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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링 Jan 29. 2018

그녀


푸른 숲이 우거지고 따듯한 햇살 아래 벤치에서 우리를 맞이할 줄 알았던 그녀는 어느 큰 복합상가의 3층, 작은 엘리베이터와 연결된 곳, 그녀보다 더 하얗고 주름진 사람들과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내 상상 속의 요양원과 우리가 그녀를 보내야만 하는 요양원과의 괴리감에 나는 그녀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앉아 고고하게 허리를 핀채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그녀 옆에는 무언가를 자꾸만 중얼거리는 노인, 손을 쓰지 못하는 노인, 외면과 시간의 허망함에 익숙한 듯 보이는 노인, 그런 노인, 노인들 뿐이었다. 그녀는 은색 머릿결을 한쪽으로 빗어넘겨 마치 명절날처럼 단정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녀는 뒤돌아 우리를 보았다. 어떠한 원망도 어떠한 증오도 내비치지않은, 수줍은듯한 웃음을 짓더니 작은 그녀를 바짝 감싼 휠체어 안전벨트가 성경책인 듯 만지작거렸다.

 몇 해 전 그녀가 생각이 났다. 여름이었다. 그녀의 집에 가기 전, 터미널 근처에서 참외 한 봉지를 샀다. 시골 인심이 좋아, 열 개를 샀는데 세 개나 더 주었다. 그녀의 집에 가 먼저 참외 봉지를 내미니 뭐 이런 걸 사오냐며 역시나 핀잔이다. 사이 좋게 하나씩 깎아먹고 그녀가 말했다.

참외는 김천인가.. 금천인가.. 거기 참외가 제일 맛나. 이것도 맛있긴 한데 참외에 김천인지 금천인지 스티커도 안붙어 있네. 이건 그 참외가 아니네. 그래서 덜 단거 같은데 그리고 왜 이렇게 많이 사왔누. 더 얹어줬어도 이걸 다 누가 먹는다고 좋다고 가져오냐.
 
그녀의 끝나지 않는 말에, 다음에는 그냥 하얀색 봉투에 만 원 짜리 다섯 장을 넣어서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난 이 참외 먹으면서 너 생각할거다. 참외도 많이도 사왔네. 하루에 하나씩 먹으면서 너 생각할테고… 잘 먹을게.

버스 시간이 다 되어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 참외 세 개를 가져가라고 했다.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무겁다는 나의 말에 그래도 몸에 좋은 거라며 가져가라고 했다. 도망치듯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급하게 따라 나온 그녀의 손에는 참외 한 개가 검은색 봉지 안에 들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온전한 모습을 본 건 작년 봄이었다.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나를 데리러 올 친구의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그맣고 빨간 소형차가 그녀와 내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녀에게 간다는 인사를 하고 차의 조수석에 앉았다. 차는 그녀를 앞질러 십여 미터를 간 후, 유턴을 하고 그녀의 앞을 다시 지나갔다. 친구는 친절하게도 창문을 열어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오늘 수고해요’라는 말을 하며 새하얗고 건실한 치아를 드러내어 웃어보였다. 그녀의 모습은 봄날의 하얀 눈을 닮아 있었다. 햇빛에 바래 하얗게눈이 부신 머리 아래로, 그녀의 미소는 정말 아름다웠다. ‘오늘 수고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도 마치 이순간을 위해 가장 고운 목소리로 가장 상냥한 톤으로 연습한 듯이 완벽했다.

 이제 그녀는 우리와 이야기는 했지만 우리가 누군지 잘 모른다. 나는 그녀의 딸도 되었다가 그녀 아들의 새로운 부인이 되기도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그녀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자기의 침대가 손님방 침대라며 우리보고 자고 가라는 그녀를, 노인들이 둘러앉은 식탁에서 나보고 밥을 먹고 가라는 그녀를, 공과금도 내야하는데 왜 용돈도 안주냐는 그녀를 보는데 이 감정은 어떤 걸까. 속에서 역겨운 것이 올라오는 듯 식도가 쪼그라들고, 가슴 한 쪽이 답답하다. 이 감정이 처음인양 내 몸 가득히, 그리고 깊숙히 밀려올라온다.

슬픔이었다.

누구에게 속한 슬픔도, 그녀로 인한 슬픔도 아닌, 단지 한없이 깊게 내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슬픔. 어쩌면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슬픔 같았다. 살아있음에 대한, 슬픔. 유예된 삶의 한 조각을 지켜봐야하는 슬픔. 타인의 정리되지 않은 파편들이 오롯이 나에게 다가오는 그런 슬픔. 목적지가 없는 삶에 혼자 남겨져버린 외로움이 먹먹하게 드리워진 슬픔.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런.. 슬픔. 이 모든 것이 가슴 깊숙히 밀려들어왔다.

슬픔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마치 예비하지 않은 이별을 맞이한 것처럼, 나에게 이미 그녀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기억 속 그녀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 뿐인데 그녀의 일부에 속해 있던 나 또한 점점 색이 바래져갔다. 내 작은 우주에 그녀라는 존재가 딛고 있던 땅이 내 작은 품보다는 훨씬 넓었음을, 그녀가 딛었던 자리엔 작은 들풀이 하늘거리며 바람 사이에서 춤을 추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내 기억 속 그녀의 젊은 날처럼, 그녀 또한 나의 청춘이었다.

그녀의 시선을 피해 내려가는 엘레베이터에 몸을 실은 순간, 깨달았다. 그녀가 무척이나 불쌍하고 가엽고 정말 가여운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그 낯설고 작은 공간에서 그녀가 만약, 정신이 온전할 때가 있다면.. 그녀는 소리내 엉엉 울지도 모를 일이다. 하얗고 아름다웠던 그녀, 그리고 이제는 나의 슬픔이 된 그녀, 그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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