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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 Mar 10. 2024

결혼식을 가장한 불법 연극

연극 거울 A Mirror

'연극과 검열에 대한 스릴 넘치는 풍자'(데일리 메일 Daily Mail)라는 평을 받은 연극 [거울 A Mirror]. 가디언은 '비범하고 매혹적'이라 썼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기발한 드라마'라고 썼다. "이 연극은 거짓이다"라는 카피를 내세우고 있는데 '놀랍고 재미있으며 생각을 자극하는 여정'이라는 홍보 문구가 잘 들어맞는다. 넷플릭스 [더 크라운 The Crown]과 영화 [트레인스포팅 Trainspotting]으로 유명한 조니 리 밀러 Jonny Lee Miller가 주역을 맡았다. 검열관이지만 연극에 대한 애정을 지닌, 그것이 약점이기도 한 역할을 '연기'한다.

이 연극은 거짓이다

문화부가 모든 예술 작품을 검열하고 승인하는 국가에서 결혼식을 가장한 불법 연극이 시작된다. 관객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연극을 보기 위해 모인 이들이 된다.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고, 서약을 낭독하기도 하며 극에 참여한다. 허가 없이 몰래하는 연극은 어딘가 엉성하고 우습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정부 지원, 검열, 표현의 자유와 왜곡된 역사와 군 비리까지 예민한 주제들을 건드린다. 어디까지 연극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알 수 없도록 극 속에 극이 첩첩이 있다.


공연 제목의 단서는 검열관의 대사에 있다. 좋은 예술 작품을 육성한다는 핵심 미션을 지키려는 그는 작가를 '도우려' 한다. 연극 작품을 쓴다는 것은 진실 그대로를 좇는 게 아니라고 신인 작가에게 충고하면서 거울과 그림은 다르다고 설명한다. 문화부 승인을 받아 활동 중인 기성 작가는 신인 작가에게, "연극이란, 특히 국공립 무대에 올리고자 하는 연극은 보고서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라는 충고를 덧붙인다. 무엇이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지원인지. 예술가를 보호하고 육성하는 권력의 힘은 어디까지인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신인 작가는 그들과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 적은 작품을 쓰고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검열관과 신인 작가의 대립이 극에 달한 순간 치안 요원들이 사방에서 들이닥친다. 여기서부터 다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동안 보았던 모든 장면과 들었던 대화들은 신인 작가가 쓴 연극이다. 그 연극 속에 등장했던 실제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 인물인 극 중 인물도 있고, 다른 사람을 연기했던 이도 있다. 그리고 검열관이 왜 처음부터 장갑을 끼고 있었는지 충격적인 이유가 드러난다.


우아하면서도 충격적인 작품을 쓰는 샘 홀크로프트

작가 샘 홀크로프트 Sam Holcroft는 에든버러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다 2008년 대학 극단에서 첫 번째 연극을 쓰고 공연했다. 2009년 신진 작가 상인 톰 에하르트 어워드를, 2014년 미국 예일대에서 제정된 윈덤 캠벨 문학상 드라마 부문에서 수상했다. 심사평에 따르면 샘 홀크로프트의 연극은 "언어, 제스처, 역할극의 일상화되고 표현적인 영역을 탐구하며 구경꾼과 공모자 사이에서 불편할 정도로 얇은 경계를 걷고 있다." 같은 해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매년 열리는 신작 연극 축제인 영국 국립극장 커넥션 페스티벌에 선정됐고 2015년 3월 국립극장 도르프만 극장에서 [생활의 법칙 Rules for Living]이라는 공연을 올렸다. (윈덤 캠벨 문학상 홈페이지를 참고했습니다. 작가 사진도 있음). 연극 [거울]은 2023년 작품으로 제레미 헤린 Jeremy Herrin이 연출했다.


작가는 같은 극작가이자 남편인 알 브라이스 Al Blyth와 함께 2011년 북한을 방문했다. 이 인생을 바꾼 여행에서 [거울]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로열 코트 극장의 극작가 프로그램을 통해 다녀온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작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서 레바논과 시리아 극작가들과 함께 하면서 작품이 검열되고, 극장에 잠입한 비밀경찰에 작품을 들킬까 대본을 찢는 모습을 목격했다. 얼굴에 멍이 들고 뼈가 부러질 위험에도 글을 쓰는 다른 작가들을 보면서 자신도 과연 그런 상황에서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그 질문에 매료되어 글을 쓰고 싶었고 관객들도 스스로 질문해 보기를 원해 쓴 작품이 바로 [거울]이다. 인터뷰에서 작가 홀 크로프트는 이렇게 말했다. (가디언 인터뷰를 참고했습니다.)


우리는 극장에서의 밤이
즐거운 경험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나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금지된 연극을 관람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관객들이 조금이나마 맛보게 하고 싶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치안 요원에게 허가받은 결혼식임을 설명한다

레바논 블랙리스트 작가의 검열받는 글쓰기

프로그램북에는 '검열을 받는 글쓰기 Writing under censorship'라는 제목으로 루시앙 부르자일리 Lucien Bourjeily의 글을 실었다. 루시앙은 에미상 후보에 오른 레바논 출신의 작가이자 감독,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 강사이다. 글은 불과 1년 전인 2023년 4월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베이루트 극장에서 검열된 버전이 아닌, 무검열 작품을 올리면서 검열국 요원이 들이닥칠까 걱정하던 모습을 묘사한다.


루시앙은 연극 작품을 제출하고, 신분증 검사와 보안 검사를 받고 들어간 군용 건물에서 세 명의 요원으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검열국은 작품에서 정치적 부패와 무능함을 언급하는 대사를 삭제하도록 요구했다. 작가는 단속을 피해 본래의 작품으로 공연을 진행했다. 공연을 강행한 극작가는 '미치광이'로 낙인찍혔고 그의 연극은 망상이자 허구라는 비난을 받았다. 작가는 여권을 압수당하는 등의 보복성 불이익을 당했다.


루시앙은 검열국 심문관들과의 만남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검열에 관한 희곡을 써 더 이상 그들이 그 연극을 '망상적 허구'라고 떠들지 못하도록 대응했다. (연극 [거울]에 등장하기도 하는 장면이다) 작가에 따르면 국가는 공연을 금지시켜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경제적인 폭력으로 예술가들이 검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침묵을 지킬 것을 강요한다. 고의적으로 검열을 지연시키거나 여권을 압수하고 예술가를 나라 밖으로 추방시키기도 하는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필자 루시앙은 연극에 종사하는 이유의 본질을 언급하면서 정부의 통제 없이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 밝히고 있다.


언어가 존재하는 한 검열도 존재한다

프로그램북에는 레바논 작가 루시앙의 글에 이어 '영국 검열의 역사 A History of Censorship in Britain'라는 글을 실었다. 글을 쓴 케이트 몰트비 Kate Maltby는 신문 칼럼니스트이자 연극 평론가, 초기 근대 문화학자이다. 케이트는 표현의 자유가 다른 모든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권리의 기반이 되는 기본권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가 항상 기존 권력을 위협해 왔기 때문에 언어가 존재하는 한 검열도 존재해 왔다고 적는다.

검열은 표현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논쟁의 대상이 된 표현에 대해 토론할 때
우리의 언어는 필연적으로
검열을 중심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
Censorship contests speech,
and as we debate contested speech our language
inevitably warps around it.


케이트는 글을 통해 연극 [거울]에 묘사된 모든 검열 방식은 오늘날 전 세계 어딘가에서 실행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우려를 제기한다. 연극 [거울]을 연습하는 동안에도 온라인 안전 법안에 대한 논쟁이 계속됐다. 감시 기술의 발달은 시민들의 발언을 감시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독재 정권에 제공하고 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허위 정보 캠페인인 '소음을 통한 검열' 같은 새로운 위협의 가능성도 있다. 무엇이 검열에 해당하고 해당하지 않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연극 [거울] 트라팔가 극장 프로덕션 프로그램북을 참고했습니다)


- 2023년 8월 15일부터 9월 23일까지 알메이다 극장 Almeida Theatre에서 초연됐다.

- 2024년 1월 22일부터 4월 20일까지 웨스트엔드 트라팔가 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 국내에서는 2025년 하반기 혹은 2026년 중 공연 예정이다.

- 사진 출처 https://almeida.co.uk/whats-on/a-mirror-west-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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