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의동 에밀리 May 08. 2024

마지노선의 주양육자

1개월 23일

아이를 보지 않으면 의무를 저버리고 있는 것만 같은 부담감이 생겼다. 


산후도우미 관리사님은 늘 내게 “산모 들어가서 좀 자요”라고 말씀하셨다. 모유를 주는 일은 나만 할 수 있지만, 분유를 먹이거나 트림을 시키거나 아니면 안아서 잠을 재울 때는 관리사님이 거의 도맡아서 하셨다. 


하지만 나는 괜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옷섶 단추를 주섬주섬 채우면서 민망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정말 이렇게 덜렁 내맡기고 자러 가도 되는 걸까? 내 아이가 다른 사람의 품에서 크도록, 내가 아이의 양육에 손수 더 기여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래도 낮잠을 자러 안방에 갔다가 결국 잠이 안 와서 다시 거실에 나왔다. 


거실에는 역류방지쿠션에서 아이아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내가 보나 안 보나 잠 자는 것은 똑같은데, 이제 보니 정말 내가 곁에 있어줄 필요가 있었을까?


몸도 피곤하고, 아이 얼굴은 들여다 보고 싶고. 그래서 역류방지쿠션 옆의 요가매트 위에 대충 누웠다. 옆으로 누워서 고개를 살짝 들고 있으니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희한한 포즈였지만 안방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 모습을 보고 관리사님은 이번에도 걱정해 주셨다. 들어가서 편하게 자야 할 산모가, 매트 쪼가리 위에 누워서 선잠도 아니고 불편하게 누워 있었으니, 왜 나와 있는가 싶으셨을 것 같다. 아이를 안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안했다고 말씀드렸다. 


관리사님은 예전에 맡았던 한 산모 이야기를 해주셨다. 완전모유수유를 하는 산모였다. 안그래도 모유수유는 분유보다 자주 아이에게 젖을 물려줘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수유를 맡길 수도 없어서 산모가 피곤해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 산모는 아이가 울 때마다 안아주고 달래주면서 온 신경을 100% 아이에게 쏟다 보니 결국 대상포진이 와서 크게 고생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더니 그제서야 나도 아기 잘 때 푹 자둬야겠다고 온전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남편은 매일 출근을 한다. 


맞벌이 부부라면, 출산 후에 한 쪽이 휴직하고 다른 한 쪽은 기저귀값을 벌러 나가는 게 합리적인 일이었다. 우리도 남편은 그대로 회사를 다니고, 나는 육아휴직을 내서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어쨌든 출산과 산후조리를 할 사람도 나였으니, 그런 면에서도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누가 떠밀어서 한 휴직도 아닌데, 아이를 돌보다 보면 가끔 공허할 때가 있었다. 올 한 해가 지나면 남편은 회사에서 수행한 프로젝트들이 남을 텐데, 내게는 그저 아이의 성장만이 남겨질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블로그를 쓰거나 유튜브 영상을 만들거나, 혹은 책을 많이 읽는다거나 하는 것도 딱히 좋은 대안이 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일들은 그야말로 가정주부의 소소한 취미 생활처럼만 보였다. 나는 집안일만 하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엿하게 회사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소화하내곤 했는데, 갑자기 살림 말고는 하는 일도, 혹은 ‘할 줄 아는’ 일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내가 일찍 회사에 복직한다면, 아이는 꼼짝없이 갓난쟁이 나이에 어린이집을 가야 했다. 


임신하고 나서 직장 동료들에게 어린이집에 대해 물어봤을 때는 “되도록이면 일찍 보내라”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6개월부터도 보낼 수 있어.”

“그렇게 빨리요?”

“어차피 그래봤자 처음에는 2시간 이런 식으로밖에 못 맡겨. 잠깐이라도 쉰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야 엄마가 숨통이 좀 트여.”


하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아기는 정말정말 작았다! 등 대고 누워서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일 밖에는 못 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의 단체생활에 보내는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안쓰러웠다. 적어도 자기 원하는 게 무엇이고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나이는 되어야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졌다. 




그러나 내가 복직을 하면 아이는 곧장 단체생활로 보내진다. 


친정 부모님께 아이를 봐 달라고 부탁드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낳은 사람인 내가 돌보는 것도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쉽지 않았다. 게다가 부모님께 “딸자식의 자식까지 키워 주십시오”라고 덜렁 떠맡기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남편의 육아휴직은 아예 선택지로 고려조차 되고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꼬물거리는 갓난쟁이 때 어린이집에 보내지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오로지 ‘나’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만약 아이가 어린이집에 일찍 간다면 그것은 ‘내 복직 때문’일 것이었다. 심지어 그렇게까지 좋아서 가는 회사도 아닌데! (흥얼거리면서 월요일을 맞이하는 직장인이 몇이나 될까?)


아이가 거실의 바운서에서 혼자 놀 지 아니면 부모 중 누군가와 놀 지의 문제도 엄마인 내게 달려 있었고,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질 지도 엄마인 내게 달려 있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 나조차도, ‘남편이 휴직하지 않아서’를 원인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나의 선택이 곧 아이의 양육 방식에 직결된다는 생각은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고 또 한편으로는 불공평하다고도 느껴졌다. 


남편이 회사를 다니는 것은 아무렇지 않은 일이면서 왜 나의 복직은 아이를 외부 위탁 기관으로 내모는 결과로 직결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단지 내가 내린 결정의 무게가 나를 후회하거나 자책하게 만들 일이 두려웠다. ‘나 때문에 아이가 엄마아빠 손에 더 크지 못했어’, ‘나 때문에 아이가 거실에서 혼자 놀았어’, ‘나 때문에’…….


그러다 문득 언젠가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게 떠올랐다. 마지노선으로 몰린 기분, 회사에서든 대학교 팀플에서든 이런 기분이 들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억울하고 중압감에 눌린 듯 했던 것도 데자뷰처럼 유사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힘든 만큼 내가 더 많은 것을 내 손으로 일궈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대타를 맡길 수 없는 상황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았든 그 일이 내 이름으로 빚어지도록 했다. 더 많은 책임감과 더 깊은 고민으로 더 묵직한 결정을 내리고 최선을 다해서 일에 임할 수 있도록 했다.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이런 날들이 모여서 내가 진짜 주양육자가 되어가는게 아닐까? 어쩌면 그래서 아이들이 대체로 ‘엄마’ 껌딱지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Bethany Beck

매거진의 이전글 아기 재우기는 어려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