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더불어 지식을 탐구하는 올바른 방법이 결국 공부의 성패를 결정한다
산파술, 소크라테스의 교육 방식의 가치
보통의 상식에 의거하면 교육은 지식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직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활동이며, 교육방법은 전달자와 피전달자가 누구이건 간에 주어진 지식을 동일한 형태로 복제하는 방법입니다(Nettleship, 1925/김안중 외譯, 2010;7). 그러나 일반적인 교육에 대한 생각과 달리 소크라테스의 교육으로써의 대화술(산파술)은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지적 교섭이자 마음을 성장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공동의 활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의 대화술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의 성장도 자연스럽게 이끌어준다는 면에서 기계적이기 보다는 인격적 교육이고, 일방적인인 교육이기 보다는 상호 협력적인 교육이었습니다.
변증법이란?
소크라테스의 대화술은 플라톤이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으로서 극찬한 변증법(dialectic)의 근원적 수단이었습니다. 홍윤경(2006;41) 박사에 따르면 변증법이란 단어는 플라톤의 대화편 중 메논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용어이고 ‘대화하다’의 뜻을 가진 희랍어 ‘dialegesthai’에 어원을 둔 변증법(dialectic)은 소크라테스의 대화술을 계승 또는 확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변증법을 단순히 논박으로 오해하는 일이 있는데 논박은 대화가 오가는 질문과 대답 사이에 사용이 되는 언어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않은 채 단순히 상대의 의견을 반박하기 위한 대화방식인 반면에 변증법의 목적은 일체의 가설을 폐기하고 확실한 제 1의 원리인 선의 이데아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선의 이데아는 보편적이고 공동체를 지향하는 세계로서의 선이며 세계의 개별 존재가 선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참고1) '선'이란? 네틀십(1925)에 의하면 현대적 의미에서의 선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쉽게, ‘선한 행동’으로 식별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며, 따라서 어떤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지표는 ‘선행’이다. 하지만 고대적 의미의 선에 들어있는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자신의 일을 잘 한다.’는 것이다. 본래 ‘선’이라는 뜻의 형용사형 단어인 ‘아가토스(agathos)’에 상응하는 명사는 ‘아레테(arete)’이다. 아레테는 행위자가 그것 덕택에 자신이 하는 특수한 일을 잘 알 수 있게 되는 특질을 뜻한다. 예를 들어, 눈의 아레테는 잘 보는 것이고, 귀의 아레테는 잘 듣는 것이며, 요리사와 제화공의 아레테는 각각 훌륭한 음식과 좋은 구두를 만드는 능력이다(Nettleship, 1925/김안중 외譯, 2010).
참고2) '이데아(idea)'란? 형식(form), 변하지 않는 원리, 다양한 사물들에 실재를 부여하는 원리나 법칙들 또는 이 변화하는 덩어리로서의 세계 속에 들어있는 단일성(Nettleship, 1925/김안중 외譯, 2010).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까?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선 자체에 관한 완전한 설명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매 상황마다 대화술을 통해 정의로운 행위의 선이 어디에 있는지 검토함으로써 철학적 마음(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의지)의 획득을 도와주고 선에 대해서 불완전하게나마 의식하도록 도와줄 뿐이라고 합니다. 선에 대한 불완전 의식은 매 상황마다의 선에 대한 검토를 의미하며 즉, 지속적인 아포리아의 상태 속에서 살아가야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변증법은 선의 이데아를 구하고자 하는 반복적인 과정이며 이를 지속하기 위한 방법이자 ‘정해진 교육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별도의 기법이나 절차가 아니라’(홍윤경, 2006;52) 교육의 궁극적 목적인 선의 이데아를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변증법이 추구하고자 하는 선의 이데아 즉, 진리의 속성은 추상적으로 표현된 불변의 원리 혹은 진리가 매 개별 현실 상황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고 어떤 형태로 구체화 되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즉, 지식으로만 존재했던 진리가 추상적 원리로부터 벗어나 현실 속에 투영됨으로서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지식으로 전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식이 추구하는 것은 세계 안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능력. 즉, 쉬놉시스(synopsis)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쉬놉시스를 갖추게 되면 현실 세계에서 부딪히게 되는 개별 상황마다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며 이는 곧 참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고3) 철학적 마음: 우리의 경험의 덩어리가 빚어내는 현상 속의 원리, 법칙, 또는 단일성을 끊임없이 찾고자 하는 마음, 즉, 이데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Nettleship, 1925/김안중 외譯, 2010).
참고4) 아포리아: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관념이나 생각이 부정될 때 겪데 되는 ‘헤어날 수 없는’난점을 가리키며 당혹감과 마비의 상태, 또는 무지를 의식하는 상태를 나타내며 변하지 않는 원리를 찾아보게 되는 마음(철학적 마음)도 수반한다(Nettleship, 1925/김안중 외譯, 2010).
변증법의 의의
변증법을 탐구하는 것은 공부 자세를 반성하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교과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그 내용을 알아가는 과정에는 관심이 없다면 진리의 발견과 과정에 관심을 두는 변증법의 의미는 더욱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변증법은 자칫 학습자의 삶과 아무 관계없을 수도 있는 ‘교과 지식’에서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시력'을 학습자에게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즉, 변증법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공부 방법'이기도 하지만 개별 지식을 삶과 연결하여 이해하는데 필요한 교과의 역할을 담당하는 ‘공부 내용’이기도 합니다.
공부에 대한 변증법적 관점은 공부를 단순히 지식의 습득 행위로 인식하는 현실에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많은 학습자들은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지식에 치중하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식이 지식의 틀 밖의 현실과 공존을 하지 못하고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공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경험이 야기하는 일체의 모순을 비추어볼 준거로서의 선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고자하는 저자의 ‘철학적 마음’을 배우는 일이며, ‘철학적 마음’의 소유자인 삶의 장인에게서 비로소 삶의 원리로서의 정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학습자는 공부를 통해 각각의 삶의 구체적 경험에 비추어 참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하며 선의 이데아를 구하고자하는 철학적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다음 회에는 구체적인 변증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