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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블 Jun 09. 2020

노래도 못하고 그림도 못그리지만 09

읽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립니다.

관계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도 될까요?      



언니에게.


    

언니는 엄마를 사랑했어. 다만 조금 어려웠을 뿐이야.      



언니는 몰랐겠지만 엄마는 고아였어.

자기 친엄마가 죽은 지 얼마 안 된 어린 아이의 눈에는, 고새 벌써 진짜 가족이라며 나와 우리 엄마를 받아들여야 했을 언니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을 사실이었지만. 알아. 언니도 필사적이었단 걸.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속에서 새엄마의 애정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더 나아가 끊임없이 그 애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시험하던 언니의 절박함도. 나도 언니네 아빠한테 비슷한 감정이었으니까. 내 친아빠가 나랑 엄마를 버리고 갔거든. 그러니까 사실 우린 비슷한 처지-아니, 내가 더 불리했지. 따지고 보면 언니네 엄마는 돌아가신 거였잖아. 언니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잖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던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는, 언니처럼 그렇게까지 언니네 아빠의 애정을 시험하진 않았어. 언니가 더 용기있었던 것일까? ‘내가 진짜 사랑받는 걸까?’ 의심이라도 품을 수 있었던 거. 나는 가짜여도 괜찮았어. 당장 푹신푹신한 침대, 매일 나오는 따뜻한 온수에 이미 충분히 만족했었거든. 보여지는 친절과 애정을 굳이 의심하지 않아도 괜찮았어. 모두가 애쓰고 있었거든.      




매해 설날이나 추석에 언니가 한번이라도 ‘왜 우린 외갓집에 가지 않아?’라고 물어봤다면, 언니와 엄마는 좀 덜 싸울 수 있었을까. 엄마가 언니에게 친엄마와 같을 수 없었던 것처럼, 언니 역시 엄마에게 친딸이 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해. 그냥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언니가 너무 섬세하고 어렸던 것뿐이야. 나? 나는 더 어려서 무던했던 거고.      




엄마는 항상 미안해했어.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주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나에게도 언니에게도. 어쩌면 언니에게 더 미안했겠지. 나는 그게 너무 싫었어. 잘못한 것도 없이, 언니가 더 힘들거라고 언니 눈치만 보고 있는 엄마가 정말 싫었지. 그렇게 지극정성일 수 있었을까?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언니는 그게 ‘보여주기식’이라 생각하고 엇나갔는데도. 엄마한테 그만 좀 하라고 말할 때 마다 등짝을 맞았던 건 나였어. 그럼 언니는 또 그 ‘솔직한’ 관계를 질투하면서 방으로 들어갔지. 언니가 치는 철벽에 나는 진짜 두손 두발 다 들었어.            




처음 만나던 날 언니는 나에게 막대 사탕을 줬어. 200원짜리 껍질 까기가 어려운, 커다란 양철통에 수북이 쌓여있던 그 사탕. 지금은 그 사탕 얼마나 할까. 아직도 200원일까? 언니가 집을 나간 이후로는 한번도 그 사탕을 사먹은 적이 없어. 어려서 그 껍질을 잘 뜯지 못하던 나 대신, 언니가 늘 그 껍데기를 벗겨줬잖아. 유일하게 언니에 대한 좋은 기억인데, 그걸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았어. 혼자 피해자인 척 하는 언니가 지긋지긋했었거든.           




언니 상처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 힘들었겠지. 하지만 그 집에서 힘들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적어도 울엄마는 언니한테 그런 취급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해. 언니를 한번만 보고 싶다던 아픈 엄마의 애원을 외면할 수 없어 언니를 찾아갔을 때에도, 언니는 끝까지 차가웠어.      

아, 언니는 그대로구나. 끝도 없는 늪에 아직도 빠져있구나.      





텅 빈 빈소에 뒤늦게 찾아온 언니를 들인 건 엄마 때문이야. 엄마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맹목적이었으니까. 애가 잘해주는 걸 싫어한다고 애가 바라는 대로 못되게 굴 수는 없었어. 가는 곳마다 눈치를 보고 자란 엄마였으니까. 입양할 어른들이 찾아오면 어떻게든 착하게 보이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아무도 엄마를 데려가지 않았대. 자기가 강아지였다면 틀림없이 새주인을 만나지 못해 죽었을 거라고. 병원 침대에 누워서 정신이 오락가락 할 때, 엄마는 그렇게 중얼거렸어. 엄마는 불쌍한 눈을 한 강아지처럼 입양을 기다리기보다, 혼자 버티는 쪽을 선택했지. 하지만 늘 그렇듯 인생은 맘먹은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하늘은 엄마에게 나와 언니를 붙여놓았어. 아마 엄마는 언니한테서 자기 자신을 보았겠지. 그래서 끝끝내 언니를 보고 싶어 했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           





새엄마 새아빠는 두 번째 부모인데, 새언니란 말은 다르게 쓰이잖아. 그래서 한번도 언니를 새언니라고 부른적이 없었지. 그래서였는지. 그렇게 밉고 싫었는데도, 언니를 언니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게. ‘언니’라는 단어로는 도무지 거리감을 나타낼 수가 없어서 그런지. 엄마한테 한 언니의 행동을 생각하면 정말 몸서리치게 싫지만, 세상에 나의 어린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언니뿐이라는 게. 나의 엄마와 언니의 아빠를 같이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언니뿐이라는 걸. 나는 또 무뎌서 받아들이게 되었어. 그 시간들이 나에겐 너무 소중하거든. 다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느라 무던히 애를 쓰던 그 마음들이 나는, 우리를 진짜 가족으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해.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의심하고 시험하기에는 영영 어린가봐. 만약 그런 걸 테스트할 수 있다면, 그 대상을 꼭 언니로 하고 싶어. 나에 대한 마음이 진심인지 아닌지 증명해보라고 큰소리를 칠거야. 나는 단순해서 언니처럼 연극을 하진 않을테지만. 하지만 언니는 내 애정은 필요 없잖아. 이젠 우리 가족 그 누구의 애정도 필요없겠지. 평생 그런 증명실험은 해볼 수 없겠지.           




하지만 언니. 청첩장에 엄마의 이름 앞에 고(故)자를 붙이면서, 언니도 언젠가 청첩장을 만들 날이 오면 나와 똑같은 느낌이겠지 생각했어. 언니 아빠-아저씨는 물론 내겐 최고의 아빠였지만, 이렇게 언니한테 말할 때는 언니 아빠라고 말해야 하는 것도 나는 너무 괴로워-이름을 넣을지 안 넣을지, 어쩌면 언니는 결혼을 영영 안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감정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될 사람은 세상에 언니 하나뿐이라는 걸 알게 됐어. 굳이 뭘 더 만나고 안부를 나누고 그러진 않아도 나는 가끔 언니를 생각할거야. 쏟아내고 싶어서 되는 대로 타자기를 두들겼네. 편지를 쓰는 내내 언니가 밉다고 했지만 나는 이제 지나간 일이라 그만큼 마음을 쓰고 살진 않아. 다시 끄집어내니까 쏟아져 나온거지. 언니도 내가 맘에 걸린다면, 그냥 지나간 일이라 생각해. 너무 얽매이지 마. 그 집을 나간 건 언니가 먼저인데도, 아직 그 집에 사는건 언니인 것 같아. 청첩장 줄 때, 그런 기분이었어.



          

이제 나는 엄마한테 갈거야.

내일 결혼식 전에 엄마한테 꼭 말해줄거야. 엄마 같은 엄마가 되는게 내 꿈이라고. 어찌되었든 애를 계속 써보겠다고.  언니는 코웃음을 치겠지만. (나 임신했거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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