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저는 어린 시절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세상에 살았습니다. 제가 처음 만난 세상은 어둠이 8할, 가끔 드는 빛들이 2할이었죠. 빛들을 찾기 위해 나름 치열하게 노력하던 날들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고민을 하고 있지만요. 늘 생각했죠. 평온한 가정이란 무엇일까, 안락하고 따뜻한 집은 무엇일까. 근원적 선함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때로는 소공녀처럼 인생의 역전극이 일어나 제가 바라던 집과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랐습니다.
삶의 나이테가 발 끝에 새겨지기 시작하고 차츰 성장하면서 세상이 분명한 이분법으로 나뉠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분명하지 않은 경계에서 어떻게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목표를 찾아 걸어갈 수 있는지, 그들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은 없는지, 그러한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미치도록 궁금했었죠. 그들과 다른 경계 위의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며 오래 곰곰했습니다.
그때 만났던 책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입니다. 누군가의 수호천사처럼 곁을 지켜주던 존재. 그리고 마침내 나의 내면에 합일되어 나와 함께 하는 존재. 이 책이 얼마나 좋았는지 3종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갖고 있더군요. 그중 가장 최근에 발행된 지식을 만드는 지혜라는 출판사의 <데미안>을 다시 펼쳐 들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 <데미안> 이인웅 옮김 p.141 중
구스파트 구스토 그래저의 새매의 그림과 이 문구가 기록된 책을 펼칩니다. 어린 시절의 데미안이 지금 제가 만나는 데미안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죠.
제가 속한 공간을 벗어나려 노력하며 살았다면 책 속 주인공 어린 에밀 싱클레어가 살았던 세상은 선과 악이 분명히 구별되던 빛의 세상이었죠. 그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악의 세상을 만납니다. 프란츠 크로머라고 하는 소년으로 표상되는 어둠의 세상에서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뒤로 밀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자신이 한 거짓말로 만나게 된 것이었죠. 그런 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원해 준 데미안을 통해 싱클레어는 오한이 들고, 구토를 하던 좀도둑질을 멈추게 됩니다. 부모님 몰래 도둑질해 바쳐야 했던 2마르크의 일탈은 이렇게 막을 내리죠.
그 뒤 성장기를 거치며 학교의 이름난 난봉꾼이 되어버린 그에게 삶은 더욱 큰 혼란으로 찾아옵니다. 부모님의 선의 세상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삶의 나침반이 왜 어린 싱클레어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걸까요?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흠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며 그는 뜨거운 열감 속에 동경과 공포 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그는 그런 마음을 신성과 악마성에 대해 살펴보게 되며 극복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꿈에 대한 풀이를 해주는 피스토리우스를 통해 자신이 겪고 있는 내면의 갈등에 대한 단서를 찾게 되죠.
자네를 날게 만든 도약, 그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우리 위대한 인류의 재산이지. 그것은 모든 힘의 뿌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지. 그러나 그러면서도 곧 두려워져! 그것은 빌어먹게 위험하지!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렇듯 차라리 날기를 포기하고 법규정에 따라 인도 위를 걷는 쪽을 택하지.
그런데 자네는 아니야. 자네는 계속 날고 있어. 유능한 젊은이에게 합당한 대로 말이야. 그리고 보게, 자네는 놀라운 것을 발견하네. 자네가 점차 그 주인이 되는 것을 말이야. 자네를 계속 낚아채 가는 커다랗고 알 수 없는 보편적인 힘에다가 하나의 섬세하고 작은 자신의 힘이 더해지는 것을 발견하네. 하나의 기관, 하나의 방향키 말일세. 이건 대단한 거야. 그것이 없다면 그냥 공중에 떠 있을 테지, 미친 사람들이 그러듯이 말이야.
- 데미안, 전영애 옮김. 민음사 p. 144 중에서
이후 싱클레어는 자신의 혼란에 대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 이를 적지도 않고 데미안에게 보냈는데 답장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그들의 인연에서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그의 어머니 에바부인까지 만나게 되면서 점점 더 내면의 성장을 이루어 갑니다. 그러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전쟁 중 포격을 당해 부상을 입게 된 싱클레어 앞에 몽환적으로 등장했던 데미안의 모습을 통해 한 세계가 닫히며, 마침내 자신만의 온전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죠.
그러나 가끔 열쇠를 찾아내어 나 자신의 내면으로 완전히 내려가기만 하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 잠들어 있는 운명의 상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다음엔 그 어두운 거울 위로 몸을 굽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이젠 완전히 그와 똑같은, 내 친구이며 지도자인 그 사람과 똑같은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데미안> 이인웅 옮김 p. 264 중에서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찾은 것일까요? 이상적인 인격의 표상으로 제시된 데미안과의 합일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요? 그가 1954년 2월 15일 사라진에게 보낸 편지에서 헤세는 "사실상 데미안은 사람이 아니라 원칙이며 진리의 화신이거나, 달리 말하면 하나의 가르침입니다."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의미의 데미안은 왜 소설 속에서 사라져야만 했을까요?
"옳은 것은 이미 우리 안에 있지. 그래서 결국 데미안은 사라져야 하는 거야. 왜냐하면 싱클레어는 그 어떤 지도자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야."라고 헤세는 자신의 누이 아델리에게 말하죠.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다."
- <데미안> 이인웅 옮김. p. 6 중에서
책 서두에 쓰여 있던 문구가 비로소 이해되던 순간이었습니다. 진정한 해석,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는 자기 자신만 가능하다는 이 말이 오늘 크게 와닿습니다.
단편적인 정보들만 가지고 우리는 섣부른 판단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으로 완성된 생각을 다른 이에게 하나의 명제처럼 전달을 합니다. 그렇게 형성된 생각들은 다른 생각의 유입을 막는 견고한 틀 안에 갇혀버리죠. 쉽게 바뀌지 않는 일종의 생각의 거름체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도 막아버리는 기름막이 되어 버립니다. 있으나 없는 듯 존재하는 우무질처럼 말이죠.
우리는 삶에서 앞으로 나아갈 나침반이 필요하다 생각이 들 때 대부분은 곁에 있는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곤 하죠. 그러나 그렇게 얻게 되는 조언은 상대방, 즉 나보다 낫다 생각이 드는 이들의 상대적 위치의 경사도에 의해 대부분 형식적인 충고가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귀를 기울이되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내리는 해석과 판단이 나를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데미안을 통해 다시금 깨닫습니다.
며칠 전 한때 천재소녀라 불리던 어린 여배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나의 죄과로 인해 그녀에게 씌워진 범법자라는 틀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그녀는 외로운 길을 떠났죠. 외부의 악의적 충고 혹은 말들에서 고통받고 괴로워하던 그녀. 이해받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도 스스로 노력하며 애쓰던 어린 영혼을 위해 잠시 애도를 표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표류 중인 수많은 영혼들에게 잠시 쉼표이자 나침반이 되어 줄 <데미안>을 가만히 펼쳐봅니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백아 : 이 세계
https://youtu.be/gZomPlxUnHY?si=gzygs6lovh8oBlT7
#데미안
#아야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