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술사 Apr 07. 2024

MBC 드라마 호텔리어

(2001년  4월~6월  방영)

추억의  콘텐츠 리뷰 No 1.


봄이 되면 가끔 한 번씩 몇몇 장면이 생각나기는 하지만

내용이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는 드라마들이 있는데

이번 봄에는 다른 때보다 시간 여유가 좀 생기기도 했고 

마침 그중 한 드라마가 유튜브 클립 전편이

올라와 있기에 킬링타임용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바로 2001년 4월 봄부터 6월 초여름까지 

방영되었던  MBC 드라마 호텔리어.      

너무 오래된 드라마라 아마 지금은 공식 홈페이지도 없을 거고 

(귀찮아서 찾아보지 않으려다가 그래도 혹시 있나 찾아봤더니 있기는 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드라마 관련 이미지를 찾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글만 쓰겠다.  (스압주의)     


무려 23년전 드라마답게

Vhs비디오 (오형만이 빼돌린 보안 CCTV 저장 매체) 

플로피디스켓 (윤희가 태준에게 주겠다고 인터넷 자료 저장한 물건) ,

 애니콜(?)휴대폰, TTL Top 메일까지

추억의 물건들이나 브랜드 종종 나오는데

또 신기한 건 극중 삼각 관계에 놓인

김승우,송윤아,배용준, 이 세 배우들의 대사나 연기톤은 

지금 방영되는 드라마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큰 차이가  없다.      

물론 화장이나 패션 등은 조금 차이가 있고

개인정보 유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극중 전개 

내용에서 20년 전과는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연출이나 화면 편집, 때깔 (?) 등은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큰 이질감이 없이 세련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리뷰는 내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잊혔다가 새삼 꺼내게 된

추억의 유물 콘텐츠를 발굴하는 마음으로 쓴 리포트이다.      


드라마 방영 당시 미처 깨닫지 못했던 포인트 위주로 써보려고 한다.      

먼저 이번에 보면서 느낀 건 진영의 동혁에 대한 마음은

사랑보다는 연민이 더 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준에 대한 마음은 애써 우정이라고, 누르고 있지만, 

태준이 동혁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적극적이었다면

진영은 아마 태준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회 후반부쯤인가, 진영이 내가 사랑과 우정을 구분 못하고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 이런 대사를 하기는 하지만

공항에서 동혁과 안타깝게 헤어진 이후 

시간을 내어 휴가 때 잠깐이라도 미국을 가지 않은 것을 보면


(제니가 진영에게 왜 미국행 비행기표도 있는데

한번도 가보지 않냐고 묻자,

동혁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지 않냐고 답한다) 


만약 동혁이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았거나, 

혹은 미국 가 있는 그 사이에라도

태준이 진영에게 진심으로 단 한 번이라도 고백했다면,

 러브라인의 결말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엔 이미 시청자 반응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드라마가 후반부에 접어들었음에도

한 사람은 편해서 기대고 싶고

한 사람은 외로워서 안아주고 싶다고

하고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냐고

진영이 계속 고민하거나      


동혁의 포로포즈까지 받아들인 이후에도

동혁이 미국 가 있는 동안 호텔 동료들이

한태준과 다시 잘 될 가능성에 대해

묻는 걸 보면  진영의 태준에 대한 마음이

정말 컸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진영이 결혼하자고 먼저

프로포즈까지 한 남자니까.     


동혁이 진영이 생일날 고백했을 때도, 

진영은 태준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다고 말했고, 

동혁은 기다리겠다고 했다.      


태준의 마음 속에도 분명히 진영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

진영이 그런 태준의 마음을 떠볼 때마다 


드라마 내내 단 한 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이 둘은 이어지지 못할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다음에는 방영 당시 이해가 가지 않았던 동혁의 막무가내 플러팅.

처음 본 여자가 아무리 예뻐도 그렇지 미국에서 한달음에 한국까지 쫓아와서

각종 난리를 피우며 온갖 사랑 고백을 하는 남자가 솔직히 이해가지 않았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까, 왜 동혁이 진영에게 빠졌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동혁의 나이가 극 중에서 정확히 나오지 않는데, 

그의 비서인 레오가 22살에 그를 처음 만났고, 

10년 동안 같이 일했다고 하는 걸 봐서 대략 31~32살쯤인 것 같다.     

그리고 한국에는 진영을 쫓아 21년만에 왔다고 하니까

열 살쯤 미국으로 입양 된 것 같고.      


22살 애송이가 잘 나가는 미국의 로펌 변호사를 단, 50달러를 주고 고용하면서 

그 뒤로 10년간 주식 거래로 승승 장구하면서 M&A 전문가로 크게 성공했다는 설정인데

그동안 자신에게 사랑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여자한테 관심을 전혀 두지 않고 살았던 그가,      

미국의 300송이 장미라는 이름을 지닌 레스토랑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왜 극중에서 진영에게 장미 300송이를 보냈는지 이제야 알았다.

이로 인해 동혁은 서울 호텔 직원들에게 극중 내내 장미300송이로 불리게 된다.)     


그 여자는 동혁의 비서인 레오 말에 의하면 성깔이 장난 아닌 한국 여자인데, 

영어로 속사포를 쏘아대며 클레임을 거는 진영의 모습에 동혁은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아마, 이 포인트였던 것 같다.


10년 동안 성공 가도를 달리며 살아와도, 그에게 삶은 그다지 재밌는 구석이 없었던 모양.

그런데 낯선 땅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제 할 말을 쏘아대는 여자를 보고, 

요즘 말로 뭔가 도파민이 폭발했던 모양인지

그다음부터는 아주 골 때리는 플러팅을 하기 시작한다.     


(동혁에게 서울호텔 인수합병을 제안한 

클라이언트 김복만 회장은 그에게 자신의 딸을 소개시켜주려고 하는데,

그전에 동혁은 서울호텔에서 수면제를 떨어뜨린 윤희와 마주친 적이 있다.

동혁은 아버지에게 아무 말 하지 말아달라는 윤희에게

세상 걱정 없이 자란 여자들이 죽음에 대한 이상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며

자신은 그런 여자들한테 관심 쏟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윤희의 표정이 압권이다. 

동혁이 진영에게 반한 포인트는 역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당당한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기도 한데, 

윤희 또한 극중에서 당당하게 자기 일 멋지게 해내는 여자다. 

굳이 이 장면이 왜 필요했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기획 단계에서는 동혁과 윤희가 맺어지는 설정이었다면

나중에 동혁과 윤희의 관계 변화를 위한 빌드업이었을 것 같다.

한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저딴 말을 초면인 사람한테 내뱉던

동혁의 흑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지 않았을까?)


사랑보다 일이 좋아지면 그때 결혼을 생각해보겠다고 말하던 동혁에게

갑자기 나타난 그 여자, 서진영. 


미국 라스베가스의 한 호텔에서 그녀와 우연히 다시 마주치게 된 동혁은

그녀가 어디서 묵고 있는지를 알아내서 룸 서비스로 스카프를 보내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미국도 개인 정보 보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나보다. 

다른 손님이 몇호실에 묵고 있는지를 그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냐고.      


그리고 또 우연히 사막에서 태준과 싸우고 버려진 진영을 만나

(다시 태준이 그녀를 데리러 돌아가긴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가 서울호텔에서 일하게 되는 걸 알게 되고, 

미국에서 한국의 서울 호텔까지 쫓아간다. 뭐 명목상으로는 M&A 하러 간 것이기는 하지만.


서울호텔에서는 그녀한테 근무 외 시간인데 서울 가이드 해달라고 하질 않나, 

통제 구역이라 규칙 위반이라고 말하는데도 다이아몬드 빌라 구경을 시켜달라면서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단둘이 5분만 있고 싶다며 춤을 추자고 하질 않나, 

당구를 가르쳐주겠다, 수영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며, 계속 진영에게 플러팅을 해댄다.     

방영 당시에도 쟤는 대체 왜 저럴까, 라고 생각했던 포인트들은 다시 보니까 

‘진상’. 한 마디로 진상이지만, 진영은 손님이 자신에게 보이는 호감 정도로 여기고 

이렇게 저렇게 대처하면서 넘어간다.


(사실, 요즘 같으면 진영의 몇몇 행동에 대해 규칙 위반으로 징계를 때려도 할 말 없을 텐데. 

일일이 태클을 걸면 드라마가 진행이 안 되니까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하지만 한국도 20년 전에는 개인 정보 보호 따위는 크게 상관없었던 모양인지

동혁은 호텔 직원인 진영의 집 전화를 알아내서 전화 걸고, 

집 주소를 알아내서 생일 선물을 보낸다.

그러면서 카드에는 몇 번째 생일인지는 모른다고 적었다.

나도 궁금했는데. 진영의 나이. 극중에서는 내가 놓친 건지 정확히 나오진 않은 것 같다.

그 정도 집요함과 정보력이면 몇 번째 생일인지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자기 딴에는 나름 선을 지키느라 그랬나보다.


동혁의 비서인 레오도 급하다고 진영에게 집 전화를 거는 장면이 있다.

그렇구나. 호텔 직원의 집 전화. 집 전화 알아내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요?

라는 말이 대사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20년 전에는 호텔에 진상부리면 알아낼 수 있었나보다.     

그리고 틈만 나면 진영에게 애니콜 (?) 휴대폰으로 (기종은 정확히 모르겠다)

TTL 서비스를 이용해 메일을 보낸다.      


(대체 진영의 메일 계정까지 어떻게 알아냈을까 싶지만, 

뭐 진영이 극중 꼬마 손님에게도 명함을 주는 걸로 보아 

거기에 진영의 휴대폰이나 이메일 주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TTL. 당시 무제한 요금 서비스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TTL로 이메일 보내고, 인터넷 검색하고, 게임하고

그래서 한 달에 40만원 요금이 나온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등짝 스매싱을 할까봐 매우 떨었는데

(그나마 등짝 스매싱으로 끝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엄마는 쿨 하게, 다음부터는 적당히 해라, 라는 말로 끝내고 요금을 내주셨다. 


그 뒤로는 나는 요금이 겁나서 TTL로는 인터넷 접속은 하지도 않고 문자만 썼는데      

신동혁은 돈이 많으니까 TTL 접속료 따윈 걱정하지 않고 

진영이 생각날 때마다 아주 애절한 메일을 보낸다.

그렇게 보낸 메일이 23개 정도 되는 것 같다.


20회에 동혁이 그동안 보낸 메일이 스르륵 지나가는데, 

하버드 나온 남자답게 맞춤법은 잘 지킨 것 같다.

맞춤법이랑 띄어쓰기, 틀렸으면 정말 깼을 텐데, 

역시 하버드 나온 남자답다.     


이렇게 진영과 동혁은 썸을 타는 와중에, 결국 동혁의 정체가 들통나고 만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진영은 동혁을 찾아와 사기꾼이라며 일갈하고, 

그 뒤로 진영이 자신을 계속 만나주지 않자 동료들 다 보는 앞에서 

환장의 사랑 고백을 하고야 만다.      


나는 그때 드라마를 보다가, 

그 장면을 보고, “드디어 미친 건가?”

라는 생각을 했지만,

 다음 날 학교에 가니까 반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그 키스씬 이야기를 하며

너무 멋있었다고 하는 바람에 차마 내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만약 그 장면을 외모가 뒷받침되지 않는 다른 배우, 

그러니까 인상이 좀 험한 배우가 연기했다면

전혀 다른 반응이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하긴 애초에, 그런 장면을 작가가 아무에게나 주진 않겠지.


어쨌든 나는 현실에서 드라마 이야기를 하며

소위 갑분싸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유튜브의 그 장면  댓글을 보니까 그때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서 시대가 변하긴 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음, 동혁의 고백에 결국 설득당하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강압적인 그 고백 방식에 설득당했다는 것이 아니라, 

진영에 대한 마음만은 진심이라는 점. 


일단 드라마와 현실을 분리하고 나니까, 

동혁의 감정이 보였다.      


그녀에게 서울 호텔 정보를 빼내려고 접근한 게 아닌데, 

사기꾼 취급을 받고 있으니 오해를 풀고 싶은데 

도통 틈을 내주지 않는 그녀에게 

그렇게 무모한 방법으로라도 자신의 진심 한 자락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동혁은 감정이 격앙된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진영에게 극중 내내 계속 존댓말을 쓴다.      


극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여주인공에게 반말하는 

다른 드라마의 일부 남자 캐릭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이 드라마에서 좋았던 점은 동혁이 진영과 

손님과 직원이 아닌, 남자 대 여자의 관계로 진전되고 나서도 

계속 존댓말을 쓴다는 것이다.      

그 점만큼은 그때도 좋았는데, 

다시 보게 된 지금도 좋았다.     


어쨌든 그 장면 덕분인지 뭔지 점점 동혁의 인기는 태준의 인기를 앞서게 되어 

결국 러브라인이 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배우들의 호연으로 인해 

그 씬에서 감정적 긴장감은 물론 성적 텐션이 고조된다는 점,  

그 점이 바로 시청자들에게 어필한 것이 아닐까.)     


원래 동혁과 진영이 이어지는 결말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나? 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까 6회쯤 꼬마 손님이, 

나중에 태준과 진영이 결혼할 것이라는 떡밥을 흘린다. 

이런 걸로 보아 확실히 기획 단계에서는 진영과 태준이 이어지는 결말이었던 것 같다.     


요즘은 사전제작이 자리 잡아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드라마의 러브라인이 바뀌거나 

결말이 바뀌는 경우가 없다고 하던데, 이런 점에서도 시대가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동혁은 서울 호텔 인수건을 포기하고 

출자전환을 해서 서울 호텔의 대주주가 된다.     


그때는 동혁을 비난하던 레오의 말처럼, 단지 사랑하는 여자 하나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역시 동혁처럼 미국으로 입양되어 헤어졌다가

한국에서 다시 만난 친 여동생인 제니의 역할도 

동혁의 마음을 돌리는 데 꽤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레오는 처음에는 동혁의 선택에 대해 매우 화를 내기는 했지만

((그때 레오가 10년간 파트너였던 나에게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이렇게 행동할 수 있냐고. 

나한테 고작 너는 그런 사람이었냐고. 먼저 자신에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 않았느냐고. 

동혁한테 퍼붓는데 좀 시원하긴 했다. 

나도 가끔 동혁의 행동을 보면 한 대 때려주고 싶었던 적이 많아서. 

그 뒤 동혁이 레오에게 그동안 형 같고, 아버지 같아서 함부로 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이걸 보면서 진영이 한 사람을 갱생시키긴 했네. 라는 생각을 했다.      


초반에는 레오가 어떤 말을 하려고 하면 “충고가 필요하면 그때 말하도록 하지” 라는 말로 싸늘하게 대하고 무안 주고 그랬는데 그때 아우, 저 싸가지. 자기 비서한테도 저러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레오가 진영에 대해 무슨 말을 해서 욱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게 서진영 빼고는 모든 사람한테 차갑게 대하고 그랬던 사람이, 

사랑의 힘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갖게 되고, 

점점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는데, 

이때 다시 한번 배우가 연기로 캐릭터를 조형해나가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10년 동안 파트너였던 동혁의 마음을 이해하고, 고문 변호사로서 

진심으로 그를 도와준다.     


음, 방영 당시에는 당연히 출자전환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솔직히 지금도 관련 용어에 대해 자세히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동혁이 출자전환 방식으로 (김 회장의) 채권으로 주식을 사서 

서울 호텔 대주주가 되는 방식으로 호텔을 지켜냈다, 라는 전개 내용을 

대충 이해할 정도는 되었다.      


동혁은 김복만 회장을 검찰에 찌르고

검찰과 일주일 내에 한국을 뜨기로 딜을 하고, 

진영에게 청혼을 한다.      


진영은 청혼을 받아들이지만, 동혁에게 미국을 같이 갈 수는 없다고 말한다.     

동혁은 진영을 계속 기다리다

당신이 미국에 오든지

내가 다시 돌아오든지

우리의 사랑을 시험해볼 시간이 왔다는 스물 세번째 메일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난다.     


나는 방영 당시에는 진영의 선택이 잘 이해가지 않았다. 

물론, 여자가 결혼하면 당연히 남자를 따라가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진영은 왜 여자들끼리 술마시면 이상하게 보고,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담배 피면

흉보냐고 말하는 사람이다. 


남자들이 먼저 고백하면 멋있다고 하면서

왜 여자들이 먼저 고백하면 주책이냐고 말하기도 한다. 

과거에 태준에게도 먼저 청혼할 만큼

진영은 적극적인 여자다. 


동혁이 서울호텔을 인수하면서 가진 것을 전부 잃었다고 고백하자 

걱정말라고, 앞으로 돈은 자신이 벌면 된다고 말한다.      

또한 서울 호텔에서 일하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여자이기에 결혼을 해서도 당연히 자기의 일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동혁이 미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는

다시는 한국에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전제로 한 말이었을 것 같다.     


동혁이 미국에 간다는 말을 정확히 어느 시점에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동혁을 따라 미국을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면

청혼을 거절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니까,  

동혁이 떠나기 직전 공항으로 달려온 것은

자기 때문에 모든 커리어를 포기하고, 서울호텔을 인수하는 데 전부를 걸었던

남자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남자한테 고맙고, 미안하고, 함께 있으면 설레기 때문에

청혼까지는 받아들였지만, 

막상 그가 미국으로 가자고 했을 때는, 

어쩌면 자기가 사랑하던 호텔 일, 그리고 태준을 포함한 호텔 동료들을 

결국 모두 두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제안을 거절한 것 같다. 


그러니까 동혁은 진영에게 있어 최우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가 자신의 삶에서 최우선이겠는가?)

 

하지만 동혁은 진영이 삶의 최우선이었으므로, 

다시 미국에서 그녀에게 돌아온다.      

사랑의 역학 관계에 있어서,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에 다시 볼 때는 진영의 동혁에 대한 마음보다

동혁의 진영에 대한 마음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사랑 하나 때문에, 가족 또는 나라를 버리는 캐릭터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랑이 좋다고는 하나, 단지 사랑 하나만으로 자기의 근본까지 

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랑으로 인해, 자신이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삶의 무언가를 발견하고, 깨닫고, 

그로 인해 변화하는 캐릭터들은 매력적으로 생각한다. 


처음에는 어우, 저 진상. 호텔 바 문닫을 때까지 서진영 기다린다고 

직원들 퇴근도 못하게 저러고 있네, 라고 생각했던 자기밖에 모르던 신동혁이란 캐릭터가 

(뭐, 말로는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극 후반부에 이르자, 호텔의 내부 곳곳을 산책하며, 하우스 키핑, 주방 직원들과 

공손하게 인사하며 

(극 초반에도 직원들이 자기한테 먼저 인사를 하면 

인사를 하긴 하는데 그저 고개를 살짝 까닥거리는 정도다)

 

여유를 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한 사람과의 깊은 관계가, 

다른 사람들하고도 유대 관계를 맺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무조건 당신이 좋다, 라는 막무가내 사랑 타령은 싫지만,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런 사랑은 멋지다고 생각한다.      


진영을 끝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던 한태준은 속도 깊고 멋진 인물인데, 

단 한가지 걸렸던 부분이 있다. 극 중반에 동혁의 정체가 들통나서 부총지배인 오형만이 

장기투숙객인 신동혁의 짐을 허락도 없이 빼고, 쫓아버리려고 한다. 


이에 신동혁은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총지배인인 한태준이 샴페인을 들고 사과를 하러 찾아오지만 

벽에 그 샴페인을 던져서 깨버린다. (하여간 성질머리하고는)


그리고 용서받고 싶다면 서진영을 혼자 올라오게 하라면서 갑질을 시전한다. 

이 부분도 이해안 가기는 마찬가지였지만, 

VIP 손님 방을 허락도 없이 뺀 호텔 측도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 만큼은 신동혁이 화를 내는 것에 공감했다.

동혁의 말대로 고소를 당해도 할 말 없지.)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진영이 한태준 몰래 

동혁을 만나러 가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여기서도 진영은 동혁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동혁은 진영에게 말한대로 더이상 호텔에 분풀이를 하지는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태준은 오형만에게 굉장히 화를 냈는데, 

나중에는 자기가 직접 손님 (신동혁)의 방 에 몰래 들어가 자료를 빼내는 짓을 한다. 

그러면서 상대가 먼저 도발하는데 순순히 당할 수 없다는 자기 합리화를 한다. 


신동혁은 그 사실을 알고도 한태준의 행동을 그냥 넘어가 준다. 

(그때 샴페인 던진 게 미안해서? 라기보다는 이미 이 시점부터 동혁은 진영으로 인해 

서울호텔 편에 심정적으로 서서히 동화 된 것 같다. 여기서 다시 한번 느끼는 사랑의 힘)     


나중에 또 이 드라마를 볼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시 봄이 오면 벚꽃이 핀 워커힐 호텔 산책로를 걷던 

주인공들의 모습이 생각나서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이런 감정이 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 새롭게 느끼게 된 감정 위주로 적어보았다.      


어릴 때부터 드라마는 일 년에 한, 두 편 정도만 보는 편인데 

2001년에는 이 드라마와 손예진이 나왔던 <맛있는 청혼>만 보았다.      


<맛있는 청혼>은 손예진, 이라는 당시 신인 배우 얼굴에 반해서 

그냥 그 배우 하나 보겠다고 전편을 끝까지 보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주방 모자 쓴 손예진의 얼굴. 

그런데 <맛있는 청혼>이 더 나중에 방영된 줄 알았는데, 

<호텔리어>보다 먼저 방영했던 드라마였다. 

이렇게 기억의 오류가 심하다. 


아무튼 오늘의 추억 발굴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