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의 애프터라이프
이후로는 일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키이스는 전멸했다. 몬스터가 떨군 드롭 아이템들만이 쓰러진 줄리엣과 함께 남았다. 아이템은 토네이도 세 개가 몰고 다닌 탓에, 토네이도가 사라진 세 군데의 자리에 쓸데없이 가지런하게 모여 있었다.
순찰대가 나타났다. 숲을 배회하는 NPC였다. 순찰대 근방에는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으므로, 정말 정말 평화롭게 숲을 탐험하고 싶을 때 따라다니면 되는 용도가 있었다.
나는 줄리엣을 사망하게 한 범인으로 지목되어 순찰대에 끌려갔다. 방향키가 아무것도 먹히지 않았다. 오로지 텍스트 입력만이 가능했다. 그렇게 순순히 재판장에 갔고, 재판을 받았다. 재판마저 사실적으로 구현되어 있어서, 나는 이런저런 질문에 텍스트로 답해야만 했다.
"……하여, 사형을 선고한다."
그 후, 사실적으로 구현된 일련의 집행 절차를 거쳐서 나는 전기 의자에 앉혀졌다. 머리에는 코드가 달린 헬멧이 씌워졌다.
바로 죽이는 줄 알았더니, 처음에는 살짝 전류만 흘려보내는 듯 했다. 전기 기구를 잘못 만졌을 때 저릿하는 것처럼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조금 동요했다.
이윽고 진짜 전류가 흘렀다. 화면이 점차 하얗게 변해갔다. 점점 전류가 강해지는구나. 왠지 모르게 머리끝부터 시작해서 팽팽하게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게 죽음인가?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끝인가? 지금까지 플레이 한 건 없었던 일로 돌아가는 거야?
화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대로 정지한 채 몇 초가 흘렀다.
얼마 후, 하얀 화면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눈앞에는 마을 광장의 분수대가 있었다. 시작 마을이라니. 정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NPC들이 하나둘 오가며 내게 말을 걸었다.
"이제야 정신이 들었나?"
"굉장하네. 전기 의자에서도 죽지 않았던 건 기적이야. 몸속이 온통 타들어가는 전류라고 하던데."
"기적이지, 기적. 여신의 가호 때문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잖아? 살려두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하니까……."
살았다고? 전기의자에 앉았는데?
스테이터스 창과 인벤토리를 열어봤다. 정말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