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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Jun 03. 2024

수면의 기술

3개월 3일

낮잠 재울 때마다 아들과 눈치게임을 한다.


방금도 오전 낮잠을 재우면서 눈치게임을 했다. 우선은 잠들기 전부터 살살 눈치를 본다. 지금 많이 피곤한가? 아니면 더 피곤해져야 하나? 과피로 위험이 있다면 주의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기 때문에. 


잠옷으로 갈아입혀 주고서 살살 안고 돌아다녔다. 안방 불은 죄다 끄고, 범퍼 침대 주위를 서성였다. 눈이 슬슬 반쯤 감기기 시작했다. 하품도 크게 한다. 이제 재워야겠다. 


마치 재울 생각이 딱히 없는 것처럼 범퍼 침대에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는다. 이 놈의 범퍼 침대는 다 좋은데 바닥을 밟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엄청 난다. 아이를 안고 들어갈 때는 딱히 문제가 없지만 막상 다 재우고 일어나서 탈출(?)할 때 소음이 발생하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를 짱구 베개에 눕히고 머미쿨쿨 이불을 덮어주었다. 


짱구 베개는 남편이 두상을 위해 쓰자고 해서 사용하지만, 머미쿨쿨 이불은 보다 기능적인 용도 때문에 쓴다. 이불 양옆에는 세로로 길다랗게 좁쌀이 두 줄 들어있다. 아이는 두 좁쌀 기둥 가운데에 끼워져서 이불로 덮인다. 덕분에 그 안에서 발차기를 해도 이불이 막아주기 때문에 하늘 높이 킥이 올라가지 않고, 자기 발차기에 더욱 각성되는 사태를 막아준다. 


오전에 처음 재우는 낮잠이 가장 수월하기 때문에 그나마 이렇게 베개와 이불 조합으로 등을 대고 눕혀본다. 예전 같았으면 나 자신이 인간 침대가 되어서 2시간이고 안아다 재워야 했으니 이 정도면 양반이다. 그 때는 침대에 눕히기만 하면 바로 자지러지게 울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아쉽고 초조하다. 


산후도우미 서비스가 종료된 후에는 일상 생활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등 대고 재우기’ 특훈을 시켰다. 눕히기만 하면 바로 강성울음이었기에 ‘와 이거 진짜…… 가능한가?’하고 암담해 했다. 오히려 수면교육이랍시고 들었다 놨다 하면서 울음바다를 만들었다가 침대 트라우마나 생기는 것은 아닐런지. 


하지만 <베이비 위스퍼>라는 육아 책을 읽고 나서, 진짜 베테랑 보모의 광기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아기에게 등 대고 혼자 자는 연습을 시켜주기 위해서 훈련 첫날 밤에 126번이나 아기를 들어올렸다 눕혔다 했기 때문이었다. 126번이라니. 트라우마를 이기는 것은 광기였다.


어쨌든 수면교육 덕분인지 아니면 그냥 아이가 백일이 다 되어가서 그런지 이제는 하루에 한 두 번 정도는 등 대고 입면을 해준다. 그런데도 늘 통하지는 않아서 여전히 언제나 긴장된다.




아이를 눕혔을 때 저항이 얼마나 심한지 살살 눈치를 봐야 한다. 


가장 좋은 징조는 눕혔을 때 저항 없이 눈만 데록데록 굴리면서 팔도 한두 번 휘저어 보는 정도다. 그러면 정말 수월하게 잠에 빠져든다. 눈이 깜빡깜빡 하다가, 점차 깜-빡, 깜-빡으로 바뀐다. 마침내는 실눈 상태가 되어서 뜰락말락한 정도에서 깜……빡 하고 잠든다. 


하지만 대부분은 파닥거린다. 머리까지 엄청 도리도리하면 더 긴장된다. 과연 이번 턴에 등 대고 이대로 눕혀 재울 수 있을까? 여기서 까딱 잘못하면 각성이 점점 심해져서 산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산 정상에는 강성울음이 있다. 그 곳에 오르면 안아올려서 달래주어야 하고, 거의 처음부터 리셋인데다 그 날은 대체로 가망이 없다. 


그래도 일단 해 본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늘어난 혼잣말을 이번에도 건넨다. “미안한데 넌 등 대고 자야 해. 아니지, 미안할 건 없지. 내가 부모인데? 네가 부모한테 맞춰.”


아이는 보통 15분~20분 정도 계속 파닥거린다. 초기에는 남편이 붕붕펀치에 30대씩 맞았다. 지금은 둘 다 비교적 노련해졌다. 리치가 닿지 않는 곳으로 머리를 살짝 뒤로 뺀다. 아이와 함께 누워서 한쪽 팔로는 내 머리를 괴고, 남은 손으로 아이의 손도 잡아주고 머리도 쓰다듬는다. 그러다 쪽쪽이가 빠지면 쪽쪽이도 입에 다시 물려준다. 




저항이 심할수록 아이템이 바뀐다. 


가장 좋은 건 아무 것도 없이 맨바닥에서 자는 낮잠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직까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그나마 멜라토닌이 잘 나오는 밤잠 정도가 돼야 침대에 덜렁 눕혀도 아이가 잘 잔다. 


첫 시도는 짱구베개와 머미쿨쿨 이불로 도전하고, 안 되면 쿨리베어를 쓴다. 라라스 베개라고 해서 솜으로 채워진 죽부인 같은 베개가 있는데, 메쉬 소재로 좀 시원하게 만든 버전으로 쿨리베어가 나왔다. 솜베개라 더워서 태열이 잘 올라온다는 말을 듣고 쿨리베어를 당근으로 사 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반신반의하면서 구매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쉬운 문제’라는 게 인생의 모토였기 때문에 일단 질러보기로 했다. 이번 구매가 솔루션이 되지 못하면 어쩌지? 돈 낭비인가? 그럴 리가. 구매1이 시행착오로 판명난다면 구매2, 구매3, …… 이런 식으로 열 가지 아이템을 차례로 사서 테스트할 작정이었다. 그 중에서 한 개 쯤은 얻어걸리겠지. 


그렇게 해서 구매한 쿨리베어는 생각보다 무척 요긴했다. 하지만 쿨리베어도 그냥 덜렁 눕히면 대체로 저항한다. 왜냐하면 그 때는 이미 머미쿨쿨 이불을 덮어서 침대에 눕혀보고 파닥파닥을 한 이후이므로, 그 저항이 어디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일단 옆으로 안는다. 신생아 트림 시키는 자세처럼 어깨 위에 고개를 얹혀서 똑바로 세워 안아주는 방법은 강성울음일 때 달래주는 용도다. 일단 옆으로 안아서 쪽쪽이를 물려보고 순순히 공갈 젖꼭지를 쪽쪽 빨고 있으면 긍정적인 신호다. 공갈 젖꼭지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아이를 키웠을까? 그냥 울면 우는대로 냅뒀으려나. 




아이를 옆으로 안아서 한참을 진정시키고, 쿨리베어를 슬쩍 집어든다. 


양반다리로 앉아서 구덩이에 아이를 안아준 상태로 쿨리베어에 아이를 끼운다. 다행히 이번에는 아이가 좀 칭얼대다가 얌전히 쿨리베어 끼워진 상태로 구덩이에서 쪽쪽이를 빨고 있다. 


조금만 더 재워보면 살살 눈이 감기겠다 싶어질 때쯤 쿨리베어를 통째로 땅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그냥 덜렁 내려놓으면 땅에 몸이 닿은 게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드는 듯이 아이가 얼굴이 시뻘개져가며 등을 활처럼 휘기 때문에 조심스레 내려놓아야 한다. 


한 번은 다리에 올려둔 쿨리베어 세트(?)를 슬라이딩으로 땅에 내려놓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이 그런 것을 어찌 하리? 아이템도 아이템이지만 기술도 상당히 요구되는 일이었다.


어제가 그랬다. 쿨리베어 통째로 들었다 내려놨다를 반복하다가 거의 30~40분 동안 씨름을 했다. 애는 울지, 나는……. 나는? 글쎄, 광기로 무장해서 이제는 더 이상 애 우는 것이 속상하지는 않다. ‘어쩌면 지가 울다 지쳐서 잠들겠거니. 그런데 언제 지치지?’ 하는 정도의 태도가 되어버렸다. 단지 이렇게 낮에 제대로 못 자면 피로가 쌓여서 아이가 밤잠을 자다깨다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될 뿐이었다. 




아이가 이번에도 마법을 보여주기를 희망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아기를 재워보면서 수면에 대해 부쩍 궁금증이 커졌다. 입면의 원리는 뭘까? 예전에는 ‘재운다’라는 개념이 낯설고 이해도 잘 되지 않았다. 아니, 피곤하면 본인이 누워서 자는 거지, 제3자의 개입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그런데 정말로 아기는 ‘재워주어야’ 잠이 들었다. 그냥 눕혀만 놓으면 ‘여기 어디지? 으앙, 너무 피곤해. 어쩌지, 어쩌지’ 하면서 눈을 더 부릅뜨고 세차게 운다. 피곤할수록 눈을 크게 뜨고 버팅기는 사람이라니. ‘눈을 감는 게 잠들기의 첫걸음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아직 말도 못 하는 아기라 서로 답답하다. 


대체 사람은 어느 시기부터 스스로 잠을 자게 되는 걸까? 아기 재우는 방법에 대해서 책도 찾아 읽고 유튜브며 인터넷을 엄청 찾았다. 하지만 다들 솔루션보다는 수면의 원리와 ‘안눕법’, ‘쉬닥법’ 같은 원론적인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나저나 안눕법 같은 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나? 아기 재우는 방법이 안아서 재우든 눕혀서 재우든 둘 중 하나지, 또 뭐가 있으려고. 따지고 보면 이 두 가지는 굳이 배우지 않더라도 부모라면 본능적으로 하게 될 것 같다. 그 밖에 달리 도리도 없으니까.


퍼버법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좀 이름만 거창한 것 같다. 잘 때까지 기다리면 안눕법과 쉬닥법이고, 자기 전에 덜렁 혼자 두고 나와서 지켜보면 퍼버법인 셈이다. 시간차 간격을 두고 잠깐씩 들어가서 아이가 괜찮은지 체크하는 것도, ‘걱정되니까 들여다보는 게 당연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안눕법에서 강조하는 ‘잠들기 전에 내려놓기’는 마음에 새겨놓고 실천하곤 한다. 다만 이유가 좀 다른데, 안눕법에서는 ‘그렇게 해야 아이가 침대에서 잠드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라고 하는 반면에, 나는 ‘그렇지 않으면 다 재워놓고 눕히다가 깨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그런다. 


가면 갈수록 안아서 재우다가 눕히는 게 어려워진다는 말을 들은 것도 한 몫 했다. 신생아 때는 시력도 겨우 흑백 구분할 정도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감각기관이 발달해서 땅에 몸이 닿는 순간 잠이 확 깨버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성장하기 전에 애초부터 누운 채로 잠드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해주어야 했다. 


나중 가면 잠들 때까지 곁에 있지 않고도 ‘잘 자~’ 하고 방을 나와도 아이가 잘 수 있겠지. 잠깐, 그럼 그게 퍼버법인가……?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따가 최면술에 대해서 찾아봐도 좋겠군……’하고 생각했다. 


재우는 방법을 백방으로 알아봤더니 최면술에까지 생각이 닿았다. 아기 진정시키는 5S 방법이고 뭐고 간에, 어쨌든 사람을 재우는 것이니 그 끝에는 최면이 있는 게 아닐까?


말이 안 통하니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간절하게 아이를 재웠다. “어허이 참내, 눈을 감으라니까~”라고 말을 거는 일은 다반사였다. 어느 날은 아이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텔레파시를 보내기도 했다. 나도 졸려하면서 동시에 이 뇌파를 아이에게 쏘아 보낸다는 생각을 강렬하게 하면 뭔가 전달되지 않을까……. 희한하게도 그 날은 텔레파시가 통했다. 하지만 오늘은 안 통한 걸 보면 우연의 일치였나 보다.


그래도 쓰담쓰담도 하고, 쪽쪽이도 물리고, 반사작용인지 뭔지 파닥거리는 팔도 눌러주고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어느 시점에는 눈이 서서히 감기는 순간이 왔다. 그럴 때면 그 순간이 왠지 마법같이 느껴졌다. 원리가 분명히 이해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발생하는, 마법같은 그 무언가.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hessam nab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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