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엣과 여행하는 법
"으흥~ 사방이 아아주 못생긴 것들 천지구만~"
줄리엣의 폭탄같은 발언에 흠칫했다.
"야아, 너……. 저 사람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엥? 무슨 소리야~ 여기 건물들 보고 한 말인데~"
속삭이며 핀잔을 주었건만, 목소리 볼륨을 하나도 줄이지 않은 채 대답하는 줄리엣이었다. 건물들이라고? 내가 보기에는 분명, 저기 걸어가는 남자를 보고 하는 소리였다.
출근길인지, 남자는 차려입고 가방을 맨 채 길을 걷고 있었다. 그 뒤로는, 아직 걸을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채 어떤 여성이 가고 있었다. 문제는 남자가 연초를 태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뭐, 물론 건물들만 못생긴 건 아니지만~ 우후후!"
"넌 정말 시한폭탄이 따로 없구나……. 아니지, 시한폭탄은 시간이라도 정해놓으니까 차라리 낫나?"
"아~ 내가 무슨~ 폭발은커녕 연기도 안 나는데? 연기는 쪼오기~ 읍!"
나는 줄리엣이 더 이상 무슨 얘기를 할지 겁이 나서 입을 막아버렸다. 아까 그 길빵러는 마치 이 방식이야말로 아침을 남성미 가득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는 듯이 아주 여유롭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길을 걸었다. 뒤에 가던 유모차 일행은 잠시 멈춰서 있었는데, 그 남자가 골목을 다 빠져나간 뒤에야 머뭇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휴우~ 진짜 못생긴 것들 천지라니까~"
"그래, 이제 갔으니까 맘대로 얘기하든지……."
"이런 걸 보면 의외로 겁이 많다니깐? 뭐가 당당하지 못해서 얘기도 못 해~"
"길빵러 치고 또라이 아닌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애초에 다른 사람들 눈치 따위는 밥 말아먹은 지 오래인 사람들이야. 자기 심기 거스르는 말을 들으면, 앞뒤 안가리고 주먹부터 날릴지도 모른다구."
"오호, 그건 그것대로 흥미진진한걸~"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 저긴가?"
골목 모퉁이를 돌았더니, 지도에서 찾았던 카페가 나타났다. 베이지색 간판에 짙은 갈색으로 가게 이름을 적어놓은 모습이 깔끔해 보였다.
"디카페인 아이스 라떼 주세요."
"우앗~ 고민도 안 하고 주문하는 거야?"
"여기는 이게 맛있대. 리뷰에서 그렇다던데?"
"으흥~ 그럼 나는~ 나는 나는~"
줄리엣은 한참 더 고민하더니, '레몬그린주스'라는 음료를 주문했다. 키오스크 화면은 주문 마지막 단계에서 랜덤으로 손님에게 닉네임을 붙여줬다.
"고민하는 비버?"
"우하하! 내가 메뉴 고민한 거 어떻게 알았지?"
"일단 자리부터 잡자."
둘러보니 모든 자리가 편안해 보였다. 원목 테이블과 푹신한 소파, 기대기 좋게 등받이가 휘어있는 의자……. 그러면서도 전반적으로 우드 톤으로 맞춘데다, 군데군데 놓인 소품들마저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요기 소파 자리 앉자!"
"나란히 앉아야 하는데?"
"아아~ 나 푹신한 데 앉고 싶어~"
"그래, 그럼."
의도치는 않았으나, 나란히 벽 쪽에 기대어 앉은 덕분에 둘 다 카페 모습을 훤히 구경할 수 있었다. 카운터 쪽에는 책들이 놓여 있었다. 대부분 요리 아니면 음식과 관련된 책이었다. 흘러나오는 노래도, 직접 선곡한 듯이 서로 결이 비슷한 음악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여기 되게 잘 꾸며 놓으셨다. 음악까지 완벽한 곳은 의외로 찾기 힘들던데."
"그래? 음악 요즘에 그냥 AI가 다 찾아주지 않아?"
"그게 문제라는 거야.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서 아무거나 집은 노래는 다 비슷비슷해서 오히려 티가 나."
"호오~ 역시 엄청난 심미안~ 아니지, 듣는 거니까 '안'이 아니라, '이'라고 해야 하나? 심미이? 푸하핰 심미이가 뭐야 심미이가~ 심미이이이이이이이~"
"내가 초등학생을 데리고 다니는 건지……."
그 때, 카운터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민하는 비버 고객님, 디카페인 라떼와 레몬그린주스 나왔습니다."
"내가 가져올게."
"오오~ 땡큐!"
디카페인 라떼는 고소하면서도 진한 커피 향이 느껴졌다. 그리고 레몬그린주스는……
"으앗, 시다, 셔!"
"메뉴 설명에도 적혀 있었잖아?"
"그건 그렇지만~ 근데 어쩐지 건강한 맛이랄까? 달콤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찮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어쩐지 익숙하면서도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뻐-꾹. 뻐-꾹."
"뻐꾸기 시계잖아?"
"우와! 나 뻐꾸기 시계 처음 봐!"
"난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댁에서 본 적은 있는데, 진짜 오랜만이다. 요즘에도 저걸 파는 데가 있나?"
"신기해~"
줄리엣의 말마따나, 신기했다. 이런 원목 가구들과, 저런 뻐꾸기 시계 같은 것들. 분명 어디선가 팔고 있을텐데. 그 매대를 지나치는 나 같은 사람과, 지나치지 않고 지갑을 열어 소지한 돈과 맞바꾸는 이 카페 사장님 같은 사람이 공존한다니.
"그러고 보니 네 말이 맞네. 여기 들어와서 앉아 있으니까 알겠어."
"그치? 뻐꾸기 시계는 신기해!"
"아니, 그거 말고……. 사방이 못생긴 것들 천지라는 말."
"아, 그거? 그치그치? 아까 그 아저씨도 엄청 못생겼고! 얼굴도 마음도 아아주 못됐게 생겨서는~"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아무튼 밖에 있다가 여기 들어오니까, 여기는 되게 잘 꾸며져 있고 해서, 더 그런 생각이 드네."
카페까지 걸어오던 길을 떠올렸다.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 안쪽의 이 공간. 여기까지 오는 길에, 도로 양옆으로는 어느 나라의 무슨 양식이라고 할 것도 없이 제멋대로 디자인한 건물들이 난립해 있었다. 빨간 벽돌로 쌓아올리기도 하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대리석 타일로 마감한 빌라도 있었다.
통일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건물들과 함께,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전봇대들이 삐죽삐죽 서 있었다. 그리고 엉킨 실타래를 연상케 하는 거무튀튀한 전선 뭉치들이 전봇대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하늘을 까만 거미줄처럼 덮어놓았다.
그리고 그 골목을 가로지르던 골초 한 명까지.
"……완벽하게 그냥 '될 대로 돼라'라는 식이구만."
"내가? 레몬그린주스 시킨 게 뭐 어때서~"
"아니, 너 말하는 건 아니고. 그냥 아까 봤던 골목길 느낌이 그렇다구."
"아 그래? 난 또~ 근데 너 이거 한 입만 안 마셔볼래?"
"시다면서?"
"시긴 신데, 맛있다니깐? 한 입만~"
줄리엣의 성화에 못이겨 한모금 마셔보니, 과연 시면서도 달콤해서 매력적인 주스였다. 누군가는 '시면서도 달콤한 그런 맛을 찾아봐야지!' 하고 레시피를 궁리하고, 또 누군가는 숨이 붙어있고 먹을 것이 입으로 들어오면 그만이라는 듯이 취향 따위는 내팽겨치고 살아가는구나.
참으로 세상은 오묘했다.
이번 소설의 모델이 된 카페는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위치한 '스킵' 입니다.
스패니쉬 스타일의 브런치와 아늑한 분위기로 유명하지요.
https://naver.me/GXAKef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