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마스크, 백신 상온 노출... 2020년 의약품 도매상의 등장
기다리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만들어졌는데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 올해 우리가 겪어왔던 여러 파동들을 돌이켜보자. 아마도 더 시끄러울 것이다.
올해의 장면 1. 신성약품는 어쩌다 독감백신을 상온에 노출시켰을까?
2020년 9월, 인플루엔자 백신 국가 예방 접종을 하루 앞두고 예방 접종이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백신 배송 과정에서 일부 상온에 노출된 것이 알려지면서였다. 해당 백신은 회수, 폐기되었으나 이미 백신 접종이 완료한 사람들에게 여러 괴담들이 퍼지기도 했다.
의약품 유통에 나라에서 역할까지 정해줘요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생소한 '신성약품'이라는 업체를 알게 됐다. 신성약품은 의약품 유통, 관리, 배송을 하는 도매 업체이다. 일반적으로 제약회사가 의약품을 생산하면, 신성약품 같은 도매상에게 판다. 병원은 필요한 의약품을 도매상에다 주문해서 받는다. 업계에서는 이렇게 도매를 거쳐 병원에 납품하는 방법을 '간납(간접 납품)'이라고 한다.
간납은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제약회사에서 생산한 백신을 그냥 병원에 바로 보내면 상온 노출할 위험성도 적어질 텐데 왜 의약품은 도매업체를 거쳐서 가야 할까?
법이 그렇다. 우리나라 약사법에는 의약품 공급업자(일반적으로 제약회사)와 의약품을 보관, 배송하는 도매업체로 역할을 분리하고 있다. 제약사는 생산과 연구, 개발에만 전념하고, 유통은 의약품 도매업체에 맡겨 유통을 선진화하자는 취지에서 1990년대 만들어졌다.
또한 리베이트를 막자는 취지도 있었다. 제약회사가 병원에 직접 납품할 경우, 제약사가 의약품 가격을 할인해주는 방법으로 병원에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1만 원짜리 약을 8,000원에 납품하면 2,000원의 리베이트가 가능해진다. 간접 납품은 투명한 유통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다.
싸게, 싸게! 더 싸게!
국가 백신을 유통할 도매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은 일반적인 유통 과정과는 조금 다르다. 국가 백신 입찰은 나라에서 필요한 백신의 수량을 공시하면, 도매업체들이 제약사와 물량을 협의하고, 배송 마진을 계산해 투찰한다. 결국, 4번의 유찰 끝에 신성약품은 국가 백신 1259만 명분의 유통권을 1100억 원에 낙찰받았다.
신성약품은 백신 1도즈 당 8,620원에 낙찰받았는데 이후에 지자체들이 자체적으로 백신을 확보하기 위한 입찰에 비해 50% 싼 가격이었다. 진주시 독감 백신 입찰가가 1도즈당 1만 4,000원대로 백신 29만 도즈를, 제주도는 1만 6500원으로 16만 도즈를, 경기도 직원을 위한 백신에 4,000 도즈를 1도즈당 18,000원, 순천시는 1만 6,672 도즈, 1도즈당 1만 6,500원이었다.
아무리 많이 배송하면, 배송할수록 남는 구조이긴 하지만 국가 백신 입찰 당시 너무 싼 가격으로 후려쳤다. 이 때문에 4번 유찰이 되면서 백신 준비가 늦게 시작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어찌 됐든 싼 가격에 낙찰받은 신성약품은 하청 업체를 두고 배송하게 했고, 그 하청 업체가 재-하청을 하면서 상온에 노출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올해의 장면 2. 공적 마스크는 진짜 일감 몰아주기였을까?
COVID-19 초기였던 3월 우리나라에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마스크가 품귀 현상으로 KF94 마스크 1매당 가격이 4~5천 원 이상으로 폭등하며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국가에서는 '공적 마스크'를 공급한다. 기재부는 '지오영'과 '백제약품'을 공적 마스크를 각 약국에 공급하는 도매업체로 선정했다.
'가짜 뉴스'가 된 숙명
한 때,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가 돌았다. 영부인이 지오영 조선혜 대표와 깊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지오영에게 회사에 공적 마스크 독점권을 몰아줬다는 주장이었다. 조선혜 대표는 숙명여대 출신이고, 영부인은 숙명여고 출신이라 '숙녀회'라는 모임이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안면도 없는 남'이라고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숙명이란 이름의 공통점이 있지만 두 사람은 다녔던 고교도, 대학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급기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란에 ‘마스크 가지고 장난질인가’라는 제목의 글까지 올라오는 지경에 이른다.
정말 정말 만약에... 영부인과 조선혜 대표가 깊은 인연이 있었다면, 공적 마스크로 지금쯤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을 것이다. 도매업체 입장에서 공적 마스크 유통은 매력적인 사업이 아니니깐 친구에게 똥을 던진 거나 다름없다. 지오영은 공적 마스크로 수익성 높은 사업을 포기하면서 저마진 사업 때문에 야근을 해야 하고, 받지 않아도 될 언론의 감시를 받게 됐으니깐 말이다.
지오영, 공적 마스크 하게 될 숙명
도매업체는 제약회사와 병원 간의 유통을 중재하면서 의약품 배송료로 5~10% 마진을 갖는다. 1만 원짜리 약을 배송하면 500~1,000원 정도 남겨먹는 것이다. 보통 병원에 납품하는 약품들이 고가인 점, 한 번에 많은 약품을 단시간에 납품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마스크는 아주 저마진 사업이다.
지오영은 원가 1,000원 마스크를 1,100원에 납품했고, 마스크당 100원의 이익을 위해 전국에 17,000개 약국을 들러야 했다. 게다가 마스크 제조업체로부터 마스크를 공급받는 시간이 주말과 야간에도 일정하지 않게 들어오고, 공급 단위도 약국에 배송해야 하는 수량이 달랐다. 언제는 1개 포장이었고, 5개 포장으로 바뀌었다가 10개 포장으로 바뀌었는데 지오영과 백제약품에서 일일이 나누는 작업을 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았다.
어쩌면 공적 마스크를 공급할만한 도매업체는 지오영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일반인에게 낯설지만 의약품 도매 업계 1위 회사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10대 제약사의 목표는 1조 매출이었다. 2014년 유한양행을 시작으로 녹십자, 한미약품, 대웅제약이 차례로 1조 클럽에 들었지만 그보다 앞선 것이 바로, 2013년 지오영이었다.
마스크 대란 당시, 매점매석이나 폭리를 취하는 업체들이 COVID-19보다 더 악독했다. 이러한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업체는 전국적 약국 유통망과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고, 유통경로를 효과적으로 추적ㆍ관리할 수 있어야 했다. 업계 사람들은 누구나 지오영 급(?)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백신 시대, 이제는 의약품 배송의 질을 평가해야 한다
올해는 유난히 일반인에게 낯선 의약품 도매업체들이 뉴스를 장식했다. 아마도 의약품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COVID-19으로 의료, 보건, 환경, 복지,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가 간과했던 지점들이 발견되고, 점검이 이뤄지는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의약품 유통구조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해서인지 깊이 있는 논의점이 없어 안타깝다.
싼 게 비지떡! 인생의 진뤼지!
이제는 의약품 배송의 질을 평가해야 한다. 지금처럼 오로지 돈으로만 도매업체를 선정해서는 안된다. 물론, 국가와 각 병원에서 약품을 싸게 공급받으면 국민과 환자들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백신 상온 노출처럼, 국민과 환자들에게 투여되는 약이 규정에 따라 배송이 되는지, 도매업체가 그런 역량이 있는지는 최소한으로 점검해야 하겠다.
의약품을 싸게만 공급하는 업체를 찾을 것 아니라 운송할 능력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도매업체 별로 어느 정도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저온 배송이 가능한 차량이 몇 대이고, 각 지방에 있는 창고의 수와 크기는 어느 정도이며, 운송하는 직원들이 의약품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는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또, 도매업체 창고가 여름과 겨울에 폭염과 혹한에 방치되고 있는지 불시 점검이 필요하다.
백신 상온 노출로 시끄러웠을 당시,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중간 유통 과정에 뛰어드는 도매상들이 난립해 있고, 일부 도매업체는 콜드체인에 대한 투자나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유통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의약품 유통 과정을 지적했다.
백신 확보는 시간의 문제, 백신을 유통할 능력은 지금부터 문제
'요즘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라고 누가 물어보면 '코로나 백신 확보'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화이자가 개발한 신종 코로나 백신은 영하 70도, 모더나의 백신은 영하 20도로 수송해야 한다. 백신 확보보다 먼저인 것은 백신의 안전성 확인과 더불어 지금 백신을 가지고 와도, 안전하게 장기간 유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다.
아마도 내년 코로나 백신은 CJ대한통운, 용마로지스 같은 전문 배송업체가 운송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확보하려는 물량은 4,000만 명분이다. 두 업체만으로 소화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때 다른 의약품 도매업체에서 도와줬다면 좋았을텐데 그런 역량을 갖춘 회사가 보이지 않는다.
1990년대부터 정부에서 '의약품 유통'이라는 큰 산업을 나눠줘 지난 약 30년간 의약품 운송할 때마다 따박따박 배송 수수료를 챙겼는데 정작 의약품 도매업체들은 배송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지 않았다. 도매업체들도 물론 항변할 수 있겠다. 배송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고, 콜드체인을 갖춰도 그래 봤자 싸게 투찰 하는 도매업체가 유통권을 따낼 수 있었다고. 그러니 정부와 병원, 관심이 없었던 시민들도 함께 반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