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로운 도전의 마침표를 찍고
내가 한때 대표님이었다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그때의 내 모습이 참 낯설다.
때는 2016년, 육아휴직 후 큰 아이를 낳고 얼마지 않아 낮잠을 재우던 날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세월호 2주기 영상을 보고 나는 그동안 무감각했던 생명의 가치를 다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한 생명을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헌신이 있었을지, 무엇과도 헤아릴 수 없는 그 찐한 사랑의 크기를 누가 감히 잴 수 있을까? 그 사고로 인한 유가족들의 슬픔이 나에게도 몰려와 숨쉬기 힘들 만큼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게 계기가 되었던 걸까? 내 곁에서 함께 자라고 있는 이 어린아이가 자라날 세상에 대한 관심이 조금 더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꿈을 꾸며 커 나갈까? 그런 인생의 로드맵을 상상하다 보면 기대와 설렘이 들기도 하지만, 두려움과 걱정이 동반되었다. 그러다 또 한 번의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청소년 사망원인 1위, 자살에 대한 기사였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마른 잎사귀들이 하늘거리며 떨어진다. 마치 인사를 하듯 바람을 타고 회전을 하면서 또르르르르 바닥을 한가득 채운다. 그런데 창창한 봄날, 아름다운 푸르름을 뽐내야 할 시기에 그런 잎들이 떨어진다면? ㅡ누군가 영양제를 주고, 더 살피면서 그 사태를 막을 수는 없는 걸까?’고민이 들었다. 관심과 사랑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드니, 머리보다 행동이 앞선 나는 그런 어른으로 살고 싶어졌다.
육아휴직 기간에라도 내가 사이드프로젝트처럼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이 문제를 알게 된 이상 외면하고 방관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내 고등학교 시절, 회색빛에 물들었던 그 시기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 한 편의 문화예술 공연을 떠올리게 되었다. 맞다! 공연은 세상을 아름답게 담을 수도 있고, 의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매개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세상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문화예술로 보여줄게,
아직 콘서트
사이드 프로젝트라 생각하며,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고민을 하다가 관련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인들부터 공연 제작비를 얻을 수 있는 지원사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막상 다양한 서류 업무들이 동반되어야 하기에 아이를 재우고 나면 밤새 기획서를 쓰거나 구상을 하는데 바빴다. 육아휴직 기간은 자연스레 내가 만든 워킹타임으로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얼떨결에 선정된 지원사업이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이었고 나는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며, 새로운 파도에 몸을 실었다.
창업일이 2017년 7월 1일, 오늘 폐업 신고를 했으니 2024년 11월 15일, 자그마치 7년 4개월가량 법인을 유지했구나. 그사이 다른 직업을 같이 하던 시기도 있다 보니 나에게 온전한 창업에 100% 몰입한 경험은 1000일가량 된 듯하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함께 하던 친구들과 동분서주했던 그 열정에 빛난 날들이.
폐업 신고를 하고 돌아오는 길, 다양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교차한다.
1. 나 혼자 할 수 없었던 그 시간, 감사하다
이끄심과 인도하심을 강하게 느꼈고, 돕는 사람들이 때때로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고, 함께 무대를 구현해 줄 아티스트들과 디자이너를 만났던 것은 참 축복의 시간이었다.
2. 한걸음 내딛는 용기만 있으면 등산을 할 수 있다.
거창하게 에베레스트를 오른다고 목표하기보다 가볍게 해 보자고 했을 때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내가 해온 일들을 돌아보면 정말 무슨 용기와 호기로움이었는지... 나름 내성적인 성격이라 얼굴이 화끈할 정도로 무모했단 생각도 든다. 그 시작은 온전히 가벼운 시도였다.
3. 할머니가 되어서 후회는 없겠다.
정말 진심을 다하고 싶었고, 2번만 공연 올려보자고 시작한 그 일이 66번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기대 이상의 결과는 나에게 단단한 자존감으로 남았다.
비록 계속 승승장구하며 잘 되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겠지만, 나의 최선이었고, 나의 운이었고, 나의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4. 아이들에게 들려줄 나의 영웅담이 생겼다.
아이들은 엄마가 하는 일을 응원하는 빅 팬이다. 첫째는 어린이집에서 내가 만든 공연을 경험했고, 심지어 둘째는 음악 태교로 경험했으니 ㅎㅎ
그 시기의 다양한 배움들이 아이에게도 종종 들려줄 소소한 영웅담이 되겠지
5. 불같은 열정이 또 생길까?
최근 한 변호사님과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창업 초기의 대표님들을 자문하는 역할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마디로 '미션에 온전히 집중하신 분들이라 정말 열정이 넘치는 시기이겠군요'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정말 그랬다. 그런 열정 내 인생에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6. 다시 사업을 한다면?
나는 어떤 아이템보다는 어떤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어야 될까?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그만큼 과정과정이 선택의 연속이었고, 갈림길을 마주할 때 어떤 길을 가느냐가 중요하더라. 때론 소극적이었고, 때론 적극적이었지만, 그때 이런 방법을 취했더라면 더 나았을까? 하는 후회의 지점들은 존재한다. 세상에 잘하는 사람들은 많고 배울 부분도 많으니까. 좀 더 열린 시야와 사고로 임했다면 더 나아졌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폐업 신고 접수증을 받고 돌아왔다.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지만, 단 하나 가장 큰 키워드는 '감사'다.
행복했고, 즐거웠고, 빛나던 그 시절을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무척 감사했다.
나의 인생은 또 어떤 파도를 마주하게 될 것인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