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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의가 되고 싶다고? 아니 군인이라고?

내 인생의 두 번째 레시피는 라임에이드인지도.

by ECHO

'엄마'라는 이름으로 20년 동안 살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취약했던 부분, 둘째 아이인 '하은이의 엄마' 역할을 '호야 엄마' 못지않게 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역할도 '호야 엄마'의 역할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이 역할이 호야 엄마의 역할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는 큰 아이대로, 작은 아이는 작은 아이대로 성별만 다른 것이 아니라 성격, 취향 등 모든 게 다 다르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큰 녀석이 특수하다면 작은 아이는 일반적인 아이다.

큰 아이는 우리 가족 모두 동의하는 트리플 E이고, 작은 아이는 I이다.

큰 아이는 짠 음식, 작은 아이는 단 음식을 좋아한다.

치킨을 시켜도 우리 집은 싸울 일이 없다. 작은 아이가 닭다리, 큰 아이가 닭가슴살 차지다.

둘 다 육식동물이고, 예민한 편이지만, 호야에 비해 작은 아이는 훨씬 섬세하고 주의 깊게 다가가야 한다. 여자 아이 특유의 배려심이 뛰어난 아이라 상대방에게도 배려받기를 원한다. 엄마, 아빠에게는 더더욱 더 그렇다.


적어도 작은 아이에게 있어서 나는 오랫동안 Personalized mom이 아니었다. "호야 엄마"로 하은이를 키워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은 3년 전, 작은 아이가 고등학교 9학년이 된 후 최악이었던 아이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떠났던 여행에서였다. '미스터 선샤인'을 시작으로 김은숙 작가의 열혈 팬인 작은 아이는 드라마 '도깨비'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몬트리올과 퀘벡으로 둘만이 떠났다. 말이 여행이었지, 남편이 나와 딸을 집 밖으로 쫓아낸 것과 다름없었다. 제발 관계 회복 좀 하고 오라는 당부와 함께 반 강제적으로 떠난 그 여행을 통해서 나는 내가 무엇을 그동안 잘못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그 이후 '하은이표 엄마'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런 나의 노력에 부응하듯 작은 아이는 매 년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앞서서 갈 테니 엄마와 아빠는 뒤에서 따라와 주세요

9학년 때 했던 Student Lead Conference에서 아이가 우리에게 했던 말이다. 자기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망설여하는 큰 아이를 키우며, 중요한 결정은 큰 아이와 상의를 하긴 했지만, 그 주도는 우리 부부가 해왔다. 작은 아이는 이 점도 큰 아이와 달랐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주도하기를 바랐다.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갈 테니 믿고 자신을 지원해 달라고 부탁했던 작은 아이는 스스로 진로도 결정했고, 대학에서 어떤 분야를 공부할 것인지도 정했다. 그 과정을 여기에 공유하는 것 또한 의미 있겠다 싶다. 한 소녀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서포터'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우리의 케이스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학교로 가는 차 안. 7학년 때쯤 나에게 '부검의'가 되면 어떻겠냐 묻는다. 중학생 여자아이들이 제일 흔하게 읽는 책이 범죄 관련 소설인지라, 이 녀석도 여기에 심취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검의가 되고 싶단다.


그 어렵고 험한 일을 할 수 있겠니? 매일 험하게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봐야 하는 일인데?

해부학은 우리 딸이 의학의 길로 가고 싶다는 좋은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어도비 스톡 유료 이미ㅣ)

이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라왔다. 거의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던 그 순간,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번뜩였다. "부검의가 되려면 어차피 의대를 가야 하잖아? 그럼 그 과정에서 아이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달리 생각을 하니, 부검의가 되겠다는 아이의 생각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세상에 나와서 이렇게 험한 일이지만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데, 부모로서 지지해주지는 못할 망정 막아서면 안 되겠다는 쪽으로까지 생각이 발전하니, 더더욱 반대해서는 안 되겠다 싶다. 이 모든 생각의 전환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엄마는 찬성이야!"


또 어느 날은 나에게 '군인'이 되고 싶단다.

군인과 부검의. 전혀 달라 보이는 분야이지만, 이쯤 되니 아이가 어느 쪽에 관심이 있는지 감이 잡혔다. 이 아이는 자신의 커뮤니티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분야에 관심이 많구나! 그렇다면 소방관이나 경찰이 되겠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 아이에게 솔직히 말했다.

" 엄마로서 '여군'이 되겠다는 딸의 진로를 지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야. 다만, 전쟁의 역사를 보면 미국에서 '군대'라는 조직은 현존하는 가장 최첨단의 장비들을 전쟁에 사용하는 곳이고, 이 장비들은 종전이 되고 평화가 오면 상업적으로 상용화되기 때문에, 세상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알 수 있는 곳이 군대인 것은 맞아. 게다가 사람들과 일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곳이지. 그러니 네가 원한다면 장교가 되는 방법을 생각해 봐라"


딸은 그 후에도 나에게 역사학을 공부해 보고 싶다, 정치학을 공부해 보고 싶다, 다양한 의견을 말해주었다.

무엇이든 아이가 원하는 길을 지지해주고 싶었기에, 딸에게 발보아 공원에 있는 House of Korea에서 고등학생 발룬티어 조직인 Young Ambassador에 들어가 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역사나 정치학 쪽을 공부한다면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아이는 내가 10개를 제안하면, 그중 한 두 가지 정도를 수용하는 수준이었지,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더 많은 부분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이와 관계가 좋아진 것은 당연하다.


나와 남편은 우리 아이가 가고 싶은 길, 그리고 여러 탐색을 통해 자신이 정해 놓은 길에 지름길은 없는지, 웅덩이는 없는지, 혹 있다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가다가 쉴 곳은 없는지, 지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이 정도가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리소스들을 아이가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원해 주었다.

9학년 때 스페인어 수업이 한 예다. 한 학년이 약 100명 정도인 작은 학교지만 히스패닉계 아이들이 50%가 넘는다. 이 아이들에게 9학년 스페인어 수업은 식은 죽 먹기였지만, 우리 딸은 선택의 여지없이 이 아이들과 스페인어 수업을 들어야 했다. 스페인어를 1도 모르는 아이가 원어민 아이들과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 당연히 우리 딸에게 무척이나 어려웠고, 아이는 급격히 흥미를 잃었다. 이런 아이를 위해 남편은 Duolingo app을 다운로드하여 유료 회원으로 가입한 후, 아이에게 함께 스페인어 공부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계속 공부해서 졸업 후 함께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하은이는 이런 아빠의 제안에 힘을 얻고 함께 듀오링고를 하면서 스페인어 수업을 열심히 들어 좋은 학점으로 이 수업을 마무리했다. (하은이는 전화기가 망가지면서 듀오링고를 그만두었지만, 남편은 여전히 스페인어를 856일째 공부하고 있다. 나도 함께 스페인어를 공부하다가 퀘벡 여행과 작년 호야와 RTW 여행을 계기로 불어로 방향을 바꾸었다. 호야도 함께 듀오링고로 스페인어를 공부해서 제법 스페인어를 구사한다.)


더불어 사회의 일원으로 '기본 중의 가장 기본'인 태도에 신경을 썼다. 누구든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 Thank you letter를 잊지 않고 쓰게 했다. 이 레터에는 정중하지만 겸손하게 자신이 한 프로그램 중 어떤 부분들이 특히 좋았고, 더 발전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겠다는 자신의 의견을 꼭 쓰도록 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딸은 이메일을 참 잘 쓴다. 가끔 우리 딸이 외부에 보내는 이메일에 우리 부부를 bcc 하는데, 메일을 읽을 때마다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하은이는 우리의 지원과 응원을 바탕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9학년때부터 해 온 House of Korea의 Young Ambassador로 발룬티어는 여전히 하고 있지만, 자신의 본진은 바이오라고 생각한 듯하다. 부검의에서 시작한 아이의 꿈은 오빠의 영향을 자양분 삼아 뉴로사이언스 분야로 확장되었다.

생물학 수업을 하나도 듣지 않은 상태에서 10학년때 화학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Anato-Bee Competition에 참가했다. 튜터링 세션에 꼬박꼬박 참여하며 대회 준비를 하더니 우리의 예상을 깨고 예선 대회를 통과해 서부 본선 대회까지 진출했다. 실제 시신을 눈앞에 두고 테스트하는 본선 대회에서 비위가 무척이나 약해 조금만 차를 오래 타면 멀미를 하는 아이가 실제 뇌와 폐암으로 사망한 시신의 폐를 직접 만져 보았다며, 자기의 15년 인생 중 '가장 쿨한 순간'이라며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여전히 뇌가 자기에게 가장 흥미롭다는 하은이는 UCSD에서 일주일 동안 진행한 Girls' STEM 행사에 참가해 여기서 '화학'에 대한 흥미 또한 갖게 되면서 뇌와 함께 심장도 너무 흥미롭다 한다. 부검의에서 시작한 딸의 꿈은 점점 구체적으로 변해 이제는 심장외과나 신경외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올해 한 층 더 잘 조직된 Anato-Bee 본선에 참여해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참가자 인터뷰이로도 참여하여, 해부학 교육에 있어 권위 있는 세인트 루이스 의대 조직위의 교수님들과도 '느슨한 네트워킹'을 만들어두었다. 내년 대학입시에 추천서가 필요하면 연제든지 연락하라는 코멘트와 함께 말이다. 이런 대회와 경험들을 거쳐가며 딸은 수술방 의사가 되겠다는 의지가 더 강해졌다.

Anato-Bee 대회 홈페이지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하은이는 친구들을 모아 자신들이 졸업한 초등학교의 방과 후 수업을 지원하는 클럽을 만들었다. 수학과 과학은 정말 중요한데, 잘할 수 있는 아이들이 수학 문제를 푸는 연습량이 부족해 자꾸 실수를 하니, 이 때문에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한 클럽이다.

여전히 피겨 스케이팅을 하며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관리한다. 처음엔 피겨를 잘하기 위해 헬스 트레이닝도 스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피겨와 자신의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 아이는 없는 시간을 쪼개 헬스장으로 향한다.


누가 이 아이에게 이렇게 훌륭하게 자기 주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을까?

우리 부부의 역할은 앞에서 말했듯이 '서포터'에 불과했다. 아이아 어떤 길을 가겠다 하더라도 우리의 역할은 그 길을 지지해주는 것일 뿐, 드라이브를 거는 것을 할 수 없다. 그것을 배운 곳은 학교이다. #HTH High Tech High의 Project Based Learning으로 다져진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 그 바탕이 되었다.

16세가 되지마자 우리는 딸 아이의 적성 검사를 했다. 그 결과는 아이가 가려는 길과 상당히 일치해서 우리 부부를 놀라게 만들었다. 적어도 하은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일치시켰고, 이 통찰력에 우리 부부는 할 말을 잃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아이의 진로에 대해 간섭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제일 자기가 잘 알고 있는데, 무슨 잔소리가 더 필요할까.


작은 아이는 원래 우리 부부에게 밝은 햇살 같은 존재였지만, 지금은 더더욱 환하게 빛나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 길에 함께 부모로 동참하고 있어 우리는 너무 행복하다.


If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나에게 호야는 레몬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20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제법 그럴싸한 레모네이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모르는 새 말이다.

호야와 같은 레몬인 줄 알았던 하은이는 사실 레몬이 아니었다. 더 다루기 까다로운 라임이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우리는 제법 그럴싸한 라임에이드 또한 만들기 시작했다. 이 라임에이드의 맛은 우리가 아닌 딸이 스스로 제조할 것이다. 어떤 맛의 라임에이드가 만들어질지 제법 기대가 된다.


2025년 5월 5일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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