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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는 심정으로 20년을 살아내니..

by ECHO

중등 교사 자격증을 받기 위해 받았던 사범대 학생이었던 나는 발달 장애인인 호야 엄마로 20년을, 그리고 아주 평범한 하은이의 엄마로 16년을 살았다. 아이들을 High Tech High로 전학시키면서 아이들 뿐 만 아니라 우리 부부도 문제 해결력에 중점을 둔 Project Based Learning(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함께 배웠다. 부모로서 만나게 되는 여러 종류들의 문제들을 어떨때는 나 혼자, 어떨때는 가족들과 함께, 또 어떨때는 커뮤니티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해결하는 방식과 전략을 우리도 배운 것이다. 이런 나의 모든 경험들을 공유하는 것이 원래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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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가 성인이 되면서 나는 호야의 지원에 올인했다. 그 전까지는 호야의 Advocate으로 Phyllis 선생님이 학교와 IEP를 전담해 주셔서 우리 부부와 상의하면서 호야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렸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참여하지는 않았다. 나보다 미국, High Tech High 특수 교육 시스템을 더 잘 아시는 분이 계셔서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호야가 성인이 되고 나니 더 이상 선생님에게 기댈 수가 없었다. 비록 부모인 우리가 호야의 법정 대리인으로 선임될 것이지만 (Conservatorship) 법원의 승락을 받아 아들의 법적 보호 수단을 미리 강구해 두어야 했을 뿐 아니라 장애인 연금(SSI)/장애인 의료보험 (Medi-Cal) 각종 경제적 보호책도 마련해 두어야 했다. 그때부터 성인 발달 장애인 지원에 관한 세미나라는 세미나는 모두 섭렵을 하면서 지원 전략을 세웠다. 다행히 전미 장애인 가족방 같은 전미 한인 장애 가족 커뮤니티와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Being Built Together (BBT)같은 한인 발달 장애 커뮤니티가 큰 도움이 되었다. 같은 정책도 지역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만큼 각 지역별 발달 장애 커뮤니티의 활동도 활발한데, 내가 살고 있는 샌디에고에도 '우리 모임'이라는 모임에서 엄마들이 자신의 경험과 조언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다. 이런 단체들과 엄마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나는 전략을 세웠고, 이를 하나하나 해치워 나갔다. (고기능성 자폐인에게는 이런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을 통해 배운 바다)

Conservatorship, SSI/SSDI, ABLE account, MediCal, IHSS 등, 온갖 약어와 듣기에도 생소한 용어들로 점철된 서비스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 모든 혜택들이 호야의 미래 뿐 아니라, 현재의 지원, 즉 $$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호야가 20살이 되기 전까지 기본적인 호야의 개인 혜택들을 다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타임라인을 세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5년 6월 현재 이 모든 혜택들은 약 80% 이상 이루었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부모인 우리가 사망한 이후 호야가 재산 상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한 유산 상속 플랜, 즉 Special Needs Trust를 설립하는 것만 남아있다.


이런 법률적/행정적 처리 과정에서 그 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Self-Determination Program(자기 결정 프로그램, 이하 SDP)을 시행하는 데 있어 발달 장애인과 가족들의 조력자인 Independent Facilitator (독립 협력자, 이하 IF)교육이 있다는 것을 '한국인 SDP 네트워크(KSDPN)' 모임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호야가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SDP에 관심이 있었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미뤄두었고, 막상 아들이 고등학교에 졸업하고 나서도 이 '독립 조력자 Independent Facilitator(이하 IF)'를 구하지 못해 SDP를 시작하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는 심정으로 아들을 위해 내가 직접 공부하자'는 마음에 시작된 이 교육을 약 2년동안 꾸준히 받아 결국 1년차와 2년차 수료증을 손에 쥐었다.

1년차 끝내면서 호야의 SDP를 준비하며 그 과정을 샌디에고에 있는 발달 장애 커뮤니티 엄마들과 나누었는데, 뜻하지 않게 나에게 서비스 받고 싶어하는 엄마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자녀가 아닌 타인에게 IF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 센터에 벤더로 등록을 해야 하고, 벤더 등록을 하려면 내가 개인 비지니스를 열어야 한다는 말에 따라 올 2월부터 유한 회사인 LLC를 설립하여, 5월에 샌디에고 지역 센터에 정식 벤더로 등록하였다.

ECHO Labs, designed for ME LLC는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내가 내 아이와 내 아이같은 발달 장애인들을 위한 비즈니스를 하게 된다는 것은 3년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그 일을 하고 있고 호야 외에도 세 명의 클라이언트를 돕고 있다. 새 클라이언트들은 현재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웨이팅까지 생겼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우연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그 우연의 시간들을 99%는 좌절하고, 1%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희망을 품는다. 잠시 포기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는 가야 할 길을 또 뚜벅뚜벅 간다.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았다. 일반인으로서도 자폐인으로서도 호야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버티고, 때로는 울며 원망하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주저앉으며 살아내다보니 나도 모르는 종착지에 와 있더라.

나와 내 아이를 위한 새로운 이 종착지, 참 마음에 든다.


2025년 6월 16일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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