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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중에 SRT 왕복을 결제한 이유

더 늦기 전에, 인생은 타이밍의 연속인가.

by 진심어린 로레인



일상에 치여 아주 오랜만에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걸었다. 팔꿈치와 손목 통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엄마의 컨디션에 대해 알게 되었고, 조금 한산한 시기에 맞춰 경주에 여행을 다녀오려 한다는 부모님의 계획을 들었다. 늦가을에 경주라니, 엄마아빠한테 좋은 리프레시가 되겠구나 싶어서 잘 다녀오시라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보니, 부모님과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를 내기가 점점 어렵다는 걸 느낀다. 큰맘 먹고 대가족이 이동할 수 있게 미리부터 계획을 세우고 일정과 숙소를 정하지 않으면 매번 무산되기 쉽다. 인스타에서 가족과 떠나기 좋은 숙소 콘텐츠나 부모님에 대한 광고 피드를 볼 때마다 나는 이따금 엄마아빠와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까? 생각해 보곤 했는데, 막상 내 업무 스케줄과 아이들의 등하교 이슈들로 번번이 마음을 저버렸다.


이번 부모님의 경주 여행 스케줄은 1박 2일인데, 나는 하루만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는 시부모님과 여행을 독려하기 위해 베트남에도 일주일씩 같이 다녀오라고 했었는데, 내 입장이 되니 만사 제처 두고 갈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래, 하루가 어디냐며... SRT 앱을 켰다. 일주일 남겨두고 매진된 자리가 많아서 새벽 5시 30분 기차를 겨우 잡았고, 돌아오는 편도 저녁 7시 반 기차를 끊었다.


엄마아빠에게는 구입한 왕복 기차표 사진을 보냈다. 당일 일찍 도착해서 하루 일정을 함께 하겠다고 하자, 엄마는 만세를 불렀다. 우리 딸이 가이드해주면 엄마아빠 든든하지! 라며, 행복한 마음을 연신 이모지로 표현해 주었다. 그래 잘한 결정이야! 회사 일정을 오프로 표현하고 나는 그날 하루를 오롯이 엄마아빠와 함께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두 분이 건강하실 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게 얼마나 귀한 추억이 되겠나 생각하니 정말 기뻤다.


남편은 나에게 하루 여행 자금 치고는 두둑하게 이체해 주며, 부모님과의 여행을 잘 다녀오라고 격려했다. 오랜만에 엄마아빠에게 제대로 대접하며, 가족을 위한 시간을 잘 보내리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가기 전날 밤, 나는 엄마아빠 컨디션을 생각해 오쏘뮬 비타민과 양배추즙, 견과류, 소화제, 단백질바 등을 챙기며 두 분의 여정이 필요한 가벼운 준비물을 챙겼다. 당일치기 여정이라 백팩 안에 옷이 아닌 선물을 챙기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새벽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일찍 푹 자는 것부터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새벽 4시 50분 알람이 울렸다. 밤새 2~3번은 깼다.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인 새벽 2시, 3시... 그만큼 이 여정을 기대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택시를 타고 늦지 않게 기차에 올랐다. 틈틈이 경주에서 가면 좋을 곳들을 캡처하고 즐겨찾기 해둔 탓에,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할 일들을 잘 챙겨두었다. 이번 여정에서 부모님은 APEC으로 주목받은 곳들을 다녀보고 싶어 했다.


1) 황남빵 구입하기 (1인 2개 개수 제한이 있고, 바로 픽업이 아닌 준비되는 시간에 맞춰 픽업할 수 있다)

2) 경주 국립박물관에서 금관 구경하기 (8시 반부터 줄 서 있던 라인에 합류해 10시 타임 티켓을 받아 금관특별전을 구경할 수 있었다)

3) APEC 정상회담장 구경하기 (국립박물관 안에 포토존이 있다)

4) 점심 먹기 (늘 곰탕에서 아롱사태 수육과 곰탕을 먹었다.)

5) 경주 테라로사에서 황남동고분군을 보며 카페라테 마시기

6) 경주 엑스포에서 경주타워, 솔거미술관 관람하기 (다양한 전시와 체험이 준비되어 있는 곳)

7) 숙소 체크인하기

8) 생선구이로 저녁 먹기

9) 십원빵 맛보기

10) 월정교 야간 구경하기


하루의 스케줄을 오롯이 소화하고 다시 서울 가는 기차에 올랐다. 생각보다 경주의 관광지가 밀집되어 있어서 다양하게 소화하는 데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엄마아빠도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있어서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해주시니 두 분의 건강 관리가 잘 되어 있다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부모님은 여행을 마저 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또 언제 이런 시간이 주어질지는 모르지만, 타이밍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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