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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호 그리고 보람 Jun 17. 2024

[윤] 말레이시아의 직장 문화-ep4. 기타 등등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현재 내 커리어는 도합 7.5년 정도 되는데, 계산을 해보니 말레이시아에서 어느덧 4년 반을 일해서 말레이시아에서 일한 기간이 한국에서 일한 기간보다 길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고 자란 곳이 한국이고, 첫 커리어도 한국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외국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음에도 내 기준은 한국 문화에 훨씬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종종 '아니, 이렇게 다를 수가?', 또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종류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 직장생활을 하며 느꼈던, 한국인으로서 흥미로웠던 몇 가지 문화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다만 나는 이미 한국을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한국의 모든 회사와 말레이시아의 모든 회사를 경험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관적인 의견이 꽤나 많을 수 있음을 이해 부탁드린다.



1. Notice Period: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Not yet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퇴사를 하고 싶다면, 언제 퇴사 통보를 하는 것이 좋을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통상 한 달 전에 퇴사 의사를 밝히는 것이 '국룰'인 것 같다. 사실 이 한 달도 도의적인 기간일 뿐, 당장 퇴직했을 때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상황이 아니라면 당장 다음 날에도 그만둘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근로자는 원하는 시기에 회사를 떠날 수 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로 'Notice Period'가 계약서에 항상 명시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근로자가 퇴직하기 전 2개월~3개월 정도(최근에는 거의 3개월이 표준이 된 것 같다)의 Notice Period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퇴사 의사를 내비치더라도 3개월은 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대로 회사가 근로자를 해고할 때도 이 기간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제도 때문에, 내가 여태까지 경험한 바로는 말레이시아의 회사에서는 인수인계가 후임자에게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면 새로 고용할 사람도 보통 재직 중이고(그러고 보니 말레이시아에서는 '일을 쉰 다음 구직한다'는 경우가 잘 없는 것 같다), 그 또한 현 직장에서 똑같이 Notice Period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전임자가 그만둔 이후 곧바로 후임자를 찾는다고 해도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보통은 후임자에게 직접 인수인계를 하지 못하고 같은 팀에 인수인계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퇴사 후 다시 찾아와서 인수인계를 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새로운 직원을 구인하는 회사에서는 입사자와 기존 회사와의 남은 계약기간만큼의 급여를 지불하는 Buyout을 제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축구 이적시장의 Buyout과는 개념이 달라서, 계약은 상호 합의하에 해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현 회사에서 Release 해주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한 팀에서 두세 명이 비슷한 시기에 퇴직을 하게 되면 팀 전체가 흔들리고, 이를 바로잡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기도 한다.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도 약 1년 전에 이런 폭풍을 겪었는데, 사람을 새로 구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지라 재정비하기까지 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부디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 "Coffee is on me." "Why...?"

팀장이 된 이후, 팀원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종종 아침이나 점심 후에 카페를 따라가곤 했다. 말레이시아 문화에서는 한국보다는 더 더치페이가 보편화되어 있는데, 그래도 명색이 팀 리더니까 종종 커피를 사곤 했다. 그런데 늘 내가 결제를 할 때마다 팀원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언가 불편해 보이는 기색이랄까...?


어느 날, 그날도 내가 커피를 사기 위해 카드를 꺼내는데(그래봤자 3~4번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직원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윤호, 왜 자꾸 커피를 사? 네가 계산할 필요 없어."

"Why not? 내가 팀장인데. 너네가 열심히 일해줘서 나도 고마운 마음에 사는 거야."


그 직원은 알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약간 불편해 보였다. 그때 불현듯이 든 생각.


"G, 혹시 말레이시아에서는 팀 리더들이 커피나 점심 안 사?"

"응. 거의 안 사지. 이런 건 다 개인이 사는 거야. 네가 매번 낼 필요 없어."

"아ㅋㅋㅋ 그런데 한국에서는 팀 리더들이 커피 정도는 자주 사. 매일은 아닐지라도, 그리고 요즘은 한국 물가가 비싸져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건 자연스러운 거야. 혹시 나중에 커피 먹고 싶으면 말해. 언제든지 사줄게 :) "

"Oh no no no no. 난 괜찮아..."


내게는 꽤나 흥미로웠다. 밥도 아니고 커피(말레이시아에서는 아직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약 3,000원 정도다)인데, 많이 부담스러웠나? 하긴, 말레이시아에서는 동료와 함께 점심을 먹어도 부가세까지 꼼꼼하게 챙겨서 금액을 알려주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잠깐, 회사에서 주는 도시락이나 과일, 네스프레소 커피는 다들 좋아했던 것 같은데?


"그러면 회사가 내는 거는? 그건 괜찮지?"

"그건 얼마든지 오케이! 윤호 네가 내는 게 아니라면."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법인 카드(Corporate Card)를 발급받았다. 덕분에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편하게 커피도 사주고, 편한 분위기에서 미팅을 진행하고 싶을 때는 카페에 가기도 한다.



3. "What makes you angry?"

말레이시아에 와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내 불같던 성격이 많이 잠잠해진 것인데, 그렇다고 할지라도 한국인의 기본적인 본성은 어디 가는 것 같지는 않다. 맹세코, 우리 팀원들에게는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낸 적은 없지만 어쨌든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늘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약간씩 감정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특히,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것은 알지만 내 자리 근처에는 한국인이 없기 때문에 가끔 혼잣말로 한국어로 불평을 읊조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직원들은 나랑은 참으로 달라서, 가끔 짜증 나는 일이 있을 때도 신기할 정도로 표시를 내지 않는다. 하루는 점심을 먹다가 직원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뭐가 너네를 화나게 하니?


"음... 가끔 짜증 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화가 날 정도는 아닌 거 같아."

"하지만 회사 업무라는 게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닌데... 어떻게 한 번도 화를 안 낼 수가 있어?"

"한국은 직장에서 화 많이 내?"

"매일은 아니지만, 말레이시아보다는 훨씬. 나는 가끔 다투는 경우도 봤어. 나 사실 말레이시아 와서는 한국에 비해서 화 거의 안 내는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우리는 네가 한국인이라 화 많이 낸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적게 내는 거라고?"


오 마이 갓... 그렇다. 이들은 회사 업무로 화를 내는 상황 자체를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무언가가 잘못되어도, 주문이 잘못 들어가도, 일정이 늦어져도 (대놓고는) 화내지 않는다. 화낼 에너지와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어떻게 하면 빨리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더 집중을 하는 편이다. 옳은 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다 별 일 아니고, 지난 일은 지난 일일 뿐이다. 


대화 이후로, 회사에서 마음이 불편한 일이 있으면 생각한다. 회사 일로는 화를 낼 일이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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