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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 Apr 30. 2016

#1. 제 팔자에 이별수가 있나요?

강가의 상담일지

#. 1 제 팔자에 이별수가 있나요?
 
  강가상담소엔 주로 20-30대의 연령층이 온다. 가끔 앳된 청소년들이 교복을 입고 오기도 하고, 드물게 40-50대의 어른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특징이 있다면, 어른 사람은 거의 혼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상담소는 전화나 문자로 예약을 받기에 어떤 사람이 상담을 할지 예상치 못한 그들은, 막상 상담소에 와서 자기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이가 앉아있으니 당황한 기색이 얼굴에 감돈다. 다짜고짜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라고 물으며 실망한 티를 내기도 하는데, 마치 ‘네가 내 문제를 어찌 알겠어?’라는 눈빛이다. 그런 눈빛 앞에서 쫄아서는 안 된다.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할 뿐.
 
 며칠 전 연달아 40-50대의 사람들이 상담소에 찾아왔었다. 3년 넘게 남편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는 가구가 되어버린 여성분.(도종환 시인의「가구」中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한 남성분은 ‘이 더러운 국가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싫다.’란 이야기로 말문을 여셨지만 양파를 까듯 한 꺼풀씩 벗겨보니 ‘부인과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라는 알맹이를 찾을 수 있었다. 헤어짐의 문제를 물으러 온 그들은, 푸릇한 감정을 가지고 ‘그 사람과 잘 될 수 있을까요?’를 물으며 좋은 답변이 나오기를 애타게 바라는 사람들보다도 더 간절해 보였다. 이별이 간절해 보였다. 
 
 ‘제 팔자에 이별수가 있나요?’라고 내담자가 물어왔다.
 
 사주팔자에서 '결혼운'을 볼 때, 남자는 1)'재성운'을 여자에게는 2)‘관성운’을 본다. 운이라는 것은, 곧 자신에게 펼쳐져있는 '가능성의 길'인데, 평생 재성이 펼쳐지는 사람도 없고, 관성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운이 이어지는 기간은 짧게는 2년 혹은 5년, 길면 10년, 20년 정도이다. 20년간 길이 이어진다면 운이 자신에게 부여하는 가능성을 꽤나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겠으나 2년, 5년이면 짧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운이 바뀐 다는 것은 인생의 초점이 달라진다는 가능성이기도 한데, 결혼운이 다하는 시점에서는 동반자와의 인연을 새롭게 적립해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별의 질문을 요청해 온 이의 사주팔자를 보니 지금 3)'비겁운'이 강해지는 시기라, 자신의 고집·아집이 세지면서 다른 이와 불화할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비겁운이 온다고 해서 전부 헤어지는 것은 아니니, 이별의 선택이란 사주팔자의 몫이 아니고 내담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갈라서고 싶은데 무엇이 걸리는가? 십중팔구 자녀의 문제다. '아이가 있어서요.', ‘아이 때문에 참아야죠.’ 필자, 결혼경험과 이혼 경험 모두 전무후무 하나 이혼 가정의 자녀로 살아오며 느낀 바가 있다면 아이들은 부모를 보며 관계 맺는 방식을 배운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부부가 3년간 말을 섞지 않으면서 아이 때문에 참으며 산다니, 그것을 보며 자라온 아이들의 차후 관계 맺음은 어떠하겠는가. 갈라서는 것이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아이에게 건강한 관계 맺음을 보여주는 것은 더 큰 도리라 생각한다. 모든 생을 누군가 때문에(위해서가 아니라 때문에) 참고 사는 것보다 이별이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이 되어 독립적으로 잘 살아가는 모습을, 아니면 새로운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만들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건강하지 않을까?
 
 사주팔자를 공부하면서 자주 마루타가 되는 것은 바로 가족이다. 필자의 사적인 이야기를 조금 꺼내면,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부모님은 별거를 했고, 서류에 도장을 찍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한 때, 모든 불행의 근원을 불안한 가정 탓으로 돌리기도 했었다. 탓해봐야 변하지 않을 것을 탓하고 있을 땐 참으로 불행하다. 하지만 사건의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 아니겠나.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되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걸린 듯하다. 우리 부모는 언제 어떻게 헤어졌을까 사주팔자를 분석해보면서 어느 특정 시기에 정해져 있는 이별 수라는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 시기에 각자에게 펼쳐져 있는 운의 흐름이 다를 뿐이었다.
 
 이별 문제로 찾아오는 어른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 생각한다. 터무니없는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내가 겪어온 시간이 강가상담소를 열어 이들을 만나기 위해 필연적이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 대해 경험하고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란 빈약한 짐작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이별수가 있나요?’란 질문이 ‘이별하고 싶지만 확인사살이 필요해요.’라는 말처럼 전달되어 오는 이들에게 이렇게 응답하고 있다. “용기를 내어 이별하고 행복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이에게도 좋아요.” (물론 양육비는 민감한 문제이다. 아이가 자신의 몫을 벌 수 있을 때까지는 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p.s 오랜만에 잉마르 베리만(스웨덴의 이름난 영화감독)의 ‘결혼의 풍경’이라는 영화를 다시 보아야겠다. 영화는 오랜 시간 함께 살다가 헤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아주 처절하게 보여준다. 이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대들은 꼭 감상하시길.



「각주」


1) 재성운 - 남자에게 '재성운'이란 재물, 결과물, 처리해야 할 일이다.(이 부분은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관계적으로는 아버지, 여자, 배우자와 연결이 된다. 

2) 관성운 - 여자에게 '관성운'이란 규율·규칙을 함께하는 사회적인 관계, 조직, 책임(이 부분은 남자도 마찬가지.) 관계적으로는 남자, 배우자와 연결이 된다. 

3)비겁운 - '비겁운'이란 여자, 남자에게 마찬가지로 주체성, 독립성, 고집, 자아의 확장이다. 관계적으로는 주위 사람들, 동업자, 친구, 형제와 연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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