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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블 Feb 04. 2020

노래도 못하고 그림도 못그리지만 05

읽고 싶은 이야기를 써 드립니다.

블블님의 외로움 극복장치는 무엇인가요?

           



내게는 강아지 같은 친구가 한 명 있다. 좋으면 좋은 것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 마치 꼬리가 달린 강아지처럼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때는 그 ‘좋아함’을 숨기지 못하는 친구였다. (과연 어릴때부터 오래 키웠던 강아지가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부를 때는 이름 두 글자에도 애정을 담뿍 묻혀 부르고, 그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는 미소를 짓느라 광대가 앞으로 도드라지는 아이였다. 옆에 있으면 누구든지 알게 된다. 그 친구가 누굴 좋아하는지.      



표정과 말투만 보아도 티가 나지만, 그 친구는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 떠드는 일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우리는 꼼짝없이 며칠이고 만날 때마다 그와 생긴 에피소드나 그의 취향, 그가 했던 행동들에 대해 심도 깊은 분석을 들어야 했다. 거기다 그에 대한 우리의 의견도 제시해야 했다. 어떤 친구는 엄격하게 보수적으로, 어떤 친구는 무조건적으로 그 친구의 입장에서, 또 어떤 친구는 무관심한 듯 대충 내뱉지만 예리한 척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어쨌든 우리는 그 이야기의 전개방향에 대해 다같이 머릴 감싸고 골몰했다.    



엄청 많이 좋아했던 누군가에게 이별을 고할 때에는 내 앞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편지를 쓰기도 했다. 자신의 팔 길이보다 한참이나 긴 헐렁한 후드티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훌쩍거리며 학교 강의실 한구석에서 연습장 노트를 찢어 좋아했었노라 고백하던 그 친구의 모습이 선연하다.       



나는 이 친구의 그런 지점을 좋아했다. 숨기지 않고 시시콜콜, 지금 몰입하는 대상에 대해서 언제까지고 떠드는 점. 좋아하는 상대가 생기는 순간 어떻게든 숨기려는 나와는 정반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친구였다. 그래서 부러웠다. 모두가 알아주고 도와주게 되니까. 결과가 어떻든, 미련없이 좋아하고 툭툭 털어낼 수 있으니까. [연애는 암살이 아닙니다. 들켜야 시작돼요] 라는 SNS의 멘션처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그 친구는 주저없이 감정에 뛰어들고, 헤매고, 털어냈다.      



그러던 친구와 최근 밥을 먹었다. 느닷없이 아침에 울린 핸드폰 벨소리 덕분이었다. 신체검사를 위해 월차를 냈다며 느닷없이 오전에 전화가 왔다. 오후 출근인 나는 친구와 점심을 먹기로 하고 점심시간에 맞춰 나갔다. 매생이굴국밥과 문어된장비빔밥을 각자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생각해보니 작년 가을 이후로 처음이었다.


     

친구는 최근 쭉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저번 가을에 만났을 때도 이미 신경 쓰이는 바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내게는 이제야 말하는 듯 했다. 친구는 예전처럼 구구절절이 말하지도 않았다. 많은 에피소드들이 생략된 채로 대략적인 상황만을 듣게 되었다. 나도 예전처럼 콕콕 찔러서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함께 먹는 음식이 너무 정갈해져서일까. 출근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굳이 말하려고 하지 않고 나 또한 굳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 스무고개같은 대화들이 이어졌다. 친구가 불편해할까봐라는 배려도 있었지만, 어쩐지 예전같지 않은 우리의 모습에 한편으론 어색해졌다.      



일상을 공유하던 시절은 지나갔고, 우리에겐 그 이후로 각자 넘지 못한 삶의 웅덩이들이 생겨버렸다. 비켜 돌아나오기도 하고, 뛰어넘으려하다 진창 빠지기도 하면서 나름의 대처법들에 익숙해져버린 모양이었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모습을 이제는 서로 보이려 하지 않았다. 강아지 같았던 친구는 새침한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호들갑 떨지 않겠다는 친구의 단호한 입매가 왜인지 낯설어보였다. 서운하지만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더 묻지 못했다. 각자 함구하고 싶은 시간이 있으니까. 친구가 마음정리를 위한 여행을 간다기에,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만 실컷 떠들었다. 나는 어떻게 여행을 했는지, 가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열정적으로 말했다. 괜히 가방에서 요즘 읽는 책을 꺼내 떠들기도 했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친구와 카페에서 헤어지고 출근하는 길. 왜인지 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또 친구에게 느닷없이 연락이 왔다. 두 번째 급만남이었다. 운동 후 내가 있는 근처로 오겠다고 했다. 본가에서 자취방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패딩을 들쳐 입고 카페로 향했다. 친구는 기념품으로 과자 몇 개를 주고는, 여행의 마지막날 겪었던 심경의 변화를 내게 말해주었다. 시시콜콜. 덧붙여 굳이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앞으로 어쩌겠다는 친구의 말보다 난 그 과정을 시시콜콜 이야기해주는 모습이 좋았다. 내가 묻지 않아도 최대한 자세하고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는 친구가. 내가 좋아하던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같은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그동안 ‘나답지 않았다’고 말하는 친구의 모습에 단박에 웃음이 터진 건 ‘역시 내친구!’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거다. 새침한 고양이 같았던 친구도 좋지만, 넌 나한테 강아지란 말이야.




친구가 친구다운 선택을 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친구가 무언가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모습은 나에게는 언제나 사랑스럽기 때문에. 친구가 내야 할 용기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순전히 내 이기적인 마음으로 좋았다. 이번 여정도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앞으로 어떤 웅덩이를 마주치게 되든 적어도 나는 친구 옆에서 조금 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의 만남으로 다시 있어야 할 곳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는 것. 나와 연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요즘 무엇 때문에 심란한지 알 수 있다는 것은 동시에 나의 외로움도 옅어지게 해주었다. 친구의 고민에 대해 짐작만 할 뿐 제대로는 알 수 없었던 시간들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다음 웅덩이를 만났을 땐, 센 척하지 말고 나도 더 시시콜콜 너에게 떠들어야겠다. 그럼 너의 외로움도 한뼘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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