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azing Grace YJ Jul 09. 2023

사물의 추억  1

빨간 운동화

내 나이키, 빨간 운동화


  이 운동화를 만나게 된 건 2011년 여름, 비 오는 뉴욕 맨해튼이었다.
  빨간색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상하게도 빨간 운동화만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이끌려 지갑을 열게 된다. 마치 동화 속 빨간 구두 이야기처럼 나도 모르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2011년 나는 6개월짜리 단기 뉴요커였다.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캐리 브래드쇼처럼 브루클린 하이츠에 살면서 사라베스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럭셔리 라이프의 뉴요커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메트로 놀쓰를 타고 매 주말 맨해튼을 지도 없이 활보할 때만큼은 ‘난 여행객이 아니야! 뉴요커라고!’ 생각하며 단기 뉴요커로써의 자부심을 느끼면서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어학연수 당시에 나는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고, 나보다 연장자인 C언니가 있어서 함께 주말마다 업스테이트에서 맨해튼으로 출근도장을 찍으러 나갔다. 그날도 맨해튼으로 나가는 날이었다. 거의 매 주말을 나가면서도 매 번 설레었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노부부를 만나 남한 사람이냐 북한 사람이냐는 농담을 나누며 42번가 그랜드 센트럴에 도착했다. 기차를 탈 때만 해도 괜찮았던 날씨가 맨해튼에 도착하자마자 흐려지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뉴요커들은 우산을 쓰지 않지! 하면서 우리는 우산 없이 움직여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빗줄기가 굵지 않아서 걷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뉴욕 공립도서관을 지나 타임스퀘어로 향해 걸어가는데,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졌다. 비를 피할 곳을 찾다가 가장 가까운 가게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잠시 앉아있을 만한 카페도 아닌 운동화 편집샵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비를 피해서 들어가긴 했지만 그냥 멀뚱히 서있을 수가 없어서 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그때, 빨간 운동화가 운명처럼 내 눈 안에 들어왔다.


“얼마예요?”
“이 신발은 마지막 한 켤레 남았어요. 구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럼 사이즈가 어떻게 되죠?”
“9.5입니다.”


  이건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돌아볼 것도 없이 사야 했다. 왕발이인 나에게 꼭 맞는 사이즈라니!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운동화와 같은 모델, 다른 컬러의 운동화 또한 동일한 조건이었다는 것. 그리고 C언니 사이즈의 마지막 한 켤레였다. 1+1의 저렴한 운동화였지만, 캐리 브래드쇼가 마놀로 블라닉을 겟 한 것처럼 우리는 참 행복했다.


  마법 같은 신기한 순간이 끝나고 가게를 나가는 순간 비는 거짓말처럼 그쳐있었다.
  비 오는 날 사막의 신기루처럼 나타난 거부할 수 없는 빨강의 유혹은 약 10여 년간 나를 이곳저곳으로 이끌어주었다. 이제 그 역할을 다 했기에 헤어져야 할 때가 왔다. 버리려고 내어놓은 빨간 운동화를 보니 문득 2011년 비 오던 맨해튼의 거리가 생각났고, 이제는 연락이 끊어진 C언니가 생각났으며, 그 시절 행복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이 운동화를 다시 신발장에 넣고 말았다. 우리는 정말 헤어질 수 있을까?



*이 글은 2w 매거진 2호에 실린 글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