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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Jun 14. 2024

어니

-단편소설 습작 2

   1


  나는 충남 부여 근방의 목장에 오기 전까지 광고 회사 사무직으로 일했다. 요즘처럼 취업하기 어려운 시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서 회사에 취직했다는 점만으로도 부모님과 친구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렇게 시작한 회사 생활은 일 년도 안 돼서 꼬이고 말았다. 밤낮 구분 없는 야근과 잦은 음주는 물론 기념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일만 하던 나는 업무 보고 시간에 성과를 재촉하는 상사의 막말에 넋이 빠져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사표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아직은 젊은 나이기도 했고, 책임져야 할 짐이라고 해봐야 나 자신밖에 없었던 상황 덕분이기도 했다. 호기롭게 사표를 내기는 했지만 퇴사하고 나니 생활도 금새 궁색해지고 주변 지인들의 눈초리가 점차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저히 사람 꼴은 보고 싶지도 않고 그들의 성미에 맞춰서 생활한다는 것이 성격도 맞지 않아서 머리도 식히고자 고향의 대학교 선배에게 연락을 취했다. 형은 충남 부여 인근에서 원유를 생산하는 목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내 연락을 받은 선배는 마침 목장 직원이 퇴사해 인력 수급이 필요했는데 잘 되었다며 흔쾌히 목장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것을 수락했다. 그 이후 나는 형의 목장 직원 숙소에 방을 얻어 들어가면서 목장 생활을 시작했다. 

  막상 목장에 도착했을 때 본 숙소는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작은 방이었지만 책상과 간이침대 그리고 욕실까지 있어서 생활하기 불편함이 없었다. 목장의 직원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어니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어니는 네팔 사람으로 형이 브로커를 통해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였다. 어니는 피부가 한국인에 비해 조금 까무잡잡하고 체구가 작았지만 둥근 얼굴형에 눈이 크고 맑은 청년이었다. 그는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일하기 편한 트레이닝복과 푸른색 장화를 신고 다녔다. 

  어니는 내 옆방 숙소에서 생활했는데, 그는 목장에서 업무가 끝나면 공동주방에 있는 냉장고에서 카레 가루를 꺼내 밥에 뿌려 먹었다. 처음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매끼 저녁마다 별다른 반찬도 없이 카레 가루를 밥에 뿌려 먹자, 나는 왜 매일 카레 가루를 밥에 뿌려 먹냐고 어니에게 물어보았다. 어니는 나의 물음에 머뭇거리다가 손으로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돈이 많이 들어요.”

  나는 어니의 말을 듣고 돈을 아끼는 것도 좋은데 노동을 마치고 먹는 저녁을 부실하게 먹어서야 쓰나 싶었다.

  “그래도 힘쓰는 일을 하는데 잘 먹어야지요. 뭐라도 제가 좀 사다가 가져다 놓을까요?”

  “아니요, 네팔 사람들은 고기 안 먹고 채소만 먹어서 괜찮아요.”

  “그래도…….”

  나의 호의를 어니는 거절했지만 차를 타고 동네 마트에 갈 일이 있을 때면 김과 계란 같은 간단한 반찬을 사다가 냉장고 넣어두었다. 나는 어니에게 마음대로 먹고 싶을 때 꺼내 먹으라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어니는 내가 사둔 반찬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니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고 그때부터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우리는 반찬을 나누어 먹으며 가까워졌고 친구처럼 목장 생활도 함께 했다. 

  어니는 이미 목장에서 일 년간 먼저 일을 해서 대부분의 목장 일에 능숙했다. 어니가 사실상 목장 업무에 있어서 사수 노릇을 했고, 나는 부사수가 되어 그에게 업무에 관해 교육받았다. 목장 일은 대부분 어니가 담당하고 있었고, 도시에서 회사 생활이나 하던 나는 목장 업무에 익숙하지 않아서 거의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미안한 마음에 어니의 일을 최대한 돕고자 애를 썼다. 어니와 나는 일을 마무리하고 저녁을 함께 먹으며 대화할 때가 있었는데, 나는 어니가 그렇게도 돈을 아끼는 이유가 궁금했다.

  “어니, 왜 그렇게 돈을 많이 아껴요?” 

  “나 고향에 가족 있어요. 월급 그쪽으로 다 보내. 그러면 아내, 아들 생활해요.”

   어니는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선배에게 물어봐서 알게 된 것이지만 어니의 나이는 서른 살로 그는 이미 네팔에서 결혼해서 일곱 살이 된 아이들이 있었다. 어니는 목장에서 일하면서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받는 족족 가족들에게 송금했다. 자신은 안 먹고 안 써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 

  또 어니가 목장에서 월급을 아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번 돈의 일부를 브로커들에게 주어야 했다. 네팔에서 한국으로 오간 비행기 편도 비용부터 시작해서 브로커가 일자리를 주선한 비용까지 어니가 갚을 빚이었다. 그래서 어니가 목장에서 일해서 번 돈의 대부분은 통장을 스쳤다. 그럼에도 한국으로 오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많다고 어니는 말했다. 나에게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이곳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땅인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어니는 자기는 운이 좋아서 형의 목장을 소개받아 안정적으로 일하고 돈을 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2     


  목장에서 어니가 주로 맡은 일은 소에게 먹이로 여물을 주고 소들을 착유실로 이동시키는 일이었다. 지게차로 뒷길을 막고 축사의 문을 열면 어니는 긴 장대를 들고 ‘가!’하고 소리를 쳤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어니의 외침을 듣고 소들이 느릿하게 차례대로 축사를 걸어 나왔다. 젖을 길게 늘어뜨린 소들은 어니의 소몰이를 따라 착유실로 이동했다. 착유실에 이동한 소들의 젖꼭지에는 곧 착유기가 물렸고, 푸르게 부푼 소들의 젖에서 쏟아진 원유들은 착유실 안의 냉각기에 옮겨졌다.

  그렇게 한 차례 착유 작업이 끝나면 점심시간이었다. 나와 어니는 목장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고 근처 소각장 부근에서 함께 담배를 태웠다. 어니는 밤마다 독학으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어서 발음이 조금 어눌하기는 했으나 일상적 수준의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어니는 예전에 네팔에 있을 때 무슨 일했어요?”

  “나 군인했어요.”

  “군인? 와, 혹시 장교 출신 아니야?”

  “아니. 네팔에 군인 많아요. 젊은 사람 할 일 없어요.”

  어니는 네팔에서 군인으로 일했다. 한국에 비해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네팔에서는 많은 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농사를 짓거나 군대에서 입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농사를 짓거나 군인으로 일해도 안정적인 연봉을 받을 수 없어서 네팔 출신의 젊은이들은 한국과 같은 외국으로 나가서 노동자로 일한다고 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어니도 한국에 입국한 것이었다. 어니는 수줍게 웃으며 자기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푸른색의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정면을 응시하는 젊은 여자와 곁에 갈색 반바지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소년이 보였다. 바로 어니의 아내와 일곱 살 된 아들이었다. 

  “어때요? 내 아내 그리고 아들.”

  “아내가 예뻐요. 아들도 잘생겼다.”

  자랑스럽게 아내와 아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미소 짓고 있는 어니에게 나는 오른손으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여주었다. 어니는 나의 엄지척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한껏 웃었다. 

  “고향에 돌아가 목장하고 싶어요.”

  “정말요?”

  “요거트 만들거에요.”

  어니의 꿈은 돈을 벌어서 네팔로 돌아가 목장을 운영하고 요거트 사업을 하는 것이었다. 네팔의 주식(主食)은 주로 채소들인데 신기하게도 소는 신성해서 네팔 사람들은 소고기를 절대 안 먹는다고 말했다. 대신 우유는 먹어도 괜찮아서 한국에서 목장 일을 배워서 요거트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밖에 일해본 경험이 없는 나는 어니의 꿈이 현실성이 있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무엇인가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멋있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었나? 남들이 대학교에 가고 부모님이 좋은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고 그래서 공부했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떠밀려 서울에서 고시원 생활을 전전하며 취업 준비를 하다가 겨우 광고 회사 사무직으로 취업한 것이 내가 성취한 삶의 전부였다. 무엇인가를 스스로 생각하고 이루고 싶었던 것이 없었던 나는 오히려 무엇인가 미래를 꿈꾸는 어니를 응원하고 싶었다. 

  “어니, 그 꿈 꼭 이루세요. 드림스 컴 트루.”

  “고마워요.”     



   3     


  목장의 아침은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한다. 다섯 시가 되면 목장 축사 주변에는 전등불이 켜진다. 그 시각쯤이면 축사에 쉬고 있던 소들이 일제히 울음소리를 낸다. 그 이유는 유방에 젖이 차올라 크게 부풀어 오르면서 쓰라림과 고통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소들이 울기 시작하면 착유 작업을 해줘야 한다. 

  곧 축사의 입구가 열렸다. 어니는 소몰이를 시작했다. 소들은 어니의 외침을 들으며 착유실로 이동했다. 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이동했는데 확연히 주변의 다른 소보다 큰 소가 앞서고 그 뒤를 다른 소들이 따라 걸었다. 검은 눈을 깜빡이며 희고 두꺼운 발목을 지닌 소가 길게 유방을 늘어뜨리고 착유실 안으로 먼저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무리 중에서 어린 소들은 착유실 입구 앞을 서성이며 무리에 끼지 못하고 행렬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나는 울타리를 경계로 착유실 근처에서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배는 능숙하게 착유 작업을 하며 신기한 얼굴로 소를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우현아, 저것들도 서열이 있다. 매일 착유실에 먼저 들어오는 놈은 먼저 들어오고, 마지막에 들어오는 놈은 가장 늦게 들어와. 신기하지? 저것들도 자기 영역이 있어. 그 영역을 침범하면 저희끼리 싸워.”

  “그래요? 축사도 좁은데 싸워요?”

  “저기 축사 중앙에 앉아있는 놈 보이지? 저 녀석 머리 위를 좀 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축사 중앙에 앉아있는 소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위에 커다란 선풍기가 달려있었다. 

  “저기 선풍기 보이지? 저 녀석들에게 바로 저기가 명당이다. 재들도 여름이라고 더위를 타. 목장에서 우유를 많이 짜내려면 저 녀석들 컨디션이 중요해. 컨디션이 좋으면 우유가 많이 나오고, 안 좋으면 우유가 많이 안 나오거든. 그래서 형이 좋은 먹이 먹이고, 덥지 말라고 선풍기도 달아놓았어. 그런데 저 녀석들도 더우니까 더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싸우고 가장 강한 놈이 저 자리를 차지해 앉아있는 거야.” 

  이곳 축사라고 해봐야 다른 목장들과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부로 함부로 나가지 말라고 철봉으로 울타리를 짜서 만든 다음 소들이 먹이를 먹을 수 있는 여물통과 그 옆에 큰 물통이 곳곳에 갖춰져 있었다. 그리고 천장에는 대형 선풍기 몇 대가 달려있고 바닥은 소똥과 뒤섞인 진흙밭이었다. 사람들이 보기에 축사 내부는 모두 같은 조건이었지만 소들 사이에서는 선풍기 바람을 바로 맞을 수 있는 자리가 우두머리의 자리이고, 소들의 서열이 정해지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럼 선풍기가 없으면 저것들 서열도 사라질까요?”

  “야, 그러겠냐. 저것들이 사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을걸. 선풍기 없어지면 물 먼저 먹겠다고 그 앞에 자리 깔고 앉아있을 놈들이다. 그리고 소들 서열 싸움이 문제냐, 여름에 선풍기가 없으면 원유 생산량 떨어지는 것이 문제지.” 

  “그런가요?”

  하긴 어떤 조직이든 위로 올라서는 사람이 있고 밖으로 점점 밀려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조직이란 수평적일 수 없다. 특히 효율성을 요구하는 기업에서 수평적 구조는 그다지 효율적인 구조가 될 수 없다. 같은 목적으로 같은 방향을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 말은 결국 누군가는 수직선은 꼭대기에 또 누군가는 그 밑바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후자에 속했고, 수직선 밖으로 사라진 존재일 뿐이었다.


      

  4

     

  며칠 동안 목장 생활은 변화 없이 반복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착유 작업을 하고 점심을 먹은 다음 오후에는 소들이 먹을 여물과 사료를 공급하고 수통에 물을 채운다. 그리고 끝으로 축사 내부를 돌아다니며 커다란 삽으로 소똥을 치우면 끝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오전 착유 작업이 끝나고 어니와 점심을 먹은 후 출산이 임박한 어미 소를 지켜봐야 했다. 출산이 임박한 어미 소의 자궁의 밖으로 곧 태어날 송아지의 다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어미 소는 자리에서 가만히 서서 계속 울음만 울었다. 그 모습을 의자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으니 잠시 후 송아지 한 마리가 바닥으로 와르르 쏟아지듯이 자궁 밖으로 나왔다. 

  털이 조금 젖은 상태로 송아지가 바닥에 누워 몰아서 숨을 쉬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감고 있던 눈을 뜨고는 눈알을 굴렸다. 검은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이 무척 순하게만 보였다. 자기 새끼의 털을 어미가 핥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직 다리에 힘이 없는지 일어서지 못하고 몸만 꿈틀거렸다. 

  “우현, 저기 다리 잡아!.”

  “다 …… 다리?”

  어니는 나에게 손짓하며 새끼의 뒷다리를 잡으라고 말했다. 나는 어니의 말에 따라 새끼의 뒷다리를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미 소가 두려워 선뜻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 무서웠다. 망설이는 내 모습을 본 어니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힘겹게 새끼를 등에 지고 일어섰다. 어니의 등에 업힌 송아지를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 나는 두 손으로 받쳤다. 나는 어니와 함께 새끼를 목장 건너편에 있는 다른 축사로 옮겼다. 

  목장에서는 소가 임신하고 출산하면 새끼를 어미와 떼어낸다. 어미와 떨어진 건너편 축사로 새끼를 옮겨서 인간 손에 길들이는 것도 낙농의 한 과정이다. 갓 태어난 새끼가 어미의 젖을 불필요하게 많이 빠는 것은 원유 생산에 비효율적이고, 어미와 함께 축사에 두면 임신한 다른 소들의 젖을 빠는 습관이 생겨서 나중에 자라서 그 버릇을 고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다른 축사로 옮겨서 관리해야 한다. 다행히 소들은 인간과 달리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래서 이 주 정도 같은 장소에 묶어놓으면 자연스럽게 어미는 물론이고 젖을 무는 습관까지 잊고 만다. 

  나의 머뭇거림 때문에 새끼를 혼자서 등에 업고 옮긴 어니의 이마에 땀이 맺혀있었다. 

  “어니, 미안해요. 도움이 되지 못해서.”

  “괜찮아, 처음이라 그래요.” 

  어니는 핀잔을 주지 않고 미소로 답했다. 어니는 옮겨온 송아지의 뒷다리를 들어보더니 성별을 확인했다.

  “수놈이에요. 수놈.”

  “수놈?”

  “응, 수놈.” 

   어니는 미리 준비해 온 노끈으로 옮겨온 송아지의 목을 감아 묶은 다음 남은 한쪽 끝을 울타리에 다시 감아서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묶여있던 송아지는 두 발로 서기 시작했다. 여전히 송아지는 축사 울타리에 묶인 상태였지만 제법 몸도 더 커졌고 젖병에 담긴 우유를 먹거나 누워서 잠을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축사 근처를 지나가면 순하게 앉아서 나를 지켜보기도 했다. 

  송아지는 코를 벌름거리며 혀를 내밀어 입맛을 다시고 고개를 숙인 다음 흙냄새를 맡기도 했다. 혼자서 놀고 있는 송아지가 제법 귀엽게 보일 무렵이었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흰 트럭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목장의 입구에 나타났다. 트럭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송아지들이 타고 있었다. 차에서 젊은 남자가 내렸다. 그가 나타나자 목장 착유실에서 일을 하고 있던 선배가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네, 안녕하세요.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먹었죠. 하하하. 저 녀석인가요?”

  “네. 데리고 가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려요.”

  선배와 남자는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익숙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곧 남자는 묶여있던 송아지의 목줄을 풀고 그대로 품에 안아서 트럭 짐칸에 태웠다. 송아지는 순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긴 울음을 울었다. 남자는 선배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말이 마치고 남자는 트럭의 운전석에 탑승하더니 바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남자가 송아지를 트럭 짐칸에 태워서 사라진 이유가 궁금해서 선배에게 물었다.

  “송아지는 어디로 가는 거에요?”

  “그런 게 있어.”

  말을 마친 후 선배는 착유실로 돌아갔다. 오전 작업이 끝나고 나는 점심시간에 어니에게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물었다.

  “어니, 오늘 아침에 송아지 트럭에 실려 가는 것 봤어요?”

  “응, 봤어요. 그거 수놈. 아무 필요 없어.”

  “아! 송아지를 파는 건가?”

  “아니.” 

  그렇게 말하고는 손으로 목을 그었다.

  “맛이 없어서 못 팔아요.”

  “……”     



  5


  나의 목장 생활도 어느덧 삼 개월이 지나 계절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목장은 갑작스러운 일로 비상이 걸렸다. 우리 목장 인근에서 제1종 가축전염병인 럼피스킨병이 발병한 것이다. 럼피스킨병은 소과 동물에게 발병하는 가축전염병으로 럼피스킨병에 걸린 소의 피부에는 돌기와 같은 피부부종이 생기고 내부 장기가 폐사하거나 원유량이 줄어드는 증상이 나타나는 가축병이었다. 

  형은 럼피스킨병이 자신의 목장에 퍼질까 봐서 노심초사했다. 럼피스킨병에 소가 한 마리라도 걸리게 되면 현재 관리 중인 목장의 모든 소를 생매장해야 했다. 물론 목장에서 럼피스킨병이 발생하면 정부에서 소값을 보상해 주지만 사실상 파산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부로부터 소값을 보전받는다고 하더라도 현재 시세로는 제대로 소값을 받을 수 없었고, 그동안 소를 키우기 위해 들인 사료비와 기타 부자재 비용 그리고 원유를 납품하기로 한 우유 가공회사와의 계약까지 틀어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목장이 유지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형 우유 가공회사들에 원유를 납품하기 때문인데, 럼프스킨병에 걸리게 되면 원유의 납품이 불가하고, 최소 육 개월 동안은 목장 가동을 멈추게 된다. 그 기간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것까지 생각하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정부에서는 목장주들에게 럼피스킨병 예방을 위한 백신접종을 명령하였고, 나와 어니는 백신 주사를 들고 소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소들이 여물을 씹거나 물을 마실 때 슬그머니 다가가 엉덩이에 주사를 놓았다. 얌전히 백신을 맞아주는 녀석들이 고마웠다. 나와 어니는 최대한 소를 자극하지 않으려 조심했다. 나는 어니의 보조로 상자에 쌓인 주사기와 약병을 들고 곁을 따라 다녔다. 

  백신접종이 약 일주일에 걸쳐서 거의 마무리가 되었을 때쯤이다. 어니가 주사기를 들고 소에게 다가갈 때였다. 흥분한 소가 갑자기 어니를 머리로 들이받으며 공격했다. 어니는 갑작스러운 소의 공격을 최선을 다해 피하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어니는 소의 머리에 치여 축사 울타리에 강제로 매달리듯이 날아갔다. 처음 본 그 광경에 놀란 나는 들고 있던 약병 상자까지 내던지고 어니에게 뛰어갔다.

  “어니! 어니! 괜찮아요?”

  “나… 나… 괜찮아요.”

  다행히 정신을 잃지 않은 어니가 힘겹게 말을 했다. 나는 어니를 조심스럽게 부축하고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아악!”

  어니는 옆구리 쪽을 부여잡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바둥거렸다. 아무래도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간 것 같았다. 소들에게 백신을 놓던 선배도 어니의 모습을 보았는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어니, 많이 다쳤어?”

  “사… 사장님…… 아파요.”

  어니는 손으로 옆구리 쪽을 가리켰다. 

  “안 되겠다. 병원으로 옮기자. 잠깐 기다려.”

  선배는 목장 창고로 달려가더니 들것을 가지고 달려왔다. 목장에서는 종종 소가 머리로 사람을 들이박거나 뒷발로 차서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들이 있었다. 그래서 목장 창고에는 안전사고에 대비해 들것이 구비되어 있었다. 나는 선배와 함께 어니를 조심스럽게 들것으로 실어 봉고차 짐칸에 옮겨 눕혔다. 

  “어니, 조금만 참아요. 바로 병원에 갈게요.”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어니에게 말했다. 어니도 내 말을 알아듣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봉고차 운전대를 잡았고 나도 그 옆 보조석에 앉아 함께 지역 인근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어니를 데리고 갔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어니는 의사로부터 진통제와 소염제를 처방받고 몸에 다른 이상이 없는지 MRI를 찍어 확인했다.

  검사가 끝난 후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어니의 갈비뼈 다섯 개가 골절되었는데, 다행히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지는 않아서 목숨에 지장은 없고, 다만 숨을 쉬기 불편한 상태로 두 달에서 석 달 정도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무리하지 않아야 뼈가 잘 붙고, 누운 자세에서 몸을 일으켜 세울 때 통증이 심하니 주의하라고 했다. 

  선배는 어니를 우선 병원에 입원시키고 나와 함께 목장으로 돌아왔다. 나는 어니가 석 달 동안 요양하면 완쾌된다는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소에 치여서 죽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나. 소에게 차인 어니의 모습을 떠올리자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형, 그래도 다행이네요. 입원해 잘 요양하면 낫는다고 하니까요.”

  “그래, 그렇지. 그런데 앞으로 어떡하냐?”

  “뭐가요?”

  “병원비도 나가고 석 달 동안 일도 못하지. 목장에 할 일이 좀 많냐.”

  선배는 몸을 다친 어니로 인해 목장 업무에 피해가 갈 것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선배의 말이 조금 냉정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마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선배에게 있었고, 적어도 내가 개입할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6

     

  입원한지 한 달이 지나자 어니는 이제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해졌다. 그러자 형은 어니를 병원에서 퇴원시켰다. 이제는 입원 치료 대신 통원 치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어니는 요양을 잘했는지 얼굴빛이 좋아졌다. 목장에서 일할 때는 조금 피로한 기색도 없지 않았는데 그동안 병원에서 잘 요양한 것 같았다.  

  “어니 얼굴이 많아 좋아졌는데요.”

  “병원에서 잘 쉬었어요.”

  어니가 희미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아무래도 갈비뼈가 아직 다 붙지 않아서 말하는 것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어니, 쉬어야지 어디가요?”

  “사장님이 목장에 오면 사무실로 오라고 했어요.”

  “그래요? 그럼 얼른 가봐요.”

  어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조심 걸어서 형이 업무를 보는 사무실로 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풀이 죽은 모습으로 어니가 사무실 밖을 나왔다. 눈가도 촉촉한 것이 눈물을 흘린 것 같았다. 나는 처음 무슨 일인가 했으나 일의 전말은 이렇다.

  선배는 사무실을 찾은 어니에게 약간의 치료비와 격려금을 지급하며 어니에게 근로계약을 종료하고 그만 네팔로 돌아가라고 했다.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았으나 어니가 몸을 다쳐서 당장 목장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브로커를 통해 새로운 값싼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어니는 자신이 몸을 다쳤을 때 병원까지 입원시켜 주고 퇴원할 때까지 돌봐준 사장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었지만 퇴원하자마자 해고 통고를 받게 되자 울음이 쏟아졌다. 어니에게는 꿈이 있었다. 한국에서 돈을 벌고 그 돈을 가족에게 보내는 일은 자기 삶의 희망이었다. 네팔로 돌아가봤자 할 수 있는 일도 뻔했고, 어떻게 해서든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해야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만약 목장에서 해고되면 네팔로 돌아가야 하는데, 몸도 성치 않아서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사장님, 쫓아내지만 마요.”

   어니는 불편한 몸으로 무릎을 꿇고 형에게 애원했다.

  “어니. 지금 다쳐서 일도 못하잖아.”

  “일할게요! 사장님! 일할게요!”

  어니가 다급히 말을 했지만 선배는 침묵과 함께 돈이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어니는 이게 마지막 최후의 통첩임을 알았다. 어니는 돈봉투를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처진 어깨로 어니는 숙소로 돌아가 짐을 챙겨 나왔다. 나는 몸이 불편한 어니의 짐가방을 대신 들어주었다. 잠시 후 목장 입구로 봉고차 한 대가 나타났다. 어니를 형의 목장에 취업시켜 준 브로커의 자동차였다. 차가 도착하고 긴 장발에 라이방 안경을 쓰고 덥수룩한 수염에 배가 나온 오십 대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브로커는 어니의 모습을 아래위로 훑더니 뒷자리에 타라고 손짓했다. 어니는 그의 손짓에 따라 자동차 뒷좌석에 탔다. 나는 들고 있던 어니의 짐가방을 그의 옆좌석에 놓아주었다.

  “어니…… 잘 가요.”

  어니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울음 섞인 웃음을 지었다. 

  “나마스테, 우현.”

  큰소리를 내지 않고 공손히 손을 모아 어니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곧 브로커는 어니를 태우고 근처에 서 있던 선배에게 인사했다.

  “사장님,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희 목장 지금 사람 급한 것 아시죠? 빨리 좀 부탁드려요. 어니가 한 달 동안 입원해서 병원비도 그렇고 지금 목장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손해가 막심해요.”

  “암요. 곧 저희 직원이 사장님께 연락을 드릴 겁니다.”

  “이번에는 키도 크고 튼튼한 사람으로 아시죠? 갑자기 다치는 바람에 이게 뭡니까. 번거롭게.”

  “저희 숙소에 사람이 보충되는 대로 바로 연락드릴게요. 요즘 여기저기 일손이 부족해서 바로 인력 보충이 바로 어려워서요.”

  “알고 있지만 좀 빨리 부탁드려요.”

  “하하하, 알았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남자는 인사를 마친 후 어니를 태우고 목장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니가 언젠가 봉고차에 실려 간 수컷 송아지처럼 보였다.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버려진 수컷 송아지처럼 어니도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목장에서 내쳐졌다. 나는 “나마스테”하고 인사하던 어니의 눈을 보며 버려진 송아지의 검은 눈망울이 떠올랐다. 어니는 울타리 밖의 버려지는 소와 다름이 없었다.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버려진 또 한 마리의 소를 바라보며 지금이나 그때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인터넷으로 어니가 남긴 나마스테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나마스테는 네팔에서 사람이 만나고 헤어질 때 존경을 담아서 하는 인사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어로 만났을 때는 “안녕하세요.” 헤어질 때는 “안녕히 계세요.”가 된다. 

  어니의 말처럼 과연 나도 안녕한 것일까? 만약 축사에서 어니가 다치지 않고 내가 다쳤다면 아마도 나는 곧 목장에서 내쳐졌을 것이다. 지금은 울타리 안에 남아 있지만 언제든 울타리 밖으로 내쳐질 수 있는 서열 낮은 소의 신세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무리의 바닥에서 버티고 살아가는 소와 그 안에 껴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소 중에서 어떤 소가 불행한 것일까? 둘의 차이는 한 겹의 불운이 누구를 먼저 가로질렀느냐의 유무였다. 그리고 불운이 나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나는 어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나마스테! 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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