적한 교육의 문제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 2003/남경태譯, 2004;2장)도 주지주의 교육을 교사가 학습자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의 ‘은행 저금식’ 교육이라고 비판하였고, 이러한 교육 방식은 학습자를 인간이 아닌 지식을 담는 용기로서 여긴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주지주의 교육은 지식을 암기하는 수준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의 인식력과 창의력을 발달시키는 교육이 될 수 없고 현실 세계를 개선시키기 보다는 변화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현실에 적응시키는 정도의 기능만을 할 뿐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지배자가 그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피지배자들을 쉽게 지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교육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지배의 수단인 것이다.
나의 수업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인간은 삶 속에서 다양한 상황을 접하게 되고 그러한 다양한 상황 속에는 옳고 그른 것들이 혼재하며 우리는 끊임없이 그러한 것들을 걸러내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서 옳고 그른 것들을 걸러내는 능력, 즉 인간의 인식력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현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인생에서 닥치게 될 수많은 선택의 길에서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지 못하는 데에 있다. 표면적으로 우리는 주지주의 교육 방식을 지양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이 주지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주지주의 교육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하고 주지주의 교육의 문제를 지식과 기술만을 가지고 해결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교사가 주지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학습자의 인식력을 고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토론식 수업, 문제해결중심 수업, 프로젝트 수업 등을 실행할 지라도 수업의 결과가 주지주의 교육의 효과를 야기한다면 그것은 주지주의 교육이 되는 것이다. 이는 수업을 하는 교사가 먼저 주지주의 교육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고 수업의 본질적인 목적과 결과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