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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 Mar 23. 2024

주정뱅이가 된 간달프

이언 메켈런 연극 [플레이어 킹스] 출연

연극 [플레이어 킹스]를 제대로 봤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언 메켈런'을 봤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백색의 간달프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언 메켈런'이 무대에 선다고 해서 예매를 서둘렀다. 웨스트엔드 무대로 진출하기 전, 런던 서남쪽인 윔블던에서 일주일, 런던보다 북쪽에 위치한 맨체스터에서 일주일을 공연했다. 3월 7일, 뉴 윔블던 시어터에서 공연을 봤다.  


[플레이어 킹스]는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헨리 4세] 1부와 2부를 각색한 작품이다. 올리비에상 최연소 최우수 연출상 수상에 빛나는 작가 겸 연출 로버트 아이크가 각색하여 연출했다.


'할'은 후에 헨리 4세의 아들로 말썽쟁이 왕자에서 책임감 있는 왕 헨리 5세로 성장하는 인물이다. '할'이 철없던 시절 선술집에서 어울리던 이가 '이언 메켈런'이 맡은 '팔스타프'이다.


'세계 최고의 배우 중 한 명'(타임스)인 이언 메켈런이 수상 경력이 있는 작가 겸 연출 로버트 아이크가 각색한 셰익스피어 [헨리 4세]의 새로운 버전에서 '팔스타프' 역을 맡았습니다.
분열된 나라, 무너지고 있는 리더십,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 영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할'은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왕이 될 것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이스트치프의 선술집에 있는 친구들, 특히 악명 높은 '존 팔스타프'를 두고 떠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전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할'은 잘 될 수 있을까요? (연극 [플레이어 킹스] 홈페이지 공연 소개 중)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팔스타프 역 이언 메켈런

'이언 메켈런 경(Sir Ian McKellen).' 올해 84세. 신인상부터 남우주연상까지 올리비에 상을 여섯 개나 받았고 미국 토니상 연극 부문 남우주연상도 받은 바 있다. 1991년에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이언 메켈런'은 뚱뚱한 허풍쟁이로 출연한다. 배가 나오다 못해 흘러내릴 지경이다. 술을 몹시도 좋아하는 주정뱅이다. 전쟁 중에 죽은 척하다가, 이미 죽은 적군을 자기가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뚱뚱한 팔스타프 역의 이언 메켈런

헨리 5세는 왕이 되고 나서 왕자 시절 어울렸던 그를 저버린다. 가디언 기사에서 마이클 빌링턴은 '팔스타프'가 햄릿만큼 복잡하고 모순적이며 다층적인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기사에 달린 70 여개의 댓글에서 저마다 목격했던 팔스타프 공연에 대한 인상과 인물에 대한 분석을 내놓는 것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셰익스피어의 영향력을 느낀다. 그리고 이들이 얼마나 연극을 아끼고 그 애정을 바탕으로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는지 부러움과 질투심이 엇갈린다. 


옆자리 관객은 '이언 메켈런'이 등장하자 공연 중에 사진을 찍어댔다. 대학로였다면 당장 다른 관객들의 항의로 멈췄을 텐데. 아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영국에서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을 때 셔터음이 나지 않는 데다 공연장 좌석도 통로 없이 30-40석씩 붙어 있으니 제지가 거의 불가능하다. 공연 중에 극장 안에 있는 어셔도 그 수가 훨씬 적은 듯 하다. 옆자리 그분은 1막 후반부에 다시 휴대전화를 켜 기차 시간표를 확인했다. 보아하니 '이언 메켈런'을 보러 멀리서 온 모양이었다. 1막이 끝나고 쉬는 시간 20분이 지난 후에도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내 옆자리 관객을 포함해서, 공연을 보며 다른 관객들의 '이언 메켈런'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대사 한 마디에 호의가 듬뿍 담긴 웃음이 객석에 번졌다. 84세 배우의 아이디어였을지, 번뜩이는 젊은 연출의 의도였을지 궁금할 정도로 배우의 매력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있었다. 술 주정뱅이에다 허풍쟁이인 그의 움직임과 대사에 관객들은 집중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으로 화답했다.  


[플레이어 킹스]는 최근 본 공연 중에 러닝타임이 가장 길었다. 1막 120분, 쉬는 시간 20분, 2막 90분. 인터넷에서 읽은 공연평 중에는 4시간 넘게 공연되었음에도  [헨리 4세] 1부와 2부, 방대한 역사극 두 편을 담아내기에 급하게 느껴졌다는 의견이 있었다. 4월부터 시작될 웨스트엔드 공연에서는 러닝타임이 줄어들기를 기대하는 댓글도 있었다. 두 개의 극을 하나로 합치다 보니 '할'과 '팔스타프'의 관계에 충분한 깊이가 없어 보였다는 후기도 있었다.


이 공연은 이번주 맨체스터 공연 후 웨스트엔드 노엘 카워드 극장에서 4월 1일부터 6월 22일까지 12주간 공연하고 브리스톨, 버밍엄, 노리치, 뉴캐슬까지 4곳을 투어 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공연 중인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신구(87세) 박근형(83세) 박정자(82세) 선생님이 출연해 연일 매진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도 그렇고 [플레이어 킹스] 역시 일생을 연기에 헌신한 이들의 무대를 만날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들이 보여줄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하며 더 많은 이들이 공연장을 찾아 연극을 보기를 바란다.


이미지 및 사진 출처: [플레이어 킹스] 웹사이트

https://playerkingstheplay.co.uk/

Photography credit: Manuel Har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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