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의 상담일지
#. 3 또 다른 차원의 이해와 과도한 분석질 사이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면 우리가 실제로 생각하는 현실의 삶도 허망한 것일 뿐…’ 이라고라. 필자, 편집회의에 참여하지 못하였더니 8월 호 주제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얘기를 툭 던져 받았다. 툭.
주제와 상담일지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지 종잡을 수 없어 머릿속이 아리까리해졌다. 요즘 내 삶에서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게 무엇일까 잠시 고민해보다가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다음 여섯까지다.
· 辛未年 戊戌月 丙寅日 庚子時 (신미년 무술월 병인일 경자시)
· 9-18-5-13-20-16 (은둔자-달-교황-죽음-심판-탑)
· 4번 유형
· INFP
· 1)천칭전갈 커스프
· Sun 210° 4'43.3517 0° 0' 0.7651 Moon 36°58'57.4306 4°35' 8.6881 Mercury 223°10'51.0584 -0°57'54.9599 Venus 163°53'52.6012 -0°33'48.0034 Mars 214°53'16.6489 0°13'42.1453 Jupiter 158° 8'30.5154 0°53'50.4614 Saturn 300°29'27.7161 -0°32'52.547 Uranus 280°20'28.4438 -0°22'10.9086 Neptune 284°12' 2.5337 0°45'40.1699 Pluto 229°29'27.2914 14°30'23.1474
· A
이 생뚱맞아 보이는 암호들은 무엇인가 하니, 필자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첫째는 필자의 사주팔자, 둘째는 수비학적 타로 원형 카드, 셋째는 2) 에니어그램, 넷째는 3) MBTI, 다섯째는 별자리, 여섯째는 점성학, 필자가 태어난 시각 하늘에 떠 있던 행성들의 배치도이다. 마지막은 이미 눈치 첸 사람도 있겠다. 혈액형이다. 이런 쪽으로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필자의 성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심 없는 이들에겐, 그저 암호로 다가올 것이다.
이 키워드들은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주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지만, 특정한 틀 안에 가두어 고정관념을 만들고 이해의 폭을 좁히기도 한다. 사람의 성향과 기질을 공부하다 보면 다른 차원의 이해의 문이 열리는 순간, 그 방 안에 갇히게 되는 이중성이 따른다. 비유하자면 이런 식이다. 오백 원짜리 동전을 생각하는 순간, 날고 있는 학도 동시에 떠오르지 않나. 강가상담소를 진행하다 보면 쉽게 빠지게 되는 함정이 있다. 사주의 4) 일간이 갑목(甲木)이라고 했을 때, ‘위로 곧게 자라려고 하는 특성 때문에 목표 지향적일 것이다’라던가, 혹은 은둔자 원형을 가지고 있으면 ‘단체로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기를 좋아할 것이다’라던가. A 하면 B라고 딱 떠오르는 것들. 이것들은 경계의 대상이다.
‘A=B’라는 공식의 무조건적 받아들임이 어리석게 느껴졌던 사건이 있었다. 사주팔자를 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사람들을 분석하는 흥미가 치솟아 마주치는 사람마다 물, 어떤 사람은 불로만 보였다. 자아에 관한 관심도 팽창하여 일간이 정화丁火인 사람의 특징을 찾아 읽고 또 읽고, 고개를 끄덕이고 또 끄덕였다. 온기를 나누는 촛불로서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끄덕) 촛불이 바람에 휘청거리듯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린다.(부정하고 싶지만 끄덕) 등등. 그러다 지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철학관에 놀러 가게 되었다. 사주 좀 배웠다고 호기롭게 내 일간이 정화라고 말한 뒤였다. 그런데, 아니란다. 병화丙火란다. 에?
태어난 시간이 밤 열두 시 즘이라 글자 두 개를 앞의 날로 보아야 한다고……. 여태껏 丁火와 나를 동일시해왔던 것이 丙火로 글자가 바뀜으로 해서 성향이 바뀌는 것인가 혼란이 왔다. ‘아, 그러고 보니 병화적인 면이 있었던 것 같기도.’ 그 순간에도 바뀐 글자의 특성에 나를 대입하고 있었다. 내가 나인 것이 아니고 이것이 나고, 저것이 나고, 스스로를 어떤 범주 안에 구겨 넣고 싶어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누구이며, 왜 이렇게 사는가?’ 원인을 알게 되면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허나, ‘내가 이래서 이렇구나.’ 그 원인에 고착되니까 원인이 다시 발목을 잡는다.
이후, 강가상담소를 시작하면서 다짐했다. 사주만으로(그리고 많은 성격유형분류의 결과물들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겠다고. 며칠 전,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자신의 태어난 날을 알지 못하는 이가 상담소에 찾아왔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다. 그 날, 그 사람의 성향을 분석할 근거가 되는 사주팔자 혹은 타로 원형 카드 없이도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첫인상에서 파악한 느낌은 대화를 할수록 점점 변해갔는데, 어떤 성향을 지니고 있을지 명확한 글자나 카드로 나오진 않지만 전달되어 오는 마음은 충분히 있었다.
상담을 마치면 가만히 멍 때리며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이 떠올랐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술자리에서 한 남자가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장면이었는데, 그 둘의 대화는 대략 이렇다.
남자 왈 : (무게 잡으면서) 우리 OO는 겉으로는 눈부시게 밝고 명랑하게 보이지만, 너의 내면은 어둡고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함이 자리 잡고 있지.
여자 왈 : (호들갑스럽게) 맞아 정말 맞아, 오빠는 어떻게 나를 그렇게 잘 알아?
음, 그래. 사람을 이해하는 데 그리 복잡한 분석이 필요한 것이 아닐지도.
- 각주 -
1) 커스프(Cusp)는 초승달의 끝이라는 뜻인데, 커스프 주간에 태어난 사람들은 앞의 별자리와 뒤의 별자리의 상반된 기질을 함께 가지게 된다.
2) 에니어그램은 사람을 9가지 성격으로 분류하는 성격 유형 지표이자 인간 이해의 틀이다. (출처-위키백과)
3) MBTI란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하여 보다 쉽고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한 자기보고식 성격유형 지표이다. (출처-위키백과)
4) 일간이란 사람이 태어난 년, 월, 일, 시에 배속되는 여덟 글자 중에서 천간(윗부분) 네 글자 중, 태어난 일을 의미한다.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중 하나가 자신의 일간이 된다. 사주팔자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설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