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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인숙 Sep 15. 2021

족자카르타 이야기

족자- 술탄이 다스리는 공화국 속의 왕국

제가 일년 전에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로 이사를 왔어요. 그래서 브런치에서 새로운 인도네시아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족자카르타 -공화국 속의 왕국>

글:채인숙 (시인)


내가 살고 있는 족자카르타는 아직 술탄이 실제적으로 도시 전체를 다스리는 “공화국 속 왕국”이다. 지금은 하멩꾸부워노 10세가 왕이고, 뒤를 이어 망꾸부미 공주가 왕위 후계자로 내정되어 있다. 왕은 딸만 5명인데 차기 왕위를 노리는 형제들과 보수무슬림들이 여왕을 옹립하는 것에 반대하자, 남녀는 동등하다고 헌법에 기재되어 있다고 헌재에 청원하여 후계자 승인을 받았다.


왕은 주지사직을 세습하며 공무원을 임명하는 등등 정치, 교육, 문화 전반에 걸쳐 자치권을 보장 받는다. 주민들도 아무런 저항감 없이 술탄의 지배를 인정하는 것 같다. 심지어 왕궁을 지키는 무보수에 가까운 군대의 일원이거나 악사가 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면, 하멩꾸부워노 왕가는 수많은 인도네시아의 술탄들 중에서 백성들을 이끌고 네덜란드에 대항하며 끊임없는 독립투쟁을 벌였던 거의 유일한 왕족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다른 지역의 술탄들이 네덜란드의 지배를 묵인하는 대가로 자신들의 특권을 그대로 누렸던 것과 크게 대조된다. 족자카르타 사람들은 술탄과 함께 했던 긴 독립투쟁의 역사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1825~1830년까지 5년간 자바를 피로 물들이며 네덜란드에 대항했던 디뽀네고로 왕자의 전투는 자바 주민 20만명이 희생되었던 큰 독립전쟁이었다. (족자 인구의 절반이 희생됨)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마카사르 섬에 유배되어 25년 간 옥살이를 하면서 책을 썼다.

하지만 끝내 족자로 돌아오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죽었다. 아직도 디뽀네고로 왕자는 인도네시아 독립과 저항의 상징적 인물이다.


이런 족자 술탄의 공로를 기려, 독립후에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유일하게 족자카르타의 왕정을 인정하고 특별자치구로 지정했다. 족자는 2차대전이 끝나고 인도네시아를 다시 지배하려고 들어왔던 네덜란드에 대항해서 독립전쟁을 벌였던 1945년~1949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임시수도이기도 했다


왕조가 유지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자바의 옛 전통이 탄탄하게 살아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대학교가 있고, 자와 미술과 바틱, 와양 그림자연극, 왕궁무용과 음악, 연극과 저항문학이 살아있는 곳이다.


족자와 관련된 우리 나라 인물이라면, 일제강점기가 막을 내린 무렵 조선인 허영(히나쓰 에이타로) 감독이 여기서 연극학교를 세우고 영화 잡지를 만들며 후학을 양성했다. 이곳 영화인들은 그를 인도네시아 영화의 아버지라 부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에선 대접 받지 못하는 친일 영화인이다.


오래 전 나는 자카르타의 영화필름보관소에서 그가 만든 “하늘과 땅 사이”라는 영화 오리지널 필름을 직접 찾아내어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돌려 본 적이 있다. 그날 그의 제자를 만나 인도네시아 영화의 역사에 대해 긴 이야기를 들었었다.

(아이쿠.. 이야기가 옆으로 새려 한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쓸 기회가 있을 테지)


아무튼, 오늘의 결론은 내가 그런 히스토리가 철철 넘치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


(사진은 하멩꾸부워노 왕가를 방문한 네덜란드 왕과 왕비 / 구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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