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그에게 꼭 듣고 싶은 그 이야기 : 한화 이글스
나의 야구는 파란만장하다.
어린 시절 해태 타이거즈의 키즈로 자라나, 쌍방울 레이더스의 창단과 함께 김원형과 박경완의 플레이에 매료되었다. 그 후로는 윤석민과 돌아온 이종범, 기아 타이거즈의 팬이 되었다. 2006년 SK텔레콤에 입사하면서 SK 와이번스의 황금기를 함께하며 목이 터져라 연안부두를 외쳤다. 한국시리즈 시즌에 회사에서 단체 버스를 타고 문학구장에 도착해 팀 동료들과 야구 이야기를 나누며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가을 바람은 좋았고, 김성근 감독은 나에게 '야신' 그 자체였다.
1942년생인 김성근 감독은 짧은 선수 생활을 끝내고 27세인 1969년 마산상고의 감독으로 취임해서 아마야구에서 13년을 보내고 1982년 OB베어스 투수 코치로 부임했다. 7년 후 태평양돌핀스의 감독이 된 후 우승 감독이 된 2007년까지 18년이 걸렸다.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그의 첫 번째 우승은 65세에 찾아온 것이다. 여전히 최강야구 감독으로 KBO의 한복판에 있는 그는 올해 82세다. 매일 아침 산책을 하고, 아직도 이루고 싶은 게 많아 보인다. 인생의 곧 야구고, 야구가 곧 인생이다.
김성근 감독 시절 SK와이번스, 수비 시프트를 하면 공이 그쪽으로 가는 신기한 광경을 보며 감탄했다. 박경완의 투수 리드는 야구가 단지 신체만을 쓰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2007년 우승, 2008년 우승, 2009년 준우승, 2010년 우승, 나의 사원과 대리 시절은 김성근 감독의 야구에 큰 영향을 받았다. 사내 매거진이나 방송에 감독님의 인터뷰가 자주 나왔고, 와이번스의 활약상이 하이라이트 되었다. 아침 사내 방송 와중에 다들 고개 숙이고 있다가도, 야구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드는 소리가 사무실에 들릴 정도였다.
2011년 시즌 도중 감독이 교체된 후 국내 야구에 흥미를 잃고, 류현진과 추신수를 응원하게 되었다. 당시 회사에서 맡고 있던 OTT 서비스 B tv mobile은 실시간 방송과 MLB 중계를 경쟁 차별화 포인트로 잡고 류현진 선발 경기와 추신수의 경기를 중계했다. 이벤트로 40여 명의 고객을 선발해 박경하 선배와 함께 다저스타디움에 함께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를 맡게 되면서 다시 KBO에 복귀했다. 대전과는 관계가 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선수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성적, 컨디션에 관심을 쏟았다. 2015년 6위, 2016년 7위, 2017년 경질 당시 9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렇게 나의 야구는 끝났다.
최근 한국 야구가 국제대회에서 부진한 성적으로 KBO의 흥행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젊은 팬들이 3시간 넘게 길어지는 야구에 관심을 다시 두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NBA의 상승세와 MLB의 하락세도 많이 언급되었다. 하지만, 최강야구가 그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최근 KBO는 예전만큼 압도적인 스타 플레이어가 없다. 투수와 타자 상위권에는 대부분 외국인 선수이고, 최형우나 최정과 같은 노장 선수, 혹은 평가가 극단으로 갈리는 강백호 정도가 있을 뿐이다. (도루는 예외) 이 와중에 세이브 1위가 오승환이라는 사실은 2020년대 KBO가 얼마나 스타 플레이어의 기근에 시달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나마 20 홈런, 20도루를 기록 중인 기아의 김도영(2003년생)이 가장 포텐셜이 높아 보인다.
최강야구는 부산 출신의 1980년생 장시원 PD가 KBO에 벼락같이 내려 준 선물이다. 그는 도시어부나 강철부대에서 검증된 연출력을 JTBC에 와서 유감없이 펼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키즈가 어른이 되어 성덕이 된 사례인데, 현실에서 단장(GM)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회장이나 허민(고양 원더스) 정도가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이대호의 4연타석 홈런 편집 영상을 보면 장시원은 30년 못다 한 롯데 우승의 꿈을 최강야구로 톡톡히 풀어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최강야구는 연고지가 없다는 점에서 국가대표급의 커버리지인데, 유니폼이나 직관 경기의 매진 사례를 보면 장시원의 천재성과 추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에 처리해야 할 회사 일이 쌓여 있다. 하나같이 어려운 과제들인데, 이럴 때일수록 게으른 본성이 나온다. 시험 앞두고 연필 깎고 방 정리하던 습관이 다시 나왔다. 사두고 몇 달 동안 안 읽었던 김성근 감독의 책을 읽고 크게 자극받고 즐거웠다.
동시에 김성근 감독의 한계도 뚜렷하게 느꼈다. 30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한화 이글스 이야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다시 찬찬히 살펴봐야겠지만, 한 번도 안 나온 것 같다.)
이미 위대한 분이고 그 어느 때보다 국민적 인기가 높아졌지만, 이럴 때일수록 KBO의 발전을 위해서, 또 김성근 감독의 완결성을 위해서 ‘실패로부터 배우는 교훈’ 관점에서 한화 이글스에 대한 반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나는 ‘올 시즌 몇 승을 반드시 올리겠다’라고 목표를 발표한 후부터는 한 번도 그 목표를 달성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최강야구에도 7할이라는 목표가 있다. 아무리 선수가 부족하고 상황이 나빠도 도망칠 곳이 없다.”(p. 301)는 언급이나 “그러나 내게 제일 중요한 건 결과였다. 다른 사람들의 존경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결과뿐이었다.” (나가며)와 같은 이야기에 힘이 실릴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을 좋아한다고 이야기 하고, 많은 분과 사이가 멀어졌다.
오프라인에서 대놓고 노리타 라고 비난하시는 분은 없었지만, 많은 비아냥과 함께 인터넷에서는 수많은 공격을 (스스로 알아서) 당해왔다. 그만큼 그분을 좋아하고 존경했다. 하지만, 다음번에 혹시 다시 책을 내신다면 한화를 꼭 언급해 주었으면 한다.
“김성근 생애 최악의 흑역사. 2010년대 리그 역사적으로 큰 오점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초반 호성적으로 역시 김성근이라는 소리를 듣나 싶었으나, 이내 투수 혹사 논란 및 노장 선호 성향 등으로 인하여 오히려 팀을 망치고 있다는 비판의 중심이 되고, 결국에는 또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불명예 퇴진하면서 그간의 명성을 크게 깎아 먹은 시기”
라는 평가(출처: 나무위키)에 대한 그분의 진솔한 이야기를 꼭 듣고 싶다.
2016년 한화 이글스의 연봉 총액은 103억 1,800만 원으로 10개 구단 중 1위였고, 가장 낮은 넥센의 40억 5,000만 원의 2.55배였다. 그해 한화는 최종 7위, 넥센은 3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