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보다 환자라는 표현을 쓰면 좋겠다
코로나 접촉자가 됐다는 문자를 받고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고지혈증이라는 지병이 있는 엄마와 저녁밥을 먹은 일이 생각났다. 다음으로 내가 어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 때문에 다들 코로나에 걸렸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끊임없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보건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자차로 이동할 수 있는지 묻더니 최대한 사람들을 피해자차로 보건소로 검사받으러 오라고 했다. 신속하고 정확한 검사 시스템을 거친 후, 결과 나올 때까지 격리를 해야한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생전 처음 '격리통지서'도 받아보고 '자가격리 대상자를 위한 생활수칙 안내문'도 받았다.
집에 가서 가족들과 공간을 격리한 후, 조용히 격리를 시작했다. 혼자 방에 있게 되면서 가장 먼저 뉴스를 켰다. 오늘 확진자 수가 몇 명인지 확인하고, 코로나 관련 뉴스를 멍하니 봤다. 내일 나오는 검사 결과에 따라 내가 뉴스에 #1131번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졌다.
평소 집순이라서 격리 생활이 즐거울 줄 알았는데...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봐도 검사 결과에 대한 걱정이 커서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수많은 걱정과 불안 속에 24시간이 지나갔다.
오전에 음성 문자가 왔다. 음성 문자와 함께 격리 해제가 됐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하지만, 출근은 낙인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어제 했던 결근이 코로나 검사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져 동료들은 나와 함께 일하는 걸 불안해했다. "검사 결과가 벌써 나왔어?" "바로 일해도 되는거야?"와 같은 공포 섞인 염려의 말들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왔다.
불안한 마음에 보건소에 전화해서 출근해도 되는 게 맞는건지 물어봤지만, 검사 결과도 정상이고 확진자와 밀접 접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해도 된다는 얘기만 할 뿐이었다. 동료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지만 "보건소 역학조사 철저하게 하는 거 맞아? 뉴스보니까 무증상 확진자도 많더라"라는 말이 돌아왔다. 결국 반차를 쓰고 집에 왔다.
낙인은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검사를 받은 사람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오늘 만나면 안 되겠다라는 급한 전화들이 여러 곳에서 걸려왔다. 잠깐 검사받은 일에 대한 낙인도 엄청난데, 뉴스에서 말하는 슈퍼전파자에 대한 낙인은 얼마나 더 거셌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청에서 확진자 동선을 숨기거나, 상호명을 알려주지 않을 때마다 방역에 대해 불평하면서 확진자 동선을 조금이라도 알아내려고 애썼는데, 이런 일들이 확진자에게 얼마나 공포스러울지 생각해보게 됐다.
평소 우리는 지역 커뮤니티에서 눈으로 본 확진자 정보를 공유한다. 예를 들면, 아파트 앞에 방호복을 입은 구급대원이 있다던지 방역 중인 마트를 봤다던지에 대한 아무렇지 않은 수다들.
그러다보면 어느새 확진자의 윤곽이 드러난다. 어디에 사는 어떤 사람이라는 것까지 나오면, 좁은 동네 생활상 조금만 수소문해보면 확진자가 누구인지 알게되는 것이다. #1131번 뒤에는 평범한 사람이 있는데, 숫자에 가려지면 범죄자처럼 취급하게 되면서 동선에 대해 쉽게 이러쿵 저러쿵 말하게 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는 우리가 확진자라는 용어를 코로나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독감도 에이즈도 메르스도 환자라고 지칭했었는데, 코로나 때부터 확진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너 왜 감염됐어?'라는 책임의 무게가 더 크다. 환자보다는 추적을 해야하는 대상인 것이다. 이러한 표현과 인식들이 쌓여 낙인이 공고해진다. 숫자 뒤에 평범한 우리 이웃이 있다고 생각하고 낙인찍는 걸 멈췄으면 한다. 확진자가 아닌 아픈 병을 치료해야 할 환자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