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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 아지트를 만들었을 때 생기는 변화

아이들과 스킨십하기 좋은 대화 공간

by 진심어린 로레인



나는 나만의 공간이 참 중요한 사람이다. 숨구멍처럼 나를 숨 쉬게 하는 공간이 하나쯤 필요하다. 그곳에서 보통 책이나 말씀을 읽고, 글을 쓰거나 좋아하는 유튜브를 보는 것이지만, 삼십 분이라도 방해받지 않고 머물 수 있다면 하루의 끝자락에서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이사 온 집에서 나는 어떻게 그런 공간을 구현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다. 가장 적당한 위치는 안방 베란다였다. 내가 좋아하는 1인 소파까지 놓으면 좋겠지만, 베란다 문을 통과할 수 없어서 아쉽게도 포기했다. 대신 캠핑의자와 소파 테이블을 배치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예쁜 커튼과 북스탠드를 더해 꾸몄다. 그렇게 수시로 들어와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다행히 탁 트인 뷰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한 평 공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몇 번 이용하다가 뭔가 밋밋하다고 느껴져, 우리 집에서 가장 큰 해피트리 화분을 끌어와, 자연에 있는 느낌을 더했다.


이사 온 지 어언 1년이 되어간다. 나는 이 공간을 처음 세팅했던 것과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이용해 왔다. 중간에는 요가매트를 깔아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고, 새벽녘에 햇살이 강하게 들어와 캠핑의자 위치를 틀어서 조금은 더 편한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베란다 특성상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끼는 공간이라 더울 때는 덥고, 추울 때는 춥다. 그래도 나는 자주 이용했다. 한 여름에도, 이른 아침이나 밤 시간을 이용해 얼음컵을 들고 가서 앉아 있었다. 그렇게 꽤 자주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계절이 바뀌자, 이번 겨울은 어떻게 이용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되었고 즉흥적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매번 옷장에 쟁여만 놓았던 오래된 카펫을 꺼내 베란다의 바닥 한기를 덮어버렸다. 화분 영역만 빼고 카펫이 깔려있으니 발바닥이 따뜻했다. 그리고 쿠션과 좌식용 접이식 의자를 배치해 편히 앉을 수 있도록 꾸몄다. 작은 탁자와 책은 항상 디폴트로 따라오게. 그래도 기온이 낮으니… 오래 있으려면 극세사 이불이 있어야겠지? 나는 마지막으로 평소 따뜻하게 덮는 이불을 가져왔다. 막 끓인 루이보스 한 잔과 함께 이불을 덮고 밤 야경을 보고 있자니,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겨울나기 아지트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찬찬히 관찰하던 둘째가 이불속으로 뛰어들었다. "엄마 여기 너무 좋은데요?" 아이는 이미 엄마의 공간이 아닌, 자신의 공간인 것처럼 여기에 자기의 아이템을 가져오겠다고 바지런을 떨었다. "제가 좋아하는 담요도 있으면 좋겠어요~, 인형도 좀 갖고 올까요?" 나는 아이가 잠깐 있다 말겠지라고 생각하며 크게 말리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이 공간을 우리 가족의 아지트라고 명명하며 자주 들락거렸다. 주말이나 주중 할 것 없이 가족들이 자기 전에 들러 하루를 회고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이 될 수 있게 모임을 주도했다. “엄마 아지트로 갈 시간이에요~”, “형아! 얼른 양치해~ 우리 아지트 가서 기도할 거야!” 아이의 이런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우리 네 가족은 그 좁은 베란다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마치 일본의 코타츠(이불 덮는 테이블처럼)에 둘러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찬 공기도 서로의 온기로 금방 훈훈하게 바뀌는 것을 느끼자, 더 서로의 존재감이 푸근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바쁜 일상에 놓친 마음을 다독이는 대화를 나누었다. 오해를 풀고, 서운함을 풀고,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 주, 혹은 오늘 하루 아이에게 가장 좋았던 순간은? 엄마아빠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아주 골똘히 생각하면서 찬찬히 본인의 진심을 들려주었다.


지난밤에는, 문득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를 정말 좋아해 줘서 고마워"라고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그러자 둘째는 환하게 웃으며,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아니야, 아가 그건 당연한 게 아니야... 엄마가 더 잘할게..라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고 있다. 정말 이 공간이 좁아서 아이들의 다리와 부모인 우리의 다리가 얽히고 자세를 자주 바꿔야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인데,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자주 모이고 있다. 넓은 집을 두고 우리는 왜 여기 좁은 곳에서 이러는 거냐며... 웃으며 말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곳에서 우리의 마음이 더 차오르는 것을.


이 집에서 1주년을 맞이하며, 나는 이 집에 더 감사함을 표현하고 있다. 더 넓고 쾌적한 곳임에도, 작고 아담한 공간까지 알차게 아지트로 활용하며 지내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이 더 단단하게 차오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살지 알 수 없고, 우리의 다음 집은 어떤 곳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사는 이곳에서 더 행복하고, 더 감사하자. 서로 함께 한다는 것에 기쁨을 자주 표현하는, 웃음이 가득한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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