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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호 그리고 보람 Dec 08. 2019

[윤] 월간 말레이시아-2019년 11월

2019년 11월의 Best와 Worst를 꼽아봅시다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세상에 어쩜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새삼 느낀다. 그래서인지 <브런치>에는 갖춰지고 잘 쓰인 글만 올려야 할 것 같은 약간의 압박 또한 느끼고 있다. 물론 고민 끝에 나오는 글을 올리는 것도 가치 있지만, 나와 보람이는 전업작가도 아닌데 무언가를 쓰는데 부담감을 느끼기보다는 무엇이라도 써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달을 정리하는 느낌으로,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을 하나씩 모아 보는 "월간 말레이시아"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한다. 비록 프로젝트명도 유명 가수의 그것을 차용했지만, 우리의 글이 우리의 표절보다 가취 있기를.




[Best] - 인센티브를 받은 날

한 달 동안 있었던 일 중 가장 좋았던 일이 인센티브라니, 세속적인 나의 마음에 대해 통탄을 금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돈을 떠나서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가장 의미 있었던 날 중 하나였다. 돌이켜보면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첫 회사도 아등바등 버티다가 그만뒀고, 두 번째 회사는 계약 종료로 그만두게 되고, 세 번째 회사는 일이 적성에 안 맞을 것 같아 하루 만에 그만두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나도 일을 잘 해내고픈 욕심이 있는데,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반복되니 '나는 회사생활이랑 안 맞는 사람인가.' 같은 별 도움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에서의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솔직히 말해 업무 자체가 즐겁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종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내 트레이닝이 끝나고 실제 업무에 들어가기 전 보았던 테스트를 잘 보지 못해서 업무를 잘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도 되었지만, 막상 실제 업무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할만하다고 느꼈고 심지어 어떤 부분은 꽤나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회사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일부 충족하여 첫 달 업무에 대해 인센티브까지 받게 되었으니 첫 시작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 온 Newbie라고 알뜰살뜰 챙겨주시고 도움 주셨던 2 분단(!) 동료들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

감사의 의미로 커피를 드리겠습니다 :)



[Worst] - 고양이 중성화 수술

나와 보람이는 10월 중순경, 오랜 고민 끝에 집 근처 LRT 역에서 자주 마주치던 고양이를 입양(=주워)해왔다. 첫 만남부터 고양이답지(?) 않게 강아지처럼 자꾸 우리를 쫓아왔지만 '외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애완동물을 키울 여건이 될까?' 싶은 마음, 그리고 한 번도 애완동물을 키워보지 않아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나의 마음으로 인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같은 고양이와 3번이나 마주쳐 결국 굳은 마음을 먹고 냥줍을 시전하였다.


급박했던 냥줍의 현장


고양이(이름은 '치타'로 지었다)를 데리고 온 다음날 접종을 위해 보람이가 다음날 동물병원을 갔는데 너무 예민하게 구는 나머지 성별(암컷)과 나이(대략 6개월~1년 사이)만 겨우 알아낸 채 진료를 전혀 받지 못한 채 집으로 왔다고 해서 주말에 나와 같이 다시 병원에 갔다. 그런데 진료를 보던 의사 선생님이


"어? 치타 임신한 것 같기도 한데?"


라는 말과 함께 시니어 선생님을 데려왔다. 하지만 그날도 치타가 낯선 환경에서 굉장히 민감해해서 경험 많은 시니어 선생님도 촉진밖에 진행할 수 없었다. 진료가 끝난 후 선생님께서


"음.. 내 생각엔 임신은 아닌 거 같아. 뭐가 만져지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혹시 고양이가 갑자기 빠르게 커지는 것 같으면 꼭 다시 오고, 중성화 수술은 접종이 다 끝나고 한 달 후 즈음에 진행하도록 하자."


라고 말해서 우리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날일요일 저녁, 보람이가 심각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윤호, 아무래도 얘 임신한 것 같아


가만 보니 동물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무언가 이상했다. 젖꼭지는 부풀고, 주변 털들도 뭔가 푸석푸석한 느낌과 함께 빠지는 것을 보니 확실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랴부랴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니 치타의 모습이 고양이의 임신 징후와 일치하는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우리는 치타가 임신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때부터 우리는 고민과 함께 죄책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얘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은 임신을 해서 무언가(ex. 음식, 보금자리)가 필요해서 사람에게 다가온 건데 너무 덥석 데려왔나, 새끼를 낳으면 키울 수나 있으려나, 중절 수술을 하는 것은 너무 인간 관점의 이기적인 선택 아닐까 등, 보람이와 나는 매일같이 치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일단 치타의 상태를 빠르게 확인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서, 반차를 쓰고 다시 동물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니 역시나 치타는 임신 중이었다. 보람이와 나는 의사 선생님과 상의 끝에 결국 중성화 수술과 함께 중절 수술을 진행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아마 나와 보람이가 한국에서 살았으면 어떻게든 낳게 해서 키우려고 했을 텐데, 외국에서 새끼 고양이들까지 키우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내린 결정이었다. 치타가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은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 우리 마음대로 고양이를 데려와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키우기 위해 수술을 진행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와 보람이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이런 일까지 벌어질 수 있음을 생각하고 데려왔어야 하는데 그 부분까지 고려하지 못한 우리의 불찰이었다.


다행히 치타는 수술을 잘 마치고, 문자 그대로 짐승 같은 회복력을 보여주면서 빠르게 정상 상태로 돌아왔다. 수술을 마친 후에는 호기심 투성이의 말썽꾸러기 고양이가 되어 우리를 당황하게 했는데, 검진차 병원에 가서 이 이야기를 하니 의사 선생님이 웃으며


"원래 치타가 그런 고양이었는데 임신을 해서 성격이 방어적이었을 거야. 이제 원래 성격으로 돌아온 거야."


라고 해서 다시 한번 치타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또한 애완동물 키우는 것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점 또한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던 순간이었다. 나와 보람이가 못된 결정을 했지만, 최소한 치타가 우리와 함께 사는 동안만큼은 행복할 수 있도록 돌봐주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던 11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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