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장편소설/ 창비/ 2021년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 이야기 No2.
아주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으로 옮긴 지 채 한 달이 안 되었다.
그동안 해왔던 업무하고는 또 다른 성격의 업무라 집과 현재의 회사가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기만 파김치가 되었다.
매일 법률 용어가 난무하는 산더미 같은 서류들에 파묻혀 있다 보면
집에 돌아올 때는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직장 동료들은 이 회사에 입사한 후 한 3개월까지는
집에 돌아오면 그대로 쓰러져 잤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책을 읽는다거나 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
그렇지만 책 뒷면에 실린 이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다.
‘출근길을 응원해주는 장류진의 경쾌한 목소리.’
회사가 월급을 포인트로 주는 바람에 포인트로 물건을 사고,
그것을 인터넷에 내다파는 이야기가 담긴 장류진의 단편 소설을
한 친구에게 추천받아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정말 하이퍼 리얼리즘 소설이었다.
장류진의 단편 소설은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군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소설이었고,
첫 장편이라는 이번 소설 역시 직장인의 애환과 환희를 다루고 있다.
<달까지 가자>의 주인공 세 명은 인사평가에서 비공채,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인지
늘 무난이라는 등급을 받는다. 그들이 인생역전을 꿈꾸기 위해서는 포털이 필요하다.
시간 여행 포털을 뚫어주는 까만색 선글라스를 낀 주전자 돈데크만이 열어주는 그런 포털.
이 소설에서는 그 포털이 바로 이더리움이다.
은상, 다해, 지송, 이 무난이 세명은 이더리움으로
각각 33억, 3억 2천, 2억 4천을 벌었다.
이 소설을 보면서 내심 불안했다. 소위 이더리움이 ‘떡상’한다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이건 아주 잠깐이고, 주인공 세명이 결국에는 쪽박차는 그런 엔딩은 아닐까.
이 소설에도 그런 표현이 나온다. 보통 이런 식의 이야기들은
욕심부리다 쫄딱 망하는 식의 결말이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결국 적당한 때에 ‘엑싯’에 성공했고,
그렇게 평생 월급을 저축해도 모을 수 없는 큰 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인생 역전했다고 말할 수 있나.
물론 회사를 그만두고, 성수동에 5층 꼬마 빌딩을 산 사람도 있고
대만에서 흑당을 수입해 할 사업 구상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소설 속 화자인 ‘정다해’는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있다.
3억 2천이 밑빠진 독을 막아줬다는 생각을 하며.
예전보다는 회사 다니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정다해는 일단은 계속 회사를 다닐 생각이라고 말한다.
나는 투자의 ‘투’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주식도 해본 적 없고,
비트코인 역시 마찬가지다.
이더리움 역시 들어보기만 했지, 그게 뭐하는 것인지도 몰랐다가
이 소설을 보고 대충 알게 됐다.
나름대로 직장생활을 오래하긴 했지만, 모아놓은 돈이 많지도 않다.
남들이 다 한다는 부동산 재테크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나도 소위 ‘대박’을 꿈꾼 적도 있었다.
살다보면 로또 당첨 같은 일이 내게도 한번은 있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당장 직장을 그만두어야지, 라는 일념으로
하루 하루 버티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만약 내게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정다해처럼, 일단은 계속 회사를 다닐 것이다.
언젠가 타의적으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날이 올 지도 모르지.
그런 때가 아니라면, 자발적으로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다면,
비록 업무는 산더미같이 쏟아지는데
전국 지사가 한 자리에 모여서 한다는 연말 송년회 이벤트 때문에
시시각각 업무 메신저 알람이 울려대도,
그런 이유가 잠깐 짜증은 낼 이유가 될 지언정 퇴사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물론 누군가한테는 그런 이유가 퇴사할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나 역시 이런 비슷한 이유로 어느 직장에서는 퇴사한 적도 있었다.
업무도 힘든데 그 외 다른 이벤트들로 사람을 볶아대는 게 너무 짜증나서
도저히 못 해먹겠다, 라는 생각을 지닌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출근할 수 있는 게 좋다. 물론 사람 생각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이 생각이 언제까지 계속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
게다가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인생 아닌가.
그래도, 나 역시 지금은, 적어도 올해는 일단 계속 회사를 다닐 것이다.
비록 오늘은 일요일이고, 내일은 출근을 해야하기에
시시각각 흘러가는 일분일초가 아깝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