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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 Jun 07. 2017

#.4 탈출 청소년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의 소회

강가의 상담일지

#.4 탈출 청소년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의 소회 


 지난 날, 나의 가출은 ‘밑바닥 인생’을 만나며 막을 내렸다. 강변의 돌다리에 걸터앉아 아침이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밤, 겁을 상실한 중삐리는 환경운동 투사라도 된 것처럼 맞은편 담배 태우던 아저씨에게 담뱃재를 강에 버리지 말라며 훈계를 했다. 어이없어 하던 아저씨는 몇 시간 동안 자신의 밑바닥 인생과 지하세계에 대한 스토리를 한바탕 늘어놓고는 힘들면 찾아오라며 번호를 주고 네온사인 속으로 사라졌다. 그 아저씨는 나의 주소록에 그렇게 밑바닥 인생으로 저장되었고, 다시 만나게 될까 무서워 밤엔 돌다리를 찾지 않게 되었다. 


 타로카드를 배우기 시작했던 동기를 떠올려보면 십대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 위한 도구가 필요해서였다. 상담을 공부하려고 했던 것도 암울한 시절의 상처를 보듬고 성찰해서 나아가서는 그런 시절을 겪고 있는 이들과 공감하고, 아픔을 딛고 나아가야할 길을 함께 고민해주기 위함이었다. 요즘 강가상담소에서는 사주팔자풀이 만큼이나 타로카드를 펼칠 일이 잦아졌다. 최근 들어 청소년을 만날 일이 자주 생겨 타로카드를 시작한 동기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졌는데, 얼마 전에는 쉼터와 길거리를 오가며 생활하는 가출 청소년들을 만나 상담을 했다. 


 일반적으로 가출청소년이라고 하면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답이라고 여기지만, 그것은 너무 손쉽게 해결하려는 방법이다. 길 위에서 생활하는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길 위의 생활보다도 못한 것이기 때문에 엄연히 말하면 가출이 아니라 탈출이다. 한낱 치기어림 정도로 가출한 문제아들이 아닌 가정폭력의 피해자 이거나, 혹은 가족이 함께 생을 이어나갈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거나, 돌아갈 집이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 있는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이 제일 많이 했던 질문은 ‘앞으로 저 어떻게 되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관하여, 혹은 바로 옆에 앉은 자신의 여자, 남자친구의 속마음이 무엇인지 궁금해 한다. 그 애가 나를 떠날지 궁금해 하면서. 


 바로 옆에 상대방이 앉아있으면서도 그들은 그렇게 질문을 한다. 일대일로 만나 내밀한 교감을 나누며 대화를 하고 싶지만, 한시도 떨어져있지 않으려는 아이들 때문에 깊은 얘기보다는 겉도는 이야기만 오고가는 것 같아서 맘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최고의 난감한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앳된 커플을 만났다. “저 임신한 것 같아요. 일을 계속 해서 돈을 벌어야 할까요?” 나는 당황한 것이 얼굴에 드러날까 조마조마하며 확실한 것인지 물었다. “내일 테스트 할 텐데, 제가 여러 번 경험해봤는데 임신한 거 맞는 것 같아요.” "아. 그래, 그럼 내일 큰 문제가 결정이 나겠네." 


 옆에 앉은 소년은 왜 문제냐고 물었다. “낙태 안할 거예요. 좋아하니까 얘 잡으려고 임신을 원한 건데, 애기 낳아서 얘랑 나랑 기를 거예요.” 경솔하다. 너희가 어떻게? 라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의문들을 내려놓고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그 밑바탕의 정서를 가늠해본다. 그들의 상황이 딱하게 여겨지는 마음이 올라온다. 집을 나온 아이들은 다시 가족을 만들고 싶어 한다. 가족들에게 상처받고 길거리로 나온 그들이지만 다시금 자신의 가족을 만들기를 원하고 의지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비슷한 상황의 친구를 만나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않기를 강요하고 집착하면서 자신의 불안감을 표출한다.


 감상주의적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은 이성적인 판단들도 올라온다. 성숙되지 못한 어린 부모에게서 태어날 아이가 받을 상처들은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무한으로 반복 재생될 이 상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들에게 임신을 하는 일이 얼마나 큰 감당을 해야 하는 일인지, 준비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이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를 만드는 일인지를 아느냐고 오지 않은 미래까지 들추어내어서 다그친다면 이미 상처받은 가슴에 비수 하나를 더 꽂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했던 마음의 이유. 그 근원을 보면 따듯함에 대한 갈증, 지지받고 싶음이 있다. 지금 그 친구들에게는 남들에게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인정받고 이해받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과 만나고 대화 나눈 것들을 곱씹어보는데 막막함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겉도는 이야기들만 나눈 것 같아도 그들의 언어 속에서 전달되어오는 막막함이 고스란히 내 맘에도 다가왔던 가보다. 사람은 왜 겪는 걸까, 저마다 태어나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인데, 더 많은 결핍을 가지고 더 많이 겪어내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왜인지. 시련은 자기실현을 위해서 오는 것이라 여기자 정신승리를 해보려고 해도,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길거리와 쉼터를 전전하며 단단한 기반 하나 없는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그런 그들이 돌다리에서 번호를 건네주는 아저씨를 만나 살아가게 되는 곳에서도 삶은 존재하겠지만, 선택할 수 있는 삶이 그것뿐이라면 ‘삶의 어려움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은 배부른 자의 소리처럼 들릴 뿐이다. 


 독이 되는 것은 시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비관하며 사는 것이고, 약이 되는 길은 시련을 한 발자국 떨어져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 자신의 시련을 이해받고 지지받고 공감 받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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