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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훈 NOWer Nov 04. 2024

소설가와 래퍼에게 배운 독서 태도

소설가 박상우의 『검색어: 삶의 의미』와 래퍼 빈지노의 ‘안티 레고’


소설가와 래퍼에게 배운 독서 태도

— 소설가 박상우의 『검색어: 삶의 의미』와 래퍼 빈지노의 ‘안티 레고’


“강의나 강연을 하다 보면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구에 직면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세상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책, 자신과 인연이 있는 책, 자신에게 좋은 책이 따로 있으니 스스로 그것을 찾는 탐사의 길을 떠나라는 조언을 한다. (⋯) 그 과정을 지속하면 자신만의 관심 분야에 따른 지도가 만들어지고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던 의외의 적성이 발견되기도 한다.”

 (박상우 지음, 「이것도 명작, 저것도 명작, 누구 마음대로 명작인가」, 『검색어: 삶의 의미』, 스토리코스모스, 2022, 129쪽)


책은 상품성을 지닌 것이어서 내 손에 쥐어지기까지 일반적으로 구입과 대여, 또는 선물 받기의 과정을 거친다. 이렇다 보니 상품성에 대한 외부 평가가 내 손에 쥐어질 책의 종류를 권장해 주기도 한다. 베스트셀러 및 스테디셀러 순위, 명사의 추천사, 독자들의 입소문, 출판사 인스타그램의 홍보 게시물 등등이 알게 모르게 도서 구입·대여·선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 덕에 실제로 양서들을 적잖이 소장할 수 있었다. 왠지 그 모든 ‘영향력’에 빚을 진 기분이다.


“자신과 인연이 있는 책”을 찾아 “탐사의 길을 떠나라”는 소설가 박상우의 제언에 밑줄을 긋는다. 물론 출판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책이란 ‘독자와 만나지는 것’임을 짚은 말이다. 글제의 ‘누구 마음대로 명작인가’라는 표현은 “어떤 게 명작이고 왜 명작인지, 그것은 어떤 기준에 의해 언제부터 목록이 만들어지고 또한 전수되었는지 한 번쯤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128쪽)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저자는 이 되짚기를 ‘기준이 모호한 명작 선정’ 실정의 비판 수단으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독서 환경에서 어떻게 ‘좋은 책’을 찾아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자는 공동의 노력으로 전개한다. 그냥 좋은 책이 아니라 “자신에게 좋은 책”이라는 명확한 규정은 본문에 등장하는 “인연”, “인간과 인생”, “음미하는 시간”(132쪽), “나를 비추어 보게 하는”(133쪽) 같은 구절들과 조응한다. 내가 아닌 외부에 의해 읽도록 권해지고 목록화된 책들의 세상을 가로질러, “자신만의 관심 분야에 따른 지도”를 그려 나가 보라는 조언. 이것은 비단 독서뿐 아니라 나날의 일상을 살아가는 데도 충분히 적용될 만한 격언이다.


소설가의 글을 읽으며 래퍼 빈지노를 떠올린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그는 ‘블록 완구 레고를 싫어하는 이유’를 털어놓았는데, 그 맥락이 소설가가 강조한 ‘나만의 좋은 책 탐사하기’ 지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는 답이 정해져 있는 게 너무 싫거든요. 그래서 레고도 싫어해요. 내가 지어야 할 거를 알려주고, 순서까지 정해서 일일이 하나하나 체크하는 게 제 성격에는 너무 안 맞아요.”(음악 전문 커뮤니티 『힙합엘이』, 2019. 8. 9.) 누군가가 정해 놓은 ‘명작’들을 한 권 한 권 따라 읽을 게 아니라 자신만의 관점으로 독서 지도를 만들라는 소설가의 도움말과 일맥상통한다. 꽉 채워진 조립 설명서 대신 ‘빈 지도’(빈지노와 어쭙잖게 라임을 맞춰 봤다.)를 손에 쥐어 보는 것. 삶도 책 읽기도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우선은 나만의 독서 지도 그리기부터 연습해 본다. 삶의 지도는 그다음에, 차근차근. 어디서부터 무얼 어떻게 채워 넣어야 할지 막막하다. 불현듯 엉뚱하게도 출판 관계자들에게 새삼 감사를 하게 된다. 신간 공개 일정을 고려하여 북트레일러와 카드뉴스를 제작하는 에디터와 디자이너, 저자 사인회나 북토크 행사를 주최하는 작업자들 말이다. 독자로서 나는 그들의 노고를 낼름 취하여 눈품·발품·손품 없이 너무 간단히 책을 접하는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을 문득 해 본다.


이제 그들에게서 어느 정도 독립하여 혼자만의 ‘탐사’를 어설프게 진행 중이다. 직접 대형 서점과 동네 책방을 둘러보면서 책의 면면을 깜냥껏 살피고, 인터넷 서점 사이트의 서지 정보를 충실히 읽어 보는 버릇을 들이고 있다. 말하자면 책을 쉽게 사고 빌리지 않는 쪽으로 바뀐 셈. 이게 또 가만 생각해 보면 책의 홍보를 위해 애쓴 분들을 외면하는 꼴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과장을 좀 섞자면, 오랜 시간 나를 길러 준 부모님 품을 떠나는 느낌. 아무튼 이래저래,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보내고 단장하고 돌보는 저자와 출판사 편집·디자인·마케팅 팀 임직원 분들께 부채감을 갖게 된다. 내 지도에 그들의 존재 정보를 일일이 다 기록하고 싶으나 과연 살아 있는 동안에라도 가능한 일이려나.


박상우 저 『검색어: 삶의 의미』 읽기

교보문고 | 알라딘 | 예스24


빈지노 인터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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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재훈(작가, 디자인 기고가)

portfolio | @nowing_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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