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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Jun 24. 2024

너는 모르는 우주의 중심

3개월 17일

정형외과를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외과’를 갔다. 손발 감각이 이상해졌기 때문이었다.


몇 주 전쯤부터 왼쪽 엄지발가락 끝부분이 둔감하게 느껴졌다. 점차 발끝과 발볼 바닥이 건조하게 갈라지면서 바셀린을 발라주고 있던 차였다. 그러다 각질이 심해져서 결국 굳은살이 되어 감각까지 무뎌졌나 싶었다.


그런데 한 일주일 전쯤부터는 오른쪽 넷째손가락 끝이 똑같이 무뎌졌다. 왼손 손톱으로 오른손 손가락 끝을 차례로 긁어봤다. 다른 손가락들은 가느다란 손톱 끝의 감각이 느껴졌는데, 확실히 넷째손가락은 뭔가가 닿는 정도의 기분만 들었다. 예전에 부분 마취를 치과나 피부과에서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일단은 경과를 지켜봐도 좋다는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디고 저릿한 감각이 넷째손가락 끝에서 손가락 전체로 퍼져나갔다. 친정 어머니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시고는 “산후풍일 수도 있다더라”고 말씀주셨다.


병원을 한 번 가보면 좋겠는데……. 어느 병원을 가야 하지? 감기는 내과와 이비인후과, 치아는 치과, 피부는 피부과인데, 저릿저릿한 건 어디로 가야 할까? 맘카페를 검색해보니 산후에 손발저림을 겪는 산모들이 꽤 있었고, 한의원이나 정형외과를 가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집 근처 정형외과에 전화해봤더니 “그건 신경외과를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신경외과에서는 일단 엑스레이부터 찍었다.


엑스레이를 이렇게 단시간에 여러 장 찍은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양손과 양발, 몸통, 목까지, 그것도 다양한 자세와 각도로. 적외선 탐지기처럼 생긴 체온 측정기기 앞에도 서서 몇 장을 찍었다.


엑스레이와 체온 이미지를 가리키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 일단 상태를 보기 위해서 찍어본 거예요. 그런데 보면 다 정상이죠? 오른손도 지극히 정상. 허리도, 약간 휘긴 했지만 이 또한 지극히 정상. 목은 퇴행성 디스크가 좀 있네요. 이게 원인일 수도 있지만, 아마 산욕기 증상일 수 있어요. 정신적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 같은 게 원인일 수도 있고요.”


오호. 이게 원인이었구나. 아기가 낮에 울면 정신적 스트레스고, 밤에 울면 수면부족이었다.


“음……. 둘 다 있긴 해요.”

“약을 처방할 수는 있는데, 처방해 드릴까요?”

“아, 아뇨. 일단 있어볼게요.”


약을 먹으면 좀 나른해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아기가 우는 것은 여전하겠지. 이건 약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손발 저림 대신에 목 디스크와 관련해서 치료를 권하셨다.


“그럼 목 견인 같은 물리치료만 좀 받고 가실까요?”

“아뇨, 그것도 좀…….”

“받고 가시라는 거예요.”

“아? 네에…….”


이건 권유가 아니었구나. 왠지 모를 기세에 압도되어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다. 집에 가면 보험사에 실손보험금이나 청구해야지.




누운 채로 턱 밑에 뭔가를 받치고, 기계장치가 목을 끌어올렸다 내렸다 하기를 한참동안 반복했다.


목 견인이 끝난 다음에는 온찜질을 했다. 엄청 뜨거워서 수건 한 장을 덧대었다. 그러고 가만히 있자니, 한동안 아침에 샤워할 때마다 노천 온천이 간절했던 게 떠올랐다. 그 때는 육아가 너무 고달파서 푹 늘어지고 싶어하는 마음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내 몸은 욕구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그 뜨끈뜨끈한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여기저기 쑤시는 몸의 다른 부위들도 생각이 났다. 아까 진료 볼 때 하나하나 얘기하지 못했음을 살짝 후회하면서.


확실히 목 뒤쪽은 모유든 분유든 수유를 하느라 장시간 수그리고 있다 보니 너무너무 아팠다. 엑스레이를 판독하는 능력은 없지만, 아마 퇴행성 디스크는 분명히 있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주먹을 꽉 쥐면 모든 손마디가 다 아팠다. 앉았다 일어날 때는 무릎이 시큰거렸다. 어쩌면 무릎은 산후에 늘어난 뼈마디 말고도, 회음부 통증에도 불구하고 모유수유를 하겠다며 무릎 꿇고 수유했던 것이 산후풍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려면 몸을 아낄 수 없었다. 시도때도 없이 두 손과 두 팔로 7kg에 육박하는 아기를 번쩍 들고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했다. 앞으로는 누가 임신했다고 하면 짐볼 운동 같은 것 말고 스쿼트랑 런지를 꾸준히 하라고 얘기해야겠다. 데드리프트 같은 것도 좋고. 그렇게 축적한 체력이 곧 본인을 구원할지니.


온찜질이 끝나고 나서도 고주파 치료와 전기 자극 치료가 있었다. 눕거나 엎드린 채로 1시간 동안 치료를 받고 있자니 아기 생각이 났다. 지금껏 때때로 남편이 아기를 봐주는 사이에 동네 카페를 다녀오거나 한 적은 있어도,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 이렇게 집 밖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빈둥거린 적은 없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마사지 받았을 때 빼고는 말이다.




며칠 전에는 꿈에서 산후조리원을 또 갔다.


나는 어느 상담실 같은 방에 상담원을 마주하고 혼자 앉아 있었다. 특수 재질의 벽지인지, 상담원이 보드마카로 벽에 설명 내용을 썼다 지웠다 했다. 알고 보니 나는 출산 후 2주에다 아기가 백일 쯤 되었을 때 2주를 포함한 2+2 패키지를 구매했었다는 설정이었다.


상담원의 설명을 들으며 아기 얼굴을 떠올렸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보던 아기. 팔다리를 붕붕 휘젓고, 졸려서 울기도 하고, 나를 보기만 해도 방긋 웃던 귀여운 모습. 그런 아기를 신생아실 같은 집단 관리소(?)에 덜렁 맡겨 놓고 혼자서 호텔 방 같은 데에 누워 지내야 하다니.


나는 메모장 한 켠에, 이따가 설명 끝나고 물어볼 것들을 적어두었다. 그 중에는 ‘조기퇴소’가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꿈 이야기를 친정 어머니께 하면서 저녁을 먹었다.


아이는 하루 시작할 때 가장 낮잠을 잘 자고, 저녁에 가까워지면서 잠투정이 점점 심해졌다. 그래서 3~7시 사이에 친정 어머니께서 육아를 도와주실 때는 아기를 안아서 재워주셨다.


나는 그 시간에 맞춰서 오후 5시쯤 이른 저녁을 먹었다. 대신에 아기 막수하는 것처럼 양을 푸짐하게 먹어서 밤까지 배가 안 고프도록 했다.


이 시간대에 유튜브로 브이로그를 보는 게 하나의 낙이 되었다. 아이를 돌보다 보면 집안일과 그 날의 할 일 목록을 쳐내는 데에 급급해서, 여유롭게 브이로그 따위 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 저녁을 안심하고 먹으며 브이로그까지 보는 일은 호사였다.


아무래도 집에 있다 보니까 브이로그도 여행기 위주로 봤다. 어떤 유튜버는 고급 문구점과 니치 향수 가게 같은, 소소하게 럭셔리한 상점들을 많이 방문했다. 확실히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는 저런 인스타그램 감성의 고상한 취향을 키우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았다.


“엄마, 저 수제 노트 아마 3만원은 할 것 같아. …… 아니네, 4만원이네. 그래도 나는 다이소에서 2천원 짜리 사서 편하게 쓰는 게 더 좋더라. 아까운 생각이 안 들어서 마음껏 쓸 수 있으니까.”

“그러니? 다이소에서 그런 것도 파는구나.”

“그런데 있잖아. 어쩌면 요즘 사람들은, 옛날 같았으면 애 낳고 정신 없었을 나이에 결혼도 안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저런 일종의 취향 산업이 발달한 게 아닐까? 젊고 원기도 왕성한데 시간이 많잖아.”




점심 시간에는 보통 혼자서 아기에게 수유를 하고 나서 밥을 먹었다.


아이는 분유를 먹을 때 항상 꼼지락거렸다. 물론 엄청나게 배고파할 때는 예외였다. 낮잠에서 깨어 기저귀를 갈아줄 때 이미 배가 홀쭉해져 있으면 굉장한 울음을 각오해야 했다. 처음에는 살짝 잠에 취해서 ‘음냐……’ 하다가, 곧이어 배고프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울어제끼곤 했다. 그러다 분유를 먹이면 울음을 딱 그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보며 “꾸울떡, 꾸울떡” 하고 열심히 먹었다.


하지만 보통은 배가 엄청 홀쭉하지도, 그 정도로 배고파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밥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허기질 것 같아서 분유를 일단 태우곤 했다. 젖병을 들고 아기를 안은 채로 소파에 앉으면, 그제서야 아이는 ‘이 장소, 이 자세는……? 헉, 생각났다. 나 배고파!’라는 듯이 혀를 낼름거리며 팔을 붕붕 휘저었다.


그럴 때는 분유 먹기에 완전히 열중하기보다는 이리저리 구경도 하고 팔다리도 꼼지락거리면서 먹었다. 본인이 젖병을 잡고 먹는 것도 아니고, 바운서에서 한창 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팔다리를 가만히 있지 못할까?


먹기 시작할 때는 내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나중에는 천장을 구경하면서 먹는 것도 신기했다. 대체 천장에 뭐가 있나 하고 시선을 위로 향해보면 밋밋한 사각 등박스 3개 뿐이었다. 벽지도 천장이며 벽이며 온통 흰색이라 아무 무늬도 없는데.


하긴 돌이켜보면 나도 어렸을 때 아기침대에 달려 있던 모빌을 보며 ‘저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이지……’ 하고 궁금해 했다. 정답은 “그냥 너 보라고.”였는데, 어린 나이에는 그걸 알 도리가 없었다. 그 때의 일이 생각나서 아기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천장에 있는 건 조명인데, 저렇게 3개를 놓은 이유는 별 의미가 없어. 그냥 3개 정도 있으면 1개만 켤 수도 있고, 2개만 켤 수도, 혹은 3개 전부 켤 수도 있어서 그렇게 했나봐. 세상에는 그렇게 별 의미 없는 것들도 많단다.”




수유 후에 점심을 먹을 때는 아예 바운서 옆에 작은 상을 펼쳐 놓고 먹었다.


이 작은 상을 이렇게까지 자주 쓸 줄은 몰랐다. 이것도 다이소에서 5천 원 주고 샀던가? 아니면 인터넷에서? 어쨌든 멀쩡한 식탁을 두고 조그만 플라스틱 테이블에 샐러드와 수저 등을 차려서 점심을 먹곤 했다.


그러지 않고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 마음이 불안했다. 아무리 주방에서 거실이 바로 보인다 해도, 식탁과 바운서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서 마치 아이를 혼자 떼어 놓고 식사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트립트랩을 식탁 옆으로 가져와서 아이를 앉힌다면 주방에는 모빌도 뭣도 없어서 아이는 멍 때리기만 해야 했다.


게다가 아이가 요즘 들어 모빌 구경보다는 손가락을 빨며 이쪽 저쪽을 두리번거리기만 할 때가 많아서 더 심란했다. 예전에는 손을 빠는 행위가 배고픔의 표시였지만, 이제 만 3개월쯤 되었으면 심심할 때도 손을 빤다고 들었다. 혼자 있는 것, 심심하구나.




하루는 남편이랑 식탁에 치킨을 펼쳐놓고 저녁을 먹었다.


아이에게는 목욕을 시켜주었고, 마지막 수유 전까지 바운서에서 조금 놀게 해주었다. 그런데 그 날도 모빌을 보거나 팔다리를 휘젓지 않고 혼자 바운서에서 손가락을 빨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엄마아빠가 있는 식탁 쪽도 보고, 땅꼬마의 키로는 멀건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베란다도 보고. 그 모습에서 마치 ‘심심하네……’라는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루나가 심심하고 외로운가봐.”


그러자 남편이 답했다.


“하지만 견뎌야 해.”

“누가?”

“우리가. 그래야 루나도 혼자 따분한 시간을 보내는 연습을 하지.”


그 말에는 동의했지만 어쩐지 밤에 잠을 청하면서 아기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어쩌면 아기가 도리도리를 한참 하다가 갑자기 “흐앙!”하고 울었기에 더 안쓰럽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덜렁 바운서에 앉혀져서 심심하고 외로웠던 게 분명하다고.


물론 아기는 아무 것도 모르고 코를 골며 대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너는 아무 것도 모르겠지. 집에서 가장 큰 공간인 거실은 알집매트부터 시작해서 온갖 장난감들로 채워져 온전히 너의 공간이 되었다는 것을. 한 때 발뮤다 토스터기와 커피 머신이 있던 부엌의 아일랜드 테이블에는 분유 포트와 브레짜, 젖병 소독기 같은 너의 물건들이 대신 들어섰다는 사실도.


너의 입장에서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겠지만, 사실은 조그만 네가 우리집에 오면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는 것을.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Guillermo Fer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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