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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Nov 04. 2023

드라마

편지 1

“나 때문에 더 아프지 마. 아프지 마.”


벌게진 눈으로, 울음이 가득 찬 음성으로 말하는 남자 주인공.


“나 갈게.”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은 비가 내리는 날. 그칠 듯 그치지 않고 흐르던, 빗물이 만들어낸 도랑. 꼭 그 양만큼의 눈물은 이미 흘렸으리라. 수분이 말라붙은 눈, 핏기가 가신 얼굴을 하고 간신한 걸음을 떼는 여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이 집 밖으로 나서고, 문이 닫힌다.


주저앉는 남자 주인공.


한참을 운다. 이번에는 얼굴이 온통 벌게질 때까지.


_ 드라마 <사랑의 이해> 가운데



‘그래. 헤어지면 힘든 거지. 기억이 잘 안 나. 마지막으로 헤어진 게 언제더라.. (웃음) 있잖아, 이제 정말 연애세포가 다 죽은 것 같아. 헤어져라도 보고 싶다. (다시 웃음)’


3년, 아니 4년쯤. ‘못’이든 ‘안’이든 연애 휴지기로, 어느새 혼자가 편했어.


정을 준 이에게 혹여나 얼굴 붉히지 않아도 되고, 그 일로 며칠 밤낮을, 어쩌면 더 오래 두고두고 마음 한 구석 어두울 일 없는 그런 생활.


어쩌면 계속 이 상태로도 좋겠다고.

더러 서운하기보다 자주 외로운 게 낫다고.

‘연애 좀 하라’고 주변에서 잔소리를 하면, ‘그러게, 소개팅이나 해주든지요’라는 마음에도 없는, 그러나 상대의 입을 다물게 하기에는 충분한 말로 눙치고 넘어가면 될 일이라고.


(한숨) 그 모든 생각은 거짓이었을까, 허세였을까.


아니면. 누군가를 다시 좋아하게 되기는 아주 힘들 것이라고,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런 설은 짐작이었을까.


SNS에 제멋대로 뜬, 한 번 본 적도 없는, 서사도 모르는 드라마의 한 장면.


내용도 모르면서, 오늘 낮, 사람이 북적이는 지하철 환승 통로를 걷다 난‥ 왈칵 무너졌어.


갑자기 발이 땅에 붙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우뚝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있었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지나오는 동안.


'여러 번 보면 좀 무뎌지겠지. 무엇이든 그렇잖아.'


고집스러운 자존심 탓에, 적어도 서른 번? 보고, 또 봤어.


그렇지가 않더라. 무뎌지지 않더라.


내내 눈시울은 뜨거워졌고, 목울대는 갑갑해졌어.


쇄골 아래는 자꾸, 자꾸만 저릿했어.


있잖아.


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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