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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Feb 07. 2024

어른의 삶, 이유를 묻지 않는 것.

무너지는 것은 무엇이든 쌓인 것이다. 쌓여있지 않았다면 무너질 일이 없었고, 왜 무너졌는가를 따져보아도 그렇다. 일격에 무너지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 미세한 균열이 쌓이고 쌓여 손 쓸 수 없게 되면, 바로 그때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무너진 그 순간에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잘한 균열들은 매 순간 삶을 흔들고 지나가지만, 그저 잠시의 바람이라 생각하지 그것이 무너지는 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혹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발목을 다친 후에, 절뚝거리면서 계단을 오르내리고 17시간을 꼬박 앉아서 공모 마감을 지킬 때까지만 해도, 나는 또 다시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었다.      


눈을 뜨기가 싫어졌다. 아무리 일찍 잠이 들어도 일찍 일어날 수가 없었고, 겨우겨우 일어나 기계적으로 작업실로 나왔지만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갖가지 고지서들은 어김없이 날아들었고, 통장을 스치는 숫자들은 (-) 만 빼곡했다.

지칠 법도 하다.      


운동을 좋아하진 않지만, 머리가 아플 때면 동네 산책이라도 하거나, 차를 타고 달려가 호숫가를 30분씩 걷곤 했다. 그게 아니라면 도서관에 가서 책이라도 읽었다. 그런데 발목을 다친 이후에는 걷기가 힘들었고, 절뚝거리면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만해도 숨이 찰 지경이었다. 그렇게 기어(?) 나와서 기약 없는 글을 쓰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그렇다. 즐겁지 않았다.      

왜? 오로지 발목 때문인가?.......그럴 리가 없다.  


사실 사는 것이 즐겁지 않은지는 오래되었고, 그 미세한 균열의 순간들을 모르지도 않았다. 다만 방법이 없었거나 그 방법이 싫었거나, 그저 억울했다.

         



촉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이다. 눈치가 빠른 편이고, 미세한 기운의 흐름을 읽거나 돌아가는 형세를 파악하는 눈도 좋은 편이다.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삶의 포지션 상 나는 ‘관찰자’인 적이 많았기에 세월이 쌓여가며 체득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왜’ 그러는지를 찾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론 모르는 것이 나았다. 굳이 몰라도 되는 것을 알게 되니 괜히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스스로의 모자람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은 더욱 괴롭고 싫었다. 문제를 안다는 것과 해결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 ‘왜?’를 찾는 과정은 ‘나에 대한 연민’의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수도 있다는 연민이다. 어제, 엄마 이야기(정확히는 험담이다)를 썼다가 글을 내렸다. 내가 많이 섭섭했나보다. 이미 삼십년도 더 지난 일까지 소환하며 바득바득 나의 상처를 끄집어낸다. 위로받고 싶었다고 징징거렸다. 


사실 삶에있어서 많은 부분에서 '왜?' 라는 질문은 본질이 아니다. ‘왜?’를 따지기보다는 그냥 살아가는 것, 닥쳐오는 것들을 담담하게 맞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게다가 '왜?' 를 찾는 과정이 나에대한 연민을 합리화하기 위함이라면 더더욱.


몇 번의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햇던 것, 떠나야 할 순간에 떠나지 못하고 머물렀던 것들, 혹은 스스로의 연민 때문에, 나쁜 사람 되기 싫다는 핑계로 주저앉았던 시간들, 모든 것들이 내탓이었지만 가끔은 저 멀리 티끌까지 소환해서 ‘왜’ 그랬는가를 항변하며, 상처받고, 위로받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일은 그만해도 되겠다. 

물론, 여전히 외롭거나 슬프거나 서럽거나 아프겠지만. 뭐, 그냥 그렇다고.           




나는 남들보다 걸음이 느렸는데, 이유를 찾지 않고 ‘그냥’ 사는 삶, 그 걸음도 이제야 배운다.           

그렇다고 당장 손바닥 뒤집듯 좋아지지는 않는다. 무너진 것들이 하루아침에 복귀되는 일은 없다.  나는 오늘도 늦잠을 잤고, 차의 기름이 바닥난 것을 보면서 한숨을 쉬며 주유소에서 주유를 했고,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그저 앉아있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키보드 캡을 다 뜯어서 청소를 했다. 이토록 생산성 없고 뻘스러운 일을 하다보면, 진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진다.      






     

*글을 하나 올렸었는데, 내렸습니다. 감정적으로 힘들어서 마구잡이로 썼던 글인데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냥 내렸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사실 브런치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좀 있습니다. 일기장으로 쓰긴 했었는데, 이제 그러기가 싫어져서요. 그렇다고 폭파를 해버리려니 아쉽고, 아깝고, 뭔가 <목차가 있는 글>을 쓰기엔 제 성향과 맞지 않고....      

모르겠습니다. 잠시 내버려두죠. 뭐.      


곧 설날입니다. 행복한 날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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